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북악청년미술아카데미

1989년 Meta-Vox 해체전 이후, 나는 한국미술의 더 근본적인 문제—서구미술의 어설픈 차용과 그로 인한 종속 구조의 고착—를 다른 방식으로 끊어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동년배 작가들과 이론가들을 설득해 ‘후기미술작가협회’를 만들고, 본격적인 이론 학습을 위한 ‘북악청년미술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저서로 주목받던 학자들을 초빙해 토요일마다 강좌를 열었고, 매번 좌석이 가득 찼다. 당시 한국미술계는 용어마저 맹인모상 격으로 혼선을 빚어 토론이 어려웠고, 단편적으로 유입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오히려 혼란을 키우기도 했다.

 

아카데미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좌표’를 제공하는 단비 같은 역할을 했다. 강좌는 2년 4학기로 운영되었고 채록 자료집을 기획했지만, 예산 문제로 『한국현대미술과 모더니즘』(1991), 『한국현대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1992) 두 권만 간행되었다.

 

지속을 가로막은 것은 비용뿐 아니라 ‘세력화’에 대한 끈질긴 의심이었다. 학습을 조직하는 일조차 경계의 대상으로 번역되는 구조 속에서, 아카데미는 성과를 남기면서도 오래 제도화될 수는 없었다.

표지_한국현대미술과모더니즘.jpg

한국 현대미술과 모더니즘, 한국문연, 1991

한국현대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jpg

한국 현대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 ​한국문연, 1992

  • Facebook
  • Twitter
  • LinkedIn
  • Instagra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