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ta-Vox 창립전 도록 표지, 1985

Meta-Vox 해체전 도록 표지, 1989
Meta-Vox와 80년대 소그룹운동
Meta-Vox는 처음부터 미술운동을 염두에 두고 출발했다. 창립전과 동시에 확산을 겨냥한 기획전시를 준비한 것은, 탄탄한 전시를 위한 것이었지만, 우리의 생존과 미래를 걸고 구조를 통과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한국 미술계는 양극화되어 있었다. 1970년대 단색조 회화 세력은 제도와 심사 구조를 장악하고 있었고, 민중미술 세력은 또 다른 정당성을 내세우며 대립했다. 신진 작가들에게는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선택을 요구하는 공기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이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미술 내부의 폐쇄적 관계망—학연·지연·사제 관계, 의리와 불문율,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끈적한 감정—이 작품의 평가와 기회에 실질적으로 개입하고 있었다. 제3의 길이란 곧 ‘배신’으로 번역될 만큼 사유보다 위험이 다 가까운 때였다.
스터디 그룹의 토론을 통해 나는 두 흐름 모두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선택이 아니라 대립 구도 자체의 폐쇄성을 넘어서는 일이 과제였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주동이 되어 다른 이들을 불러일으키고, 다함께 생존과 불투명한 미래를 걸고 추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마련이다.
Meta-Vox의 오브제 작업과 동년배들과의 연대도 그 방법이었지만, 운동은 언제나 외부의 압박과 내부의 균열을 함께 동반한다. 이탈자가 생기고, 가시성이 생기면 경쟁이 시작되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바깥과 안쪽의 압력을 동시에 처리하지 못하면 운동은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
확산은 생각보다 빨리 가시화되었다. 여러 단체와 비평가들이 호응했고, 변화의 기류는 제도와 매체에서도 곧바로 포착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각자가 감수한 위험의 선택과 생존의 결과였다.
그러나 Meta-Vox의 궁극적 목표는 문화혼성의 조건 속에서 주체적 미학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심화시키는 일이었지만, 그 지점에 충분히 도달할 수 없었다. 그 시점에서 나는 또 다른 위험을 보았다. 이 운동이 또 하나의 세력으로 고착될 가능성, 그리고 그 고착이 다시 역사를 점유할 가능성이다.
1989년, 나는 멤버들을 설득해 Meta-Vox의 해체와 소그룹운동의 종식을 공식화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활동을 정리한 도록을 간행했다. 해체는 패배가 아니라 반복을 경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집단은 해체되었지만, 질문은 남았다. 대립 구도를 넘어서는 미학은 가능한가.
그리고 그것을 또 다른 세력으로 만들지 않고 지속할 방법은 무엇인가.



Meta-Vox 창립전 뉴스 게재 - 일본 미술수첩 1985년 12월호



첫 번째 기획전시 EXODUS 뉴스 게재 - 일본 미술수첩 1986년 5월호
Meta-Vox 창립전 1985, 후화랑
Exodus 1986, 관훈미술관
Meta-Vox 2회전 1986, 백송화랑
한국현대미술의 최전선, 1987, 관훈미술관
87 청년작가전,1987, 국립현대미술관
해빙,1987, 수화랑
Meta-Vox 3회전 1987, 관훈미술관
87 문제작가작품전 1988, 서울미술관
Meta-Vox 4회전 1988, 미술회관
한국미술평론가협회 기획 30대전,1988, 미술회관
Meta-Vox 해체전 1989, 녹색갤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