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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좌표 형성
1972년 겨울, 나는 아무 준비도 안된 상태로 갑자기 서울예고에 지원했다. 석고소묘를 해본 적이 없어 큰 종이 한가운데 주먹크기의 석고상을 새카맣게 그렸는데, 세련된 데생들 사이에서 내 그림은 아주 이상해 보였고 당연히 낙방하리라 생각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학교 신문에 입학 소감까지 썼으니 좋은 성적이었던 모양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난 그렇게 그 학교에 들어섰다. 훗날 그 평가자를 찾으려 했지만 끝내 알 수 없었고, 그 일은 의문으로 남았다.
첫 소묘 수업에서 나는 보결생 취급을 당했고, 그후 정규 소묘수업을 거부한 채, 석고상을 반복해 그렸다. 어느 날, 석고를 바라볼 때마다 외곽선이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다. 내 눈이 같은 모습에서 다른 것을 보게 되는 그 경험은 좌절이자 출발점이었다. 난 그림 그리는 기술을 훈련하는 대신 대상과 관찰 사이의 간극을 깨달았고, 대학에서 우연히 들었던 마르셀 뒤샹 강연과 폴 세잔에 관한 논문 속에서 같은 문제의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질문은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본다’는 건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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