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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술계 거듭나야 한다 [중앙일보 2008.2.15]

 

일부 미대 교수들의 일탈이 도를 넘고 있다. 개각 때마다 문화부 장관감으로 거론되던 모 대학 미대 학장이 표절 논문으로 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더니, 이번엔 미대 교수들이 입시학원에서 강의를 해온 일로 물의를 빚고 있다. 홍익대 미대 교수 8명이 학원생들의 실기 작품을 평가해 주고 강사료를 받은 혐의로 14일 불구속 입건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중에는 올해 실기시험에 채점위원으로 들어간 교수도 포함돼 있다고 하니 어린 수험생들이 느꼈을 위화감과 불신에 가슴이 서늘하다. 해당 교수들은 홍보 차원이었다고 변명하지만 대학당국 모르게 거액의 사례비를 받고 한 불법 아르바이트를 홍보라고 하니 납득하기 어렵다.

미술대전 심사 비리와 위작 논란, 신정아 사기극, 미술시장의 투기 바람 등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미술계에 엎친 데 덮치듯 좋지 않은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미술계를 향한 시선이 싸늘해졌고, 미술인들도 불신과 냉소에 지쳐버렸다. 최근의 사건들은 모두 유명 대학과 거대 단체, 미술시장과 공적 기관 같은 미술계의 제도 안에서 발생했고, 처음 있는 일이 아니며 그 핵심이 미술이 아닌 돈과 권력에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중국 상하이 비엔날레에서 한국인 큐레이터가 외국 비평가의 글을 표절·도용한 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하더니 수백억원의 공기금을 투자해 온 광주비엔날레는 박사학위를 위조한 사기꾼을 총감독으로 임명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공모전 심사 비리 논란도 1950년대 중반 이후 국전과 각종 민전들 주변에서 끊이지 않았고, 예체능계 대학 교수들의 사설 강습이 법으로 금지될 만큼 입시와 관련한 잡음도 많았다. 미술시장의 투기 바람 역시 90년대 초반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위작 논란도 끝없이 계속된다. 이 모두가 미술의 가치 천착과 무관한, 돈과 권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술계 주변의 풍경들이다.

하지만 무엇이 미술의 가치인가에 대한 생산적 논의는 지금껏 한 번도 공론화된 적이 없었고, 그런 공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드문 것 같다. 미술의 담론에 관해 좀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회에 높은 입시 경쟁률을 보이는 수많은 미술대학이 있고, 막대한 자금이 유통되는 미술시장이 있으며, 비엔날레 같은 거대 행사들이 줄지어 열린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성장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듯, 미술계도 예외가 아니다. 예술가들의 가난은 필연이고, 대학과 미술계가 순수해야 한다는 통념이 순진한 착각으로 치부되는 지금, 우리는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려 들지 않는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할 필요가 있다. 골치 아픈 일이 너무 많아 쉽게 잊는 습성이 생겼다지만, 잊을 만하면 또다시 고개를 들어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일들에 관해 곰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밝혀지는 사건들의 전모는 하나같이 너절하다. 밖으로는 현대미술의 난해한 담론들을 내세워 연막을 피워놓고, 안에서는 패거리를 지어 헤게모니 다툼과 음습한 담합을 일삼아 온 일부 사람들 탓이다. 표절과 사설학원 불법 강습을 서슴지 않는 일부 미대 교수들의 일탈은 이를 방증한다. 그래도 이 사건들에는 뒤늦게나마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여러 사람의 노력과 언론의 관심에 힘입어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최근의 사건들은 오랜 병적 징후들을 더 이상 방임할 수 없게 된 미술계 내부의 절박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고, 그런 만큼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얼마간 계속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일그러진 파열의 형태이긴 하지만 이것이 오랫동안 방치돼 온 상처의 치유 과정이라면, 미술계의 거듭나기 위한 진통이 그리 오래도록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상길 문화예술 NGO ‘예술과 시민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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