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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드로잉,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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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에 안료와 먹, 물, 163.7 x 79.1cm, 2011

예술가로서의 40여 년 여정엔 두 개의 큰 변곡점이 있는데, 하나가 P.S.1의 1년이었고, 다른 하나는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의 그림에서 받은 충격이었다. 그 무렵 나는 예술을 매개로 한 융복합교육 콘텐츠를 제작해서 초등학교 1학년들과 유치원 아동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들 중 하나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의 1악장을 들려주며, 그 느낌을 도화지에 손가락 피아노로 연주해 담아보게 했던 수업이었다.

그중 한 초등학교 어린이의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그동안 연구해 온 모든 것들이 뿌리째 흔들리는 충격에 휩쌓였다. 그것은 어떤 기술도 배운 적 없는 어린 아이의 감각을 통해 드러난 원초적 감수성이었고, 뒤늦게 "어쩌면 이것이 예술이 시작되어야 할 원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의 진동으로 이어졌다. 더구나 그 그림을 본 초등학교 담임교사도, 수업을 운영했던 강사도 아름다움을 느꼈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 날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상당한 기간에 걸친 진통 끝에 그 아동의 그림을 오마쥬해 보기로 작정하고 이 드로잉을 제작했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에 따라 내가 월광을 들으며 종이 위에 그리는 손가락 피아노였다. 그리곤 모든 게 확실해졌다. 마음이 급했지만 수 십명의 생계가 달려 있고, 수백 명의 아동들과 교육청, 학교들을 당장 뿌리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척 답답한 시간들이 흘렀다.

​그렇게 정신없이 몇 년을 보내다가, 유감스러운 일로 폐업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선 이 드로잉에 대한 기대 때문에 해방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작업으로의 복귀는 단번에 이루어졌다. 회사 짐들을 쌓아놓은 창고 한 귀퉁이를 정리하고 본격적인 드로잉에 나서면서 난 전혀 다른 궤도를 열 수 있었다. 더 이상 동시대미술의 역사주의 문맥을 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역사는 우리 모두가 넘어야 할 과제였고, 난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강화도라는 섬에 집과 작업실을 짓고 몇 년간 1,000여 점이 넘는 드로잉을 제작했다. 

꼬마 예술가들의 손가락 피아노와 계절나무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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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피아노(월광), 성산초 1학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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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나무 그리기(겨울), 개포유치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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