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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근현대미술의 이해 #3 Reality에 관한 일반적 오해

 

 

 

서구미술 역사의 두드러진 특성은 reality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묘사하기 위해 이상미理想美를 실현하려 했고, 로마인들은 산문적인 재현의 리얼리티를, 그리고 중세인들은 신앙의 도상학圖像學을 통해 리얼리티를 추구했다.

이후의 서구 근대미술도 르네상스로부터 산업혁명과 종교개혁에 따른 정치사회적 변화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때때로 역사를 앞서서 이끌거나 혹은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해 왔다. 때문에 서구미술의 역사는 서구인들의 의식이 무엇 때문에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미술이라는 특수한 렌즈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흔히 서구미술의 미학적 전통을 ‘거울’에 비유하는 것도 세상을 캔버스에 반영하고 있다는 말이며, 세계를 모방mimesis하고 있다는 뜻이다. 수많은 자화상들을 비롯한 초상화들과 풍경화나 정물화들 속의 형태와 원근, 입체감을 강조하는 명암법 등이 그렇지만, 이 모든 형식들이 세계에 관한 그들의 인식과 감각을 담는 자기반영의 틀이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재현의 리얼리티는 앙드레 말로가 개탄했듯, 한편으로는 세계 그 어느 대륙의 미술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상 모방의 역사라는 한계로 이해되기도 한다. 현대미술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히는 ‘추상미술’은 바로 이 대상 모방의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자, 사진기술의 발전에 따라 설 자리를 잃게 된 초상화나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서구미술의 필연적 귀결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서구미술의 특징은 이집트와 아시아, 그리고 이슬람과 남미대륙, 아프리카 문명의 놀라울 만큼 찬란한 미술의 역사들과의 대비를 통해 더욱 선명해 진다.

Michelangelo's_Pietà_in_Saint_Peter's_Ba

Michelangelo's Pietà in Saint Peter's Basilica, 1488-9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상당수의 예술가들마저 미술의 가치를 이러한 서구미술의 역사에 기대어 인식하고 있지만, 이것은 문화적 혼성기에 수반되고 있는 과도기적 서구 중심주의 통념이다.
글로벌리즘이란 세계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의 가치를 세계라는 커다란 범주로 묶고 함께 공유해 가려는 인식이 되어야 한다. 세계성이 강조될수록 집단 간 혹은 개체 간의 차이가 더욱 존중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를 변화하게 자극하는 것은 문화적 ‘차이’이지 동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으로 서구미술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서구미술의 이해는 ‘왜 우리가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의 의문에 값하는 문화적 자각의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자각은 곧 지난 100여 년 동안 진행되어온 서구문화와 제도의 이식 과정에서 발생해 온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합리적으로 잘 정돈되어 있는 서구미술의 역사를 텍스트로 삼아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Reality에 관한 일반적 오해

미술에 관한 커다란 오해 중 하나가 ‘사실성’에 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처럼 실감나게 그려진 그림을 미술의 가치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것은 대상을 모방하고 싶어 하는 원시적 본능의 자기 확인에 지나지 않는다. 즉, 이 능력은 관람자 자신의 대상 모방욕구를 대리 충족시켜 주고 있을 뿐이며, 예술의 궁극적 가치 천착 대신 자기 욕망현시에 집착하게 만듦으로써 결과적으로 감상자가 자기 자신을 예술로부터 고립시켜 놓는다. 현대미술이 난해하다는 비판 중 일부분은 이러한 감상자의 예술에 대한 오해와 ‘예술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통념에서 비롯되는 혼란으로 생각된다.

비록 서구 근대미술의 역사가 대상의 모방이라는 궁극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이 미술들이 궁극적으로 대상의 모방 자체를 목적했던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그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인식이라는 리얼리티를 드러내는 방법이었을 뿐이며, 그 어떤 예술가들도-실감나는 디테일의 묘사로 이름 높은 자크 루이 다비드조차도 대상의 모방 자체를 추구했던 것은 아니다.

폴 세잔과 빈센트 반 고흐 이후, 자꾸 일그러져만 가는 미술의 형태를 이해하는 길은 감상자가 실감나는 묘사의 대상 모방 욕구보다 ‘예술이란 무엇’이고 ‘예술이 우리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는 일이다. 예술가들의 창작의 고뇌와 관람객들의 감상 문화는 예술이라는 가치를 맞들어 쥔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그려내고 감상하며 느낄 수 있겠나.

탁월하다고 평가되고 있는 미술작품들 속에는 당대의 미적 가치와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는 일련의 상징과 알레고리들이 발견된다. 이른바 작가의 코드code와 어법idiom으로 설명되는 이 장치들이 그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열쇠인 경우가 많다. 미술비평이란 바로 이러한 시각적 장치들을 분석하여 차이들을 분별함으로써 미술을 언어적 측면에서 담론화하는 일이며, 비평가의 관점과 미적 감수성 그리고 가치관과 소양에 따른 다양한 해석으로 미술이라는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바람직한 미술문화는 필연적으로 수준 높은 비평 문화를 요구하게 마련인 것이다. (2011.5 / 2016.6 부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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