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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담론  인터뷰 - 21호(2005년)

졸저, 비평가들이여 내 칼을 받아라, 2005, IC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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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담론: 안녕하십니까? 여러 가지로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선 작년 말 <비평가들이여 내 칼을 받아라>라는 비평집을 출간하셨는데, 많은 비평가들이 꿈꾸지만 쉽게 진행하지 못하는 메타비평적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한국 미술 비평사에 있어서도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책을 구상하시게 된 배경은 무엇이고 언제부터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계셨는지요?

 

오상길: 이미 아시는 얘기이지만, 이 책의 출간에 앞서 6년간의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라는 메타비평 성격의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는 제가 기획했지만, 실로 많은 분들의 공감과 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의 필요 인식과 공감대가 곧 메타비평의 당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자신에게 있어서의 필요 인식은 이미 1990년대 초반 미술동지들과 함께 운영했던 북악청년미술아카데미 시절부터 구체화되어 있었고, 더 이르게는 대학에 다닐 때 공부하면서 가졌던 의구심으로까지 소급됩니다. 당시 스터디 그룹을 통해 함께 공부했던 동료들도 뭔가 말이 안 되는 한국현대미술에 관한 내용들 때문에 상당히 혼란스러워들 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비공식적으로 평론가들에게 문제를 지적하고 교정의 필요성을 조언해 왔고,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에 평론가 및 미술사가들의 참여를 독려했던 이유도 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에게 스스로 메타비평을 주도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교정은커녕 갈수록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 같더군요. 오히려 한국의 미술비평계와 미술사학계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뚜렷이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비평가들이여 내 칼을 받아라>는 이런 토대 위에서 출간된 일종의 고육지계입니다. 우리 미술계는 뭔가 크게 달라져야만 하고, 변화를 위해 비평 활동이 먼저 제 자리를 찾아야만 합니다.

 

 

미술과 담론: 비평집이 발간된 이후 정작 그 비평의 대상이 된 비평가들로부터는 어떠한 반응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인 반응들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시고 반응이 없었다면 그 이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또 그와 관련된 우리 비평계의 풍토에 대해서도 입장이 계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상길: 비평가들의 침묵은 이미 책을 쓰면서 예상했던 일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공감과 격려의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 작은 사건들 속에 한국미술계가 지니고 있는 문제들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평가들이 침묵하고 있는 이유는 한마디로 두려움 때문일 것입니다. 우선 잃을 것이 많은 사람들이라 충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미술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 제가 지적하고 있는 내용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확실한 이유는 그들의 글에 잘 나타나 있듯, 재능과 소양이 일천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원래 모든 예술은, 그것이 현장의 창작 작업이든 비평 작업이든 탁월한 예술적 감성과 열정 없이는 성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평론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한국에서는 아무나 비평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재능도 열정도 소양도 지성도 없는 사람들이 평론가라는 직함을 이용해 미술제도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며, 한국의 현대미술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한국의 미술비평은 미술문화에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하고 있는 측면이 더 큽니다.

물론 존경받을만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은 극히 제한적이고,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고립되어 있거나 섞이기 싫어 스스로 침잠해 버렸습니다. 한국의 미술비평계에도 아류들과 사이비들의 기회주의적 담합 풍토가 만연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책이 그런 분들께 야단을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분들과 문제를 맞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물론 그런 일들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미술평론가를 자처하고 있지만, 그 사람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메타비평의 부재는 ‘아무나 평론가’를 만들고 있고, 소위 주류 평론가를 자처하는 자들의 보호막이 되고 있습니다. 평론가협회 혹은 무슨 미술사학회 등등의 단체들이 먹이사슬 고리가 되어 기득권자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미술인들은 그 단체들이 한국의 현대미술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냉소적 분위기는 그 단체들 속에도 만연해 있지만, 소위 주도권을 쥔 사람들은 “그래서 어쩔 건데?”라고 들이대듯, 회원들의 냉소와 자조적인 발언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어차피 미술에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흔들릴 이유가 없는 것일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대학교수이자 미술평론가 또는 미술사가라는 직함과 영향력 그리고 수입이 중요할 뿐입니다. 문제는 이런 풍토를 방치하고 묵인해 온 미술계의 기회주의적 태도에 있고, 이런 배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저로선 작가들의 격려 전화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가울 수만도 없는 형편입니다.

