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근현대미술의 이해 #9
회화적 리얼리티의 여러 얼굴(4)
진정한 인상주의자 - Claude Monet
흔히 역사를 진실 또는 사실의 차원에서 논하지만, 과거의 ‘진실truth’이기보다는 ‘사실fact’에 기초한 역사의 해석으로 이해해야 한다. 아무리 사실에 기초한 ‘진정성reality’을 담고 있는 역사라고 하더라도, 역사란 본질적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 놓는 다양한 인식론적 해석학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언제나 ‘선택’과 ‘집중’ 그리고 ‘해석’의 문제들을 수반하기 때문에, 역사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중립성과 가치판단의 객관성 등의 전제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데, 비순수한 프레임으로 구성된 역사정치학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기도 한다.
물론 미술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미술사란 미술이라는 특수한 가치의 관점을 통해 바라보는 역사이므로, 미술사가의 관점에 따라 진술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서양미술에 있어서 ‘근대’와 ‘현대’의 기점을 형성하는 근거와 시기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도 미술사가들의 관점과 진술의 방법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동시대미술의 헤게모니를 의도하는 비순수한 미술사의 정치학들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현대미술의 이해는 어느 시점부터가 ‘현대’인가라는 판단의 문제보다 무엇이 ‘현대성’의 근거로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일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미술사가들과 비평가들 중에는 인상파를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미국의 저명한 미술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회화의 평면성에 대한 자각을 ‘현대성’의 근거로 보아 마네로부터 현대미술의 기점을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회화에 있어서의 평면성 자각을 미술에 있어서의 ‘현대성’에 값하는 결정적 근거로 볼 수 있을 것인가의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막시스트였던 그린버그의 ‘modernism’ 이론을 전통의 단절과 현대화로의 비약에 따른 문화적 혼성기를 거치고 있는 한국의 예술가들이 공유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현대미술은 누군가에 의해 형식화된 스타일을 공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무엇을 미술에 있어서의 현대성의 근거로 볼 것인가에 관한 대안으로 제시되어 왔고, 이것이 동시대미술의 변동성을 만드는 중요한 근거가 되어 왔다.
회화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인상주의Impressionism 이후 미술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왔다. 마치 거울처럼 현실의 세계를 투영하는 유럽의 대상 모방 회화들은 르네상스 이후의 원근법과 명암법을 심화시켜 왔고, 이에 따라 근대의 화가들은 거장들의 기법들을 익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사진기술의 발달에 따라 화가들은 현실의 세계를 기록하고 기술記述하려는 재현회화의 역사로부터 벗어나려는 다양한 모색을 하기에 이른다.
쿠르베의 회화가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반영한다면, 마네로부터 시작된 인상주의 화가들은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이 발상의 전환이 회화에 있어서의 근대와 현대를 구분할 수 있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무엇을’이 목적적 질문이라면 ‘어떻게’는 방법적 질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무엇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가’의 문제는 다분히 철학적이지만, 질문의 목적 지향적 성격이 이미 행위의 방향을 결정짓고 있는 반면, ‘어떻게 그릴 것인가’의 고민은 회화 그 자체의 정체성, 즉 예술의 순수성을 전제로 한 방법적 모색이라는 점에서 훨씬 광범위하고 자율적인 창의성을 보장해 준다.
Les Coquelicots à Argenteuil, 1873
인상주의자들은 계몽주의자들의 반복적 형식의 허구성을 거부하고 급속하게 변화하는 도시적 감각과 자연과학의 세례를 깊숙이 받아들였다. 그들은 빛과 물감의 물리적 성격 차이에 눈뜸으로써 색채의 원리를 캔버스 위에서 실험했고, 대상 그 자체보다 색채의 본질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빛의 삼원색과 물감의 삼원색이 서로 다르며, 각 물체가 고유색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빛에 반응하는 물질에 따라 다른 색을 띠게 된다는 당시 자연과학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즉 빛의 조건에 따라 물체의 색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빛의 성질에 의해 그림자의 색도 달라진다는 점을 수긍했다.
또한 빛은 합해 질수록 밝아지지만 색채는 혼합될수록 어두워지고 탁해진다는 점을 알 수 있었으므로, 가급적 혼색을 피해 캔버스 위에서 순색들을 병치시키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어둡고 탁한 색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자연과학의 연구결과를 적극 수용했던 예술가들에 의해 유럽의 회화는 근본적인 차원으로부터의 변화를 꾀하게 되었고, 이 변화는 가히 르네상스 화가들이 발견했던 투시법과 명암법에 비견할만한 것이었다.
인상주의자들의 화두는 빛이었다. 그들은 빛을 찾아 아틀리에 밖으로 뛰쳐나갔고, 거듭되는 관찰과 실험을 통해 독특한 원리를 구축했다. 인상주의자들을 두고 흔히 ‘외광파’라고 일컫는 것이 이 때문이다.
Impression, soleil levant, 1872
이런 인상주의에 가장 충실했던 화가가 모네Claude Monet(1840~1926)였다. 인상주의 화가들 중 누구보다 인상주의 이론에 충실했고 또 그 어떤 인상주의자들보다 탁월한 성취를 남겨 놓음으로써 후대의 미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모네의 <해돋이 인상, 1873>은 인상파라는 용어의 유래가 된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국의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1775-1851)의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새벽 물안개 속에서 떠오르는 태양 빛에 물드는 순간적인 장면을 포착하고 있으나, 초기엔 미완성작으로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모네는 사물의 디테일을 묘사하는 일에는 내내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오직 빛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 자체를 좇고 있었으며, 빠른 필치로 빛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색채를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Grainstack in the Sunlight, 1891
Grainstacks, 1891
Grainstacks in the Sunlight, Morning Effect, 1890
Grainstacks-Snow Effect, 1890-1891
모네는 연작을 많이 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이 연작들은 빛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색채들을 집요하게 추적하기 위해 제작된 것들이며, 그 결과 그의 그림들에는 그야말로 빛과 색채의 향연이라고 부를 만큼 풍부한 색채들로 넘쳐나고 있다.
특히 런던 국회의사당을 모티브로 한 연작들과 루앙 대성당 연작들 그리고 추수 후 볏 짚단을 쌓아놓은 낟가리들을 모티브로 한 연작들과 일련의 수련 연작들은 모네가 인상주의 이론에 얼마나 충실했던 연구자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Cathedral, 1894
Rouen Cathedral, gray weather, 1894
Rouen Cathedral, clear day, 1894
Rouen Cathedral-magic in blue, 1894
한때, 회화의 기초가 잘 갖추어지지 않은 미완성 회화의 주인공으로 냉소를 받았던 모네의 회화들은 이 연작시리즈들로 인해 그 탁월한 예술적 성취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고, 역사상 당대의 화려한 평가를 얻은 몇 안 되는 화가로 추앙을 받았다.(2011년 2월 / 2016년 7월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