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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서 있는 문화예술의 정치학


 

 

한 해가 저물고 있지만, 선거 때문에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국가의 미래를 건 선거판에 정책과 대안에 관한 논의는 없고, 루머와 흑색선전 그리고 격앙된 감정들이 난무한다. 민도나 생활수준이 낮은 것도 아닌데 선거문화는 왜 이리도 성숙되지 않는 것일까?
정치란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의 힘을 빌려 뜻을 이루는 일이다. 노무현 정권은 마음을 얻어 집권에 성공했지만 위임받은 권력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을 실현하려다 몰락했다. 국민각료추천을 제안해 놓고 낯빛을 바꿔 코드인사를 단행하고, 어설픈 재벌해체 空約으로 서민경제를 망쳐 놓았다. 문화예술계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코드인사로 문화예술기관들을 장악하고 문화와 예술을 정치도구화하여 인위적으로 문화권력을 재편했다. 국민에 대한 오만과 편견 그리고 배신으로 얼룩진 정치였다.

한국의 정치문화는 민주화에 이어 또 한번 껍질을 벗어야 하는 시점에 이르고 있다. 정치가들은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하고, 권력도 전문영역 별로 재편되어야 한다. 국가의 주체는 국민들이고, 그들 대다수는 전문분야에 종사하는 지식인들이다. 그들이 경제와 산업, 과학과 문화를 이끄는 주체들이고, 전문적 특수성을 잘 알고 있는 정치가들을 원한다. 오늘의 국가는 이념을 토대로 통치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각 분야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국민역량을 극대화해 내는 방식으로 경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대통령 후보들이 내놓고 있는 정책들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특히 문화예술분야가 더 그렇다. 다들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이나 전략은 찾아볼 수 없다. 현 정권의 어설픈 정책과 뒤틀린 시스템들, 파쇼적 폐단들에 대한 문제인식도 없다. 유력한 야당후보의 정책조차 현 정권의 정책 주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문화예술인들의 가난을 사회적 약자들의 그것과 혼동하고, 국민들의 혈세로 처우개선이나 지원확대 같은 선심성 공약을 내 놓고 있기도 하다.
‘문화의 시대’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으로 어떻게 실현해 갈 것인가의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일이다. 후보들 중 누군가는 국민들의 마음을 얻어 집권하겠지만,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가 왜 ‘문화의 시대’를 열지 못했지를 정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경영철학을 뒷받침할 중장기 전략과 시행 상 오류를 최소화할 치밀한 설계가 아쉬운 오늘이다.

 

오상길, 문화예술NGO 예술과시민사회 대표
 

(세계일보 200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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