 

 

미술과 담론: 도발적 제목에서 보이는 성격과는 달리 어느 글에선가 비평계와 비판이 대상이 되었던 비평가들을 공격하는 것 보다는 새로운 담론을 촉발시키기 위해 새로운 마당을 만들고자하는 의도에서 책을 발간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비평계와 화단이 생산적이고 비평적인 새 담론을 만드는데 인색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오상길: 그 제목과 표지 이미지 때문에 적지 않은 고심을 했었습니다. 작가가 그런 책을 썼다고 꾸중하실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던 분 중에 김병기 선생님이 계신데, 그렇지 않아도 책 제목에 관해 한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너무 난삽하지 않느냐는 말씀이었는데, 책을 다 읽으시고는 그런 타이틀을 쓴 의도를 알겠다고 하시더군요. 유쾌하시다며 껄껄 웃으셨는데, 그때야 마음이 좀 놓이더군요. 저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비평가들이여 내 칼을 받아라’라는 제목은 침묵할 것이 뻔히 예상되었기 때문에, 비평가들의 자존심을 직접 타격하려는 심산에서 지은 것이지만, 내용에서 밝히고 있듯 저는 한국의 미술비평이 비평으로서의 역능을 회복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총대를 매고 시작하면, 뭔가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 물론 비판의 타켓이 된 당사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회복이 어렵겠지만 그 사람들 외의 다른 비평가들, 예컨대 다음 세대의 주자들과의 대화 내지는 논쟁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결자해지’라고, 결국 이 모든 문제들은 비평가들의 몫입니다. 제가 대신 총대를 맨 것뿐이지요. 비평에 관한 미술인들의 광범위한 불신과 오해도 풀어야 하고, 비평가들의 자존심도 찾아야 합니다. 저는 그런 일을 도울 것입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렸듯, 비판을 받은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쥐고 있는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고, 그런 만큼 생산적이고 비평적인 새 담론을 만드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새로운 비평담론의 활성화는 곧 비평계의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미술계의 세대교체를 의미합니다. 저의 도전에 대한 비평계의 방어적 침묵은 바로 이 세대교체를 두려워하는 일부 기득권자들의 입장을 두둔하며, 역사의 순리를 거스르는 오류입니다. 다시 말해서 학위심사나 시간강사 내지는 대학의 교수임용 등의 문제들 때문에 기득권자들에게 코가 꿰어 있는 차세대 비평의 주역들의 자성과 결단이 필요한 시점인 것입니다. 세대교체가 되면 각자의 소신대로 당당하게 성취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미술과 담론: 이번 비평집에서 보면 비평의 대상이 되었던 평론가들이 소수로 제한이 되어 있는데, 특별히 그들이 대상이 되었던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입니까? 그분들의 비평적 담론이 우리 미술계에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요?

 

오상길: 물론 책에 언급된 8명의 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만이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선택했을 뿐입니다. 제가 언급한 8명의 평론가들은 적어도 수십 년간 미술계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 온 사람들이고, 그런 만큼 역량에 비해 미술제도의 단맛을 너무 많이 보아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미술계의 패권주의적 풍토에 길들여져 있고, 미술운동으로 미술계의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을 한국현대미술의 중심에 올려놓는 일과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추인하는 일에 기여한 공신들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평론가로서나 미술사학자로서의 기초적인 윤리와 지성을 배신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사람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이 한국미술에 있어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막강한 음성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술에 관한 공부를 해 왔다고는 하나, 직업적인 평론가들이나 학자들에 비해 얼마나 더 했겠습니까? 그런 일개 작가의 도전이 두려워 자존심도 없이 쥐구멍을 파고드는 자들의 손에 한국미술의 현재와 미래를 계속 맡겨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런 정도의 위인들을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올려놓고 전횡을 묵인해 온 한국 미술계의 풍토와 차세대 주역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미술과 담론: 비평을 비평하는 메타비평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비평적 시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을 저술하시면서 오 선생이 주안점을 두었던 비평적 관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이는데 그 관점에 대해 말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상길: 제 책에는 미술과 비평의 관계에 관한 다소 낯선 언급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저 개인의 생각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잘 몰랐던 미술과 비평에 관한 보편적인 인식이지요. 우리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왜곡된 표피적 근대화를 이루었고, 해방 후 다시 미국 중심의 제도적 서구화를 통해 일그러진 현대화를 거쳐 왔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런 역사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일부 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이 행해 왔던 것처럼, 한국현대미술 전반을 수용과 모방 그리고 문화적 종속의 맥락에서 비판하는 식의 대안없고 무책임하며 소모적인 자기비하가 되어선 안됩니다. 그 사람들은 한마디로 앞서 지적한 ‘아무나’에 속하는 몰지각한 위인들입니다. 만일 한국현대미술이 뿌리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면, 그에 앞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뿌리는 어디 있으며, 자신들이 전공한 비평과 미술사의 뿌리는 어디 있는지부터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뭐 묻은 개가 재 묻은 개를 흉본다는 속담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문화나 예술은 본래 지역적 원전성originality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문화도 예술도 개인 혹은 소집단에서 비롯되어 파생되어 가면서 다른 성격의 문화나 다른 예술가의 감성과 절충 내지는 혼성되게 마련입니다. 참조되지 않은 문화와 예술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세잔이 없는 피카소를, 마네 없는 인상파를, 그린버그 없는 잭슨 폴록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들의 비판은 자신들의 열등감과 미술계 헤게모니 주도권을 향한 가해의식의 혼합물일 뿐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의 비판이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며 비주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서양미술을 ‘따라하기’ 시작했다고 꼬집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 하에서도 우리 선배들은 서양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이곳 저곳에 그 고심의 흔적들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오늘날의 비평가들과 미술사가들이 연구도 하지 않고 역사를 매도하는 현실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구미술의 양식과 형식주의 비평의 틀을 빌려와 많은 예술가들의 고민과 고뇌를 제거하고, 기계적으로 유사성을 찾는 일에만 집착해 왔습니다. 그들의 비판은 비평도 미술사도 아닌 것입니다. 미술교육으로 치자면 모사화 수준인 것이지요.

