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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의 인식 

대학 시절 나는 또 다른 간극을 경험했다. 모 교수가 내 그림 앞에서 “이 버스는 이미 떠났다”고 말했는데, 내겐 미술의 방향을 시류로 인식하는 말로 들렸다. 나는 반문했다. 예술이 이미 정해진 노선을 따라가는 것인가.

 

그 장면은 충돌이기보다, 방향에 대한 질문이었다. 무엇이 어떤 점에서 앞서고, 뒤처진다는 건 무엇이며, 누가 그것을 결정하는지 질문을 유보하지 않았다.​당시 대학은 스스로 탐구하지 않으면 길을 찾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논문과 참고문헌을 추적하며 공부했다. 한 권의 책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그 연결이 또 다른 텍스트로 이어졌다. 훗날 나는 이 방식을 ‘갈지(之)자 걸음’이라 불렀다. 추적의 경로는 복잡하고 불규칙했다.​

 

그러나 독학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학과 내 스터디 그룹을 조직하고, 텍스트를 나누어 읽고 요약을 교환하며 토론을 통해 보완했다. 쿠르베에서 미니멀리즘까지,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 1970년대 단색조 회화와 1980년대 민중미술. 그건 단순한 학습이 아니라, 동시대미술의 위치를 점검하는 과정이었다.​

 

많은 이들이 중도에 떠났지만, 끝까지 남은 동료들과 Meta-Vox를 창립하면서 문제제기를 넘어 집단적 실천으로 이동했다. 방향을 묻는 태도는 여기서 형성되었고, 그 태도는 이후 작업과 활동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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