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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상과 현실 사이에 서서 중앙일보 2008. 6. 28

 

 

 

 

 

미술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은 라틴어 ‘ars’에서 유래된 ‘art’를 일본인들이 ‘미술’로 번역하고, 우리가 그대로 사용하면서 빚어진 오해다. 미술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활동’인 것은 맞지만, 그 아름다움은 통념적 미의식을 넘어 세상의 근원적인 본질을 향해 있다. 얼마 전 반 고흐의 전시가 대단한 성황을 이루었는데, 이 대중적 인기는 세상의 몰이해 속에서도 홀로 당대의 통념적 미의식을 넘어섰던 한 예술가의 성취와 그것을 위해 지불해야만 했던 그의 비극적 생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람들은 예술가 반 고흐의 진정성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기꺼이 긴 줄을 서고 인파에 떠밀리면서도 그의 작품 앞에 서려는 것이다.

하지만 반 고흐의 예술도 처음엔 추하고 혐오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인상파가 처음 출현했을 때도 그랬고, 마티스의 흐드러진 관능 앞에서도 사람들은 격렬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미니멀 아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상자가 어떻게 예술작품일 수 있다는 말인지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불과 십수 년 만에 전 세계는 미니멀에 매료되었고, 건축과 전자제품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부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첨단의 문화 트렌드가 되었다. 그것이 미니멀 아트가 지향했던 가치와 전혀 무관한 것이었음에도 말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익숙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낯선 것을 거부하거나 추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처음엔 낯설었던 패션이 익숙해지면 좋아 보이듯, 아름다움은 늘 학습을 필요로 하고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의 미의식이 확장되는 것이다.

나는 아름다움이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써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미술작품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이 미술작품 자체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미술작품은 그저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일깨우는 매개물일 뿐이라는 급진적인 생각을 감상자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예술의 진정한 힘은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현재의 좌표를 읽고 지향에 관해 생각하는 사람이 진정 아름다운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이상과 의지가 삶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무엇을 아끼고 사랑하며 집중하는가에 따라 삶의 성취가 달라지고 그렇게 산 삶 전체가 자신들의 진정성을 설명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생각을 순진한 이상주의라고 비웃는다. 사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의 비현실성을 논하기에 앞서 그 참뜻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진정한 가치는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향’에 있으며, 그것이 현실을 바꾸는 힘의 원천임을 깨닫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삶이란 무수한 좌절 속에서도 결코 굴복할 수 없는 의지의 연속이어야 하고, 세상은 그런 의지를 가지고 ‘이상’을 향했던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어 왔다. 고독했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다 간 예술가들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수천만 달러짜리 그림들이 아니라 같은 것에서 다른 것을 찾아내는 발상과 인식의 전환인 것이다.

늘 현실에 관해 힘주어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창밖 거리의 각박한 삶들, 돈 몇 푼 때문에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오로지 물질적 풍요를 위해 삶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햇볕이 작열하고 있던 여름, 나는 정신없이 오가는 자동차들의 소음 속에 갇혀 참을 수 없는 멀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토록 힘주어 현실을 강조하며 꾸짖던 그가 얼마 전 불현듯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가 떠난 자리에 서서 그가 남기고 간 흔적들을 더듬으며 뒤늦은 질문을 시작한다. 과연 무엇이 진정한 현실이고 무엇이 비현실이란 말인가.

오상길(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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