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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열어 보는 <한국미술 100년>展?

성철 스님은 간혹 예고 없이 암자를 내려와 다짜고짜 몽둥이 찜질을 하면서 선방의 스님들에게 “이 놈들아 밥값 내놔라”라고 고함쳤다고 한다. 나태한 수행을 꾸짖는 뜻이었다.

우리는 과연 밥값을 하고 있을까? 
나는 우리의 삶 그 자체가 탁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너로 인해 존재하고 너는 나로 인해 의미가 지어진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땀 흘려 일해 번 돈으로 세금을 내고, 그 돈으로 길도 닦고 미술관도 지어 전시회도 열지 않는가?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세상 모든 일에 연관이 되어 있고 알게 모르게 복잡한 관계들을 맺고 살아가는 셈이다. 밥값을 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은 각자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를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작가는 작가대로 기획자는 기획자대로 평론가는 평론가대로 말이다.



천둥번개가 치고 강풍과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더니 다음 날은 쾌청한 날씨에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와 모처럼의 외출을 들뜨게 만들었다. 갈 때마다 느끼지만 먼발치에서 보이는 미술관 건물과 들어서는 길목의 숲길은 꽤 괜찮다. 게다가 비온 뒤의 싱그러운 풀내음까지...

< 한국미술 100년>(2부)은 지난해 1부에 이어 기획된 전시로 적지 않은 의문을 갖게 했다. 우선 거창한 타이틀이 그렇고, 기획의 목적과 방법, 구체적인 디스플레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의구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이 의문들은 각 개체단위의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어, 끝내는 ‘도대체 이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기획자는 전시가 작품을 의심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한국미술 100년을 바라보는 시각은 무수히 많을 수 있다. 일천한 역사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 세기에 걸친 역사이고 보면 작가의 숫자가 몇이겠고 그들이 제작한 작품들은 또 몇이겠으며, 각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또 얼마나 많을 수 있겠는가?
모든 역사가 그렇듯 100년에 걸친 미술의 역사를, 그것도 명색이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전시라면, 그 궤적을 뒷받침할 관점과 전략 그리고 방법론은 제시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이 전시의 리플렛은 “지난해의 제1부 전시가 20세기 초입부터 6․25전쟁까지의 ‘근대’를 다루었고, 이번의 제2부 전시가 전쟁 직후에서 20세기 후반을 가로지르는 ‘현대’의 시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전시의 주제가 ‘정체성Identity’이며, ‘정체성’이 한국현대미술의 현장에서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지닌 개념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전통, 인간, 예술, 현실 등 4가지로 범주로 세분하여 살펴본다고 밝히고 있다.
각론으로 들어가서 이 전시는 1957년부터 1966년에 이르는 시기를 “전후 모더니즘 미술과 실존적 정체성의 모색”으로, 1967년부터 1979년의 시기를 “실험미술과 단색조 미술, 현대미술의 진로를 묻다”로 구분하고 있다. 또 이어서 1980년부터 1987년의 시기를 “현실, 그 인식과 실천의 과제”로 1988년부터 현재를 “다양성, 대안적 정체성의 모색”으로 나누었다.

먼저 1부의 전시와 2부의 전시가 왜 1957년을 분기점으로 나뉘어지고 있는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왜 같은 1957년에 발표되었던 작품들 중 어떤 작가들의 작품은 1부 전시에 포함되어 ‘근대’로 분류되고, 또 어떤 작가들의 작품은 2부 전시에 포함되어 ‘현대’로 분류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떤 준거에서 한국미술에 있어서의 ‘근대’와 ‘현대’를 규정하고 있는 것일까? 나중에 출간된다는 도록에서 자세히 다룰지는 모르겠으나 현재로선 이런 의문들에 관한 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1957년과 1967년, 그리고 1980년과 1988년이 분기점으로 제시되고 있는 까닭도 궁금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리플렛에서 1957년의 ‘앵포르멜’ 혹은 ‘추상표현주의’, 1967년의 청년작가전이나 5.18민주화 운동 그리고 서울올림픽을 각각 그 근거로 제시했으나, 나는 그런 사건들이 어떤 측면에서 어떻게 한국의 미술현상과 가치를 변화시켰다는 것인지 그리고 그런 성격들이 어떤 근거에서 그 시기의 미술들을 대표한다는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제시한 역사구분 방식과 대표성은 실로 뜬금이 없는 것이다. 엿장수가 엿가락을 끊어 내듯 ‘근대’와 ‘현대’를 논거도 없이 제멋대로 규정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 이하 전 학예연구원들의 역사와 미술에 관한 학문적 인식과 고민이 절대적으로 부재한 탓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전시는 왜 구상을 했을까?

