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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과 조형: 억제된 질서, 간섭하는 질서

아크로폴리스와 제우스 신전에서 느꼈던 충만감은 건축물의 비례 분석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스 예술이 포착한 감각적 아름다움은 비례나 균형 같은 조형 구조로 설명되어 왔지만, 나는 이미 십여 년 전의 어떤 우연한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원천적인 미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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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Minutes, 3879 Strokes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반복된 행위를 통해 조형을 향한 의지를 억제한다. 그러나 짧은 선들의 불규칙한 리듬은 의도하지 않았던 화면의 밀도와 또 다른 질서를 드러낸다. 구조를 제어하려는 시도가 다른 질서를 발생시키는 역설이다. 

Robert Morris, 37 Minutes, 3879 Strokes, 1961

d-17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르다. 나는 질서를 억제하는 장치 대신 통제되지 않는 16겹의 드리핑을 통해 구조 자체를 차단했다. 일정한 높이에서 떨어진 물감의 파편들은 함께 뿌려진 물에 의해 번지고 퍼지며 서로를 간섭했다. 그리고 그 위를 덮는 새로운 드리핑과도 서로 뒤엉켰다.

 

시간은 곳곳에 흔적을 남기며 그곳에서 발생한 사건들의 관계를 흔든다. 이러한 결과를 조형적으로 이해하거나 어떤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은 감각과 인식의 체계가 만든 관성일 뿐이다. 모리스는 시간의 제약을 통해, 나는 통제할 수 없는 드리핑을 통해 조형적 의지와 서사를 제거했다. 그럼에도 이 화면에서 어떤 감흥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학습된 조형과는 다른 층위의 감각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가능성은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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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길, d-17, 종이에 아크릴과 물, 130 x 80 c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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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7 process2019.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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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색으로 연주한 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의 드로잉도 그 단서를 보여주었다. 어떤 조형적 훈련도, 구성에 대한 판단도 없는 그 그림에도 리듬과 밀도, 그리고 충만한 감각이 존재한다. 나는 그 그림 앞에서 밑바닥부터 흔들렸고, 그게 다시 시작해야 할 지점임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내가 학습해 온 모든 조형의 질서들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2019년에는 그 모든 걸 남김없이 해체해 버렸다.

 

질서는 분석된 구조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구조 혹은 더 작은 단위 속에서 스스로 형성되어 왔을 가능성이 크다. 태양계의 행성들처럼, 자연의 수많은 질서들처럼, 아름다움 역시 감각과 물질, 시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스스로 발생하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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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피아노(월광 소나타), 성산초 1학년 어린이, 2010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온 조형이라는 질서를 밑바닥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조형성은 실재하는가,

 

아니면 감응의 번역물인가.

 

이것은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며,

왜 그렇게 느끼는가—

 

그 질문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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