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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촛불을 흔드는가
장관이었다. 세종로를 가득 메운 촛불은 가슴이 뭉클해 질만큼 아름다웠다. 역사 상 그 어떤 나라에 이런 정치시위가 있었던가. 이 촛불은 미학의 경지에 다다른 지혜로운 정치학의 산물이다. 그 동기가 광우병의 위기감 때문이었던 고소영, 강부자 내각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던 이제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이 많은 촛불들이 정권을 향해 이 나라의 정치권력이 바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도록 한시적으로 위임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 촛불들은 바로 몇 개월 전 국민의 뜻을 무시했던 정권을 냉정하게 심판했던 의지를 재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국권의 상실과 식민강점, 분단과 참혹한 전란의 폐허 위에서 오늘을 일궈낸 위대한 시민들이다. 역사상 그 어떤 국가가 단 50년 만에 이토록 눈부신 성장을 일궈낼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이 숭고한 촛불을 흔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촛불시위의 배후를 의심하는가 하면, 이 촛불을 저지하려는 무모한 집회도 열린다. 어린 자식들의 손을 잡고 평화로운 시위에 나선 시민들의 마음을 불순세력들의 정치공세로 매도하거나 이 기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무리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쪽이든 이들은 현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있다. 그 답이 이미 촛불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촛불의 아름다움이, 그 놀라운 자발성과 비폭력주의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은 몰락한 전 정권의 복권을 위해 시위에 나선 것이 아니며, 현 정권의 몰락이 곧 우리 모두의 심각한 손실을 결과하게 될 것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이 촛불을 이용해 정권의 몰락을 기도하거나 이들을 정치적으로 매도해 어려운 국면을 모면하는 자들은 또 다시 처절한 몰락에 이르게 될 뿐이다. 지금 시민들은 단지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집회와 시위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통해 올바른 정치를 요구하며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때문에 이 촛불은 어떤 이념이나 정치세력들의 이해관계도 넘어선, 주권자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다하려는 위대한 시민정신의 숭고한 상징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시민들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그 어떤 준동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단순한 시위군중이 아니다. 높은 수준의 문화적 소양을 갖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고 우리 모두의 형제자매들인 것이다. 정권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청와대를 향하는 촛불들이 곤혹스럽고 두렵겠지만 컨테이너로 막아서기 보다는 이들 앞에 결연히 나서서 대화에 임했어야 했다. 실정을 자책하고 시민들의 준엄한 꾸지람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존경과 사랑의 뜻을 전했어야 했다. 정권은 시민들을 그 누구보다도 굳게 믿어야 한다. 그들이 곧 정치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지금 나라가 안팎의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이것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정권은 촛불을 두려워하거나 미워하기보다는 정치가 무엇인지 가르치기 위해 치켜든 위대한 시민들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란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슬기로운 시민들의 마음과 힘을 빌려 함께 뜻을 이뤄가야 한다는 점을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이 평범한 상식을 저버리고 독주하다 몰락한 전 정권을 교훈삼아야 한다. 정치인에겐 내가 가장 잘났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곧 오만이고 독인 것이다. 촛불을 든 시민들의 마음을 읽으라. 그리고 그들의 뜻에 따르라. 그것이 곧 정치인 까닭이다.
오상길(문화예술NGO ‘예술과 시민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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