물론 부분적인 단서는 있다. 1957~1966 “전후 모더니즘 미술과 실존적 정체성의 모색” 파트에서 “19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중반까지 한국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은 ‘앵포르멜’ 혹은 ‘추상표현주의’ 미술을 중심으로 모더니즘 미술운동의 양상과 의미를 살펴본다”고 적어 놓고 있는 리플렛의 언급이 그것이다.


지적할 것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논해야 할지 난감하지만, 대체로 이 언급은 6․25전쟁 이후의 미술, 그 중에서도 ‘앵포르멜’ 혹은 ‘추상표현주의’ 미술을 한국미술로서의 ‘근대’와 ‘현대’를 구분짓는 경계로 삼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왜 ‘앵포르멜’ 혹은 ‘추상표현주의’ 미술이 ‘근대’와 ‘현대’의 경계가 된다는 것인지에 관한 논거는 없다. 그리고 왜 한국의 특수한 역사를 ‘근대’ 혹은 ‘현대’라는 서구의 역사구분 개념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인지, 또 그 미술들을 ‘앵포르멜’ 혹은 ‘추상표현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나는 19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중반까지 붐을 이루었던 일련의 추상미술들이 어떻게 한국의 모더니즘 미술로 규정되고 있는 것인지, 서구의 모더니즘 미술이 한국미술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지도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모더니즘 미술운동’이라는 용어가 미술사적으로 무리 없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모더니즘이 미술운동으로 성취될 수 있는 문제였던가?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일까? 미술운동이 무엇인지는 알고들 하는 말일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 물고 떠오른다. 의문이라고 말했지만 이 문제들은 하나같이 학문적으로나 비평적으로 심각한 문제들이 아닐 수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역량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지적해 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왜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렇듯 감당하지도 못할 문제들을 안고 이런 전시를 무리하게 자꾸 기획하는 것일까?

