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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근현대미술의 이해 #4

로코코Rococo 미술과 신고전주의

 

18세기 후반 프랑스는 태양왕 루이 14세에 이어 즉위한 루이 15세 시대에 이르러 귀족취향의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풍의 로코코 미술양식을 향유했다. 나이 어린 루이 15세를 대신하여 필립 공작이 섭정했던 시기에 귀족들은 자신들의 높아진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저택을 건축하고 실내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막대한 재산과 지성을 함께 갖춘 상류층은 전문 예술애호가로서의 비평과 연구, 수집활동을 하기도 했다.
로코코 미술은 루이 15세의 애첩 마담 드 퐁파두르의 후원으로 살롱 중심의 문화가 꽃을 피웠던 시기를 지나 점차 에로티시즘적으로 변하면서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 귀족들을 중심으로 꽃을 피웠던 로코코 미술문화가 점차 서민층으로 확산되고, 살롱을 중심으로 한 대중과 예술가들 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보다 객관적인 미술비평 활동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로코코 양식은 장중하면서도 장식적인 남성적인 성격의 바로크Baroque 양식에 비해 화사하고 유희적인 여성적 감각으로 특징지어지며, 가구나 실내장식 등의 모서리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둥글게 처리하고 화려한 색조로 처리하는가 하면 거울을 많이 사용하기도 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내부 장식이 대표적인 예이며, 회화에서도 오노르 프라고나르의 <그네타기, 1767>처럼 주제와 표현 양식 면에서 복잡한 구성과 기교적인 테크닉, 화려한 장식성을 지향했다.   

Jean-Honoré Fragonard, The Swing,1767

Jean-Honoré_Fragonard,_The_Swing,_1767,_

신고전주의 미술은 타락한 바로크 미술과 기교적이며 경박한 로코코 미술의 반동으로 일어났으며, 인간 이성에 의한 절제와 합리 그리고 형식과 규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념적으로는 프랑스 대혁명과 합리주의 철학의 대두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으며, 애국심과 계몽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문화적 취향은 자연스럽게 변화하지만 정치사회적 변동 같은 역사적 상황에 의해 인위적으로 유도되기도 한다. 루이15세에 이어 즉위한 루이 16세는 로코코 취향의 향락적인 문화를 일신할 새로운 이념과 양식의 필요를 느껴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이 아카데미는 계몽적이고 애국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화가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했으며, 특히 역사적 의미가 있는 그림을 생산해 내도록 독려했다. 즉 아카데미는 국가가 예술과 예술가들의 활동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시스템이었고 철저한 도제식 교육을 지향했다.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의 회원들에게는 살롱에 출품할 자격이 주어졌으며, 아카데미의 도제들은 회원이 되기 위해 살롱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국가의 후원으로 1년 간 로마로 유학을 다녀올 수 있었다. 국가는 미술 아카데미와 살롱의 전시 등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미적 취향을 대중에게 전파하고자 했던 것이다.(2011년 11월 / 2016년 6월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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