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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eriments in Material and Time

2019–2020

아무 것도 묘사하지 않고

아무 것도 말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표현하지 않는 그림.

그리면서 기쁘고,

아무런 선입견 없이 원천적인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사상과 신념과 귀한 것들로부터 독립된, 

​'그것'으로 '그것'을 그리는 작업.

d-17, 2019
SanggyelOh_8.jpg

​종이에 아크릴과 물, 130.2 x 80cm

이 작업에는 ‘폴 고갱과 마크 로드코에 대한 경의’라는 부제를 붙였다.

화가는 색에 관한 분명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색은 대상을 묘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화면의 질서와 공간을 형성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16겹의 dripping layer. 그 어느 순간에도 그리려는 의사는 없었다. 이 드로잉을 시작하고 적어도 수십 일간 나는 오직 물감과 물을 떨어뜨리는 행위와 그 흔적, 그리고 기다림 속에 머물렀다. 물감과 물을 뿌린 뒤 완전히 마르기를 기다리고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한 겹의 layer가 하루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했고, 그렇게 많은 시간들이 화면 위에 겹겹이 쌓였다.

 

화면에는 내가 아니라 뒤엉킨 물감 덩어리들이 내뿜는 빛깔과, 메워지지 않은 바닥들이 군데군데 숨을 쉬고 있다. 구상도, 스케치도, 계획도 없이 오직 물감의 빛과 손끝의 감각, dripping의 우연에 기대어 이루어진 작업이었다. 어떤 것도 목적하지 않는 행위의 비선형성은 그 흔적들을 시간으로부터 독립시키는 또 하나의 장면을 만든다.

 

이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면 물감과 물이 튀고 서로 엉겨 붙은 흔적들과 물감 덩어리들이 군데군데 더덕더덕 붙어 있어 거칠다. 그러나 약간 거리를 두고 보면 다홍색과 그린의 보색 대비가 화면 전체에 화려한 장식성을 드러낸다. 내가 장식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색 자체의 본질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d-118, 2019
19-d118-4.jpg

​캔버스에 아크릴, 116.7 x 91cm

어떤 것도 목적하지 않는 행위의 비선형성이 그 행위를 시간으로부터 독립시켜 준다.

d-215, 2020

2020-d215-2.jpg

전통 한지에 젯소와 먹, 149.6 x 78.3cm

손에 가득 먹물을 움켜쥐고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면, 화면에 가해지는 압력과 움직임의 속도를 더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다. 눈이 보는 것과 손이 느끼는 감각이 혼란스럽게 교차되는 순간, 내 의지마저 허락하지 않는 회화의 지평이 열린다. 마치 내 손이 젯소의 표면을 뚫고 종이 속으로 들어가 휘젓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d-220, 2020

220-20200414_150029-1.jpg

전통 한지에 젯소와 먹, 149.6 x 78.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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