미술관 측은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주제로 내세웠지만, 나는 차라리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을 향해 ‘너는 누구냐’고 묻는 것이 더 낫겠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그런 질문이라면 최소한 자신에 관한 윤리적 반성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앞서 밝힌 바대로 1957년 이후 현재까지의 한국미술을 4단계로 구분하고, 각 시기를 전통, 인간, 현실, 예술이라는 테마들로 나눔으로써 총 16개의 틀로 작품들을 분류해 놓았다. 이런 명제들이 어떤 발상에서 비롯되어 정체성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말인지 상상력이 빈곤한 필자에게는 몹시 난해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 전통, 인간, 현실, 예술이라는 테마들과 관련을 맺지 않고 있을 수 있으며, 또 무엇을 근거로 구분될 수 있다는 말일까?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끔찍한 기계적 분류가 스스로 던진 역사적 정체성 물음에 값하거나 답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단위 작품의 선정과 배열에도 문제가 있다. 역사성을 부여하는 전시를 구성할 작품들은 그저 그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 중의 하나로 결정지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간 있어왔던 한국현대미술 맥락을 조명한 전시들 대부분에서 무수히 발견되었던 것이지만, 미술현상들을 연대별로 나열해 놓고 해당 시기의 미술작품들을 배열하는 안이한 방법으로 까다로운 문제들을 손쉽게, 그러나 무자비하게 재단해 놓았었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전시방식은 미술현상과 미술작품들에 관한 각론적 연구도 없이 기획자들이 제멋대로 그 미술들에 임의적으로 특징을 부여해 왔던 오류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주 하게 되는 얘기이지만, 역사성을 띠는 전시에 등장하는 각 작품들은 그 자체로서만이 아니라 기획자가 제시하려는 역사성의 근거로 ‘선택’되어 ‘집중’되는 것이므로, 다양한 시각에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여 검토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왜냐하면 작품의 ‘선택’과 ‘집중’이 곧 전시에 특징을 부여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며, 특히 역사성을 내세우는 전시에서는 경솔한 작품의 선택이 곧바로 섣부른 ‘선택’과 ‘집중’의 오류가 되어 본의 아니게 한국미술의 맥락 자체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왜 다양한 미술현상들과 작품들 사이에서, 하필이면 그 미술현상과 그 작품들이 한국미술 100년의 궤적을 논하는 전시에 등장하고 있는 것인지를 일일이 캐어묻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2부 전시가 지난해 열렸던 1부 전시의 연장선상에 있는데도 관점과 방법상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기획자가 바뀌었을 수도 있고 생각의 변화가 있었을 수도 있다. 또한 지난해의 1부 전시가 더 나았다는 뜻도 아니다. 필자의 눈에는 1부의 전시도 일천하기 그지없기는 마찬가지였으며, 조잡하고 조악한 전시로 기억되고 있는 터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의 1부 전시에서는 구본웅의 그림과 일본인 스승의 그림을 찾아 함께 걸어 놓는 식의 치졸한 기획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고, 온갖 잡다한 것들을 동원하여 병치시켜 놓는 방식으로, 당시 미술을 이러이러한 주변 상황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끔찍함이 있었다. 필경 이런 전시방식이 훌륭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왜 이것을 끔찍하다고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요즘 미술사 전공자들 사이에 무슨 시대적 트렌드인 것처럼 정치사회적 시대상황과 미술현상을 교차시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이런 시각자체가 상식적인 수준의 발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검토는 전시기획의 단계 이전에 고려되었어야 할 문제이다. 작가가 어떤 식으로든 시대상황에 따르는 자극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해서, 그러한 자극과 영향이 모든 작가들의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근거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사회적 사건과 예술작품 간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추정은 연구단계에서 생각하고 검증했어야 할 문제라는 말이다.
따라서 기획자는 자극과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상식적인 논리를 제기할 것이 아니라, 그 자극과 영향의 실체가 무엇이었고 그 영향이 미술이라는 활동이나 구체적 작품 속에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 것인가를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각 미술작품에 관한 구체적인 분석과 이해가 없이는 그 영향을 밝혀낼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난해의 1부 전시는 그러한 핵심적인 과제들은 고스란히 간과해 놓고 관람자의 시선만을 어지럽혀 놓고 있었다. 미술작품들과 미술현상들에 관한 연구와 논의 그리고 학문적 논증이나 최소한의 비평적 담론의 근거조차 없이, 그저 그럴 것이라는 막연한 전제에서 틀만 빌려다가 관람자의 시선을 강제로 끼워 맞추며 집중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관람자들에게 미술작품과 주변의 정치사회적 상황 간의 관계해석을 강요하는 전시방식이 각 단위 미술작품들이 미학적 성취와 관람자들의 감상활동에 공히 독재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획자의 서툰 독단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덧붙여 일부 평론가들이 ‘한국의 작가들은 서구미술을 답습하며 모방해 왔다.’고 비판해 왔던 사실에 대해서, 그들이 그런 말을 하면서도 정작 창작과 모방의 경계를 설명하지 못해 왔음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저 이러이러한 점이 외형상 비슷하다는 말이었고, 이전에 그런 그림을 그린 적이 없으니 모방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 자신은 왜 서구 미술이론들의 한 귀퉁이를 적당히 베껴서 그 틀에 한국미술을 끼워 맞추려고 안간힘들을 쓰고 있는 것인가? 과연 한국의 미술을 주체적이고 창의적으로 설명할 비평적 준거나 미술사적 방법론을 구축해 놓은 이론가들이 있기나 한가 말이다. 아니 한국미술이 지닌 서구미술과의 차이를 규명할 최소한의 단서들이나 포착하고 있는 것인가? 서구미술 이론의 준거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밥값도 못하는 평론가 미술사가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이 말은 남의 양식을 손쉽게 빌려다가 트렌드로 소비하며 당대미술의 최전위에 서있는 작가인양 거들먹대는 위인들을 비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 어설픈 방법들이 그런 사람들에게 뻔뻔스러운 알리바이를 제공해주어 왔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비평담론의 활성화를 통해 작가가 스스로 자신의 미술을 논증하도록 만들면 어렵지 않게 밝혀낼 수 있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창작과 비평 그리고 미술사적 진술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껍죽대고들 있는가?

