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1 - New York에서의 첫 소통 경험
41년에 걸친 여정엔 두 개의 변곡점이 있다. 그 하나가 P.S.1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경험했던 New York이었다.
책과 사색을 통해 이해한 현대미술은 분명히 서구의 역사주의 문맥 위에 서 있었고, 내겐 이 간극을 뛰어 넘어 동시대미술 맥락 속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다. 10여 년의 줄기찬 시도들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가장 큰 목마름으로 남아 있던 터였기에 P.S.1 프로그램을 통한 New York 미술계와의 만남은 기대와 긴장으로 버무려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난 1985년 이후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소통의 짜릿함을 맛볼 수 있었다.
내가 방법으로 동시대미술의 궤도를 통과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것이 이후의 작업에 막강한 동력이 되었다.
New York에 도착한 다음 날 나는 Soho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Media Scape전을 관람하면서 video art의 중요한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이 때까지 난 8mm 캠코더로 촬영해서 편집없이 재생했던 <Big Mouth, 1996> 정도가 전부였지만,1989년 제스리 쇼의 읽혀지는 도시나 빌 비올라의 작품들을 보며, 예술에 있어서의 미디어 테크놀러지가 지닌 한계를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Big mouth, 1996


single channel, sound

McDonald's & Malboro lights
70년대 초기의 law-tech video 작품들을 연구하면서, 낯선 도시의 문화적 이질감과 어릴 때 보았던 Hustler의 충격을 담아, New York에서의 첫 작품을 제작했다.
유난히 소리를 내며 먹던 사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그걸 연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형편 상 편집장비를 빌려쓰는 것도 여의치 않아 캠코더와 VHS 데크를 직접 연결해서 편집했었다.
햄버거를 먹는 입과 담배를 피는 입이 서로 마주 보고 연기를 하도록 시간 연동을 계획했지만 여건 상 실현되지 않았고, 빛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어 같은 벽에 나란히 프로젝션되었다.
double channel, sound
untitled 97-7, 1997

single channel, sound
New York에서 제작한 두 번째 작품으로 P.S.1 미술관의 화장실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 아시안 시장에서 닭의 피를 구해다가 직접 떨어뜨리며 촬영했는데, 이 때문에 미안한 일이 많았다.
화장실이라는 폐쇄 공간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을 연출하고 전시공간이라는 공적 장소의 바닥에 프로젝션했고, 묵음처리와 슬로우 모션으로 긴장감을 끌어 올린 후 flushing 순간에만 사운드를 삽입해 충격을 극대화했었다. 감상자들은 발 앞에서 출렁이며 튀어오르는 핏물을 피해 반사적으로 물러서기도 했고, 갑작스런 flushing 사운드와 발 밑으로 핏물이 쏟아져들어가는 영상에 상당한 충격들을 받았다.
1993년 침묵의 방과 Hairlines of control부터 시작된 '감상의 재배치'가 심화되고 있었다.

Spitting, 1997
P.S.1에서 돌아와 제작했던 첫 작품으로, 23초간의 단 한번 촬영이었고, 실시간대로 테이프에 옮겨졌다.
얼굴 전체에 베이비 파우더를 바르고, 침을 묻혀서 붉은 입술을 드러내고 관객을 향해 침을 뱉는 연기를 수행했다.
'감상의 재배치'가 감상자를 향한 이미지 폭력으로 진화된 방식의 실험이었다.
single channel, sound
Skin licks & Torn flesh, 1998

single channel, no sound

single channel, no sound
상처를 핥아 치유하는 동물의 습성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과도한 자기애와 집중의 나르시시즘, 자기 혐오와 학대의 연기로 타자화의 거울을 연출했던 작품이다.
슬로운 모션 편집으로 늘려진 시간이 관람자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던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