속담에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흉본다’고 했던가. 결국 나를 위시하여 이 미술판에서 밥을 먹는 작가나 평론가, 미술사가 할 것 없이 한심하기는 매 한가지이고, 기자나 큐레이터, 화상 역시 부끄러운 줄 모르기는 마찬가지인 셈이다. 대학의 교수로 있던, 미술관의 큐레이터로 근무하던 전업작가로 행세를 하던 밥값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아예 밥값을 하지 않으려는 위인들도 하나 둘이 아니지를 않는가? 왜 이 미술계는 그런 자들을 방치해 놓고 돌아서서 서로 흉보며 남의 탓만 하고 있는 것인가? 나 살자고 남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는 위인들이 적지 않고, 어느 자리건 차고 들어가 앉으면 내 권한이고 내 맘대로라는 식의 풍토가 어떻게 용인될 수 있다는 말인가?
한국미술 100년이라고는 하지만 유치한 ‘동네미술’ 수준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부분적으로는 심각한 퇴행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미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또는 “아직도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따위의 섣부른 자조의 말을 읊조리는 위인들도 있다. 분수를 모르는 자들이 알량한 제 눈높이에 미술을 끌어내려 놓고 자기가 모르면 남도 모를 것이며, 자기가 못하면 남도 못할 것이라고 방자하게 뇌까리고 있는 것이다. 정말 웃기는 인간들이 아닌가? 그런 위인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겠지만, 역사에는 그런 자들을 얼마든지 파묻어 버릴 수 있는 엄청난 블랭크가 존재한다는 것 또한 상식이다. 설마하니 그런 자들을 위해 땀 흘려 역사를 정리하고, 한해 270억 원씩이나 되는 혈세를 축내며 국립현대미술관을 운영하고 있겠는가?

모처럼 쾌청한 날 교통비와 3,000원의 입장료를 물고 실로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의문들을 떠안았다. 어찌 생각하면 한국의 미술계에는 그런 의문들을 제시하는 일 자체에 회의를 느끼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진정한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은 이 웃기는 미술판을 위해서 애를 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미술이 지닌 가치를 천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를 놓고 돌아서서 킥킥거리며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명실공히 한국현대미술의 자존심이 되어야 할 미술관을 지어 놓고 운영하면서, 스스로 망신과 자조를 거듭 반복할 수만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미술동네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우리 탓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어떻든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미술하는 사람들끼리 조용히 문제를 공유하면 될 일인 것이다.

혹시 이 글이 건강한 논쟁의 발단이 될 수 있다면 앞서 제기한 의문들을 더 구체화할 의사가 있다. 그것은 이 의문들이 나에게 한정될 것이 아니므로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미술의 제문제들을 공론의 장 속에서 쟁점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 이 숙제들을 풀기 위한 토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고, 때문에 토론의 대상이 누가 되었던 가리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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