우리는 유사한 형태 속에 숨어있는 ‘차이’에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같은 것이 다르게 나타나는 결과, 그 속에 당대 예술가들의 고민과 감수성이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현대미술은 한국이라는 사회의, 이 땅에서 숨쉬며 살아왔던 사람들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감성의 프리즘을 투과하며 굴절된 문화입니다. 그리고 이 굴절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가 개체들과 한국 사회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현상인 것입니다. 한국의 주류 미술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 대다수는 소위 유학을 통해 문화적 열등감을 내면화한 사람들이고, 그 열등감의 대부분은 유학과정에서 경험했던 자신들의 콤플렉스일 것입니다. 유학의 열등생들이 자신들을 환대하는 고향에 돌아와 우등생으로 대접받으며,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들을 환대하는 고향사람들을 핍박하는 형국인 셈입니다.

그런가하면 소위 국내파들은 동시대미술의 문맥을 이해도 하지 못한채,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늘어 놓으며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다만 이들은 쟁점과 이슈를 통해 미술의 문제들을 공론화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 있어서만은 담합을 하고 있습니다. 공연한 풍파를 일으켜 자신들만 상처를 입을 필요가 없다는 계산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들이 비평가이고 미술사가일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사람들이 왜 필요한 것입니까?

이제 한국의 현대미술은 전혀 새로운 국면에서 다시 읽히고 쓰여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우리는 역사 속으로 그리고 우리 자신의 내면 속으로 파고 들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과 내일의 한국미술을 위한 진정한 대안을 찾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미술과 담론: 특히 앙포르멜로부터 시작되는 소위 70년대 형식주의 미술이 가졌던 패권주의적 화단풍토에 비평이 복무했던 부분에 대해 상당히 신랄한 비평의 매스를 가하셨는데, 이 점이 한국미술사와 비평사를 왜곡시킨 점에서 범한 오류가 중요하게 다루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상길: 유감스럽게도 제가 6년간의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를 통해 얻는 결론은 한국의 현대미술에 관한 진술들이 비평적이지도 못하고 역사적이지도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미술에 관한 비평도 아니고 미술사적 진술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이 진술해 온 대다수의 역사가 미술계의 패권을 장악하며 살아남은 사람들의 유치한 영웅주의적 ‘미술운동사’ 내지는 ‘사건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이고 한편으로는 눈물이 나는 얘기인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과정을 통해 한국현대미술 전반의 가치와 본말이 동시에 전도되어 버렸다는 점이고, 이런 현상이 바로 오늘의 한국현대미술이 표류를 거듭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점입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현재 한국미술계의 역학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표면 상 그럴 듯하게 꾸며진 이 천박한 세트들이 이러한 역사의 전모가 어떤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스스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점을 밝히기 위해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주류로 행세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관한, 입에 담기조차 싫은 더러운 얘기들을 책에 담았지만, 그 내용들을 다시 언급하고 싶지는 않군요. 미안한 말씀이지만, 그 내용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현대미술을 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재까지 진술된 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의 텍스트를 보아야 하고, 이 글들을 통해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소위 앵포르멜 미술운동과 70년대 단색조 미술운동의 중요성을 강제적으로 인식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내용들 대부분은 제가 대학에 다닐 때 경험했던 것처럼 ‘말이 안 되는’ 이상한 진술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예컨대 대다수의 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현대미술의 기점을 1950년대 후반 이후의 추상미술로부터 잡고 있으면서도, 왜 추상미술이 한국현대미술의 기점으로 설정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런 추상미술이 한국의 현대미술에 있어서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도 진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이상한 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은 추상미술을 다루면서도 1930년대 일본 유학파들의 추상을 논증도 없이 ‘근대’ 혹은 ‘현대 이전의 단계’로 강제 설정하고, 현대미술의 시작을 운운하면서 뜬금없이 1957년 설을 내 놓는가 하면 1958년 설을 주장하고 급기야 최근에는 1956년 설까지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설’에 지나지 않는 이런 주장들은 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의 미술과 역사에 관한 인식이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를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957년 설은 <신조형파> <모던아트협회> <현대미술가협회> 등의 다섯 단체가 창립된 해라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고, 1958년 설은 <현대미술가협회> 작가들에 의한 소위 앵포르멜 운동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한편 1956년 설은 호남대 교수이자 미술평론가협회의 회장인 윤진섭 씨가 지난 2000년에 출간한 한국 모더니즘 미술 연구라는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 윤 씨는 1956년에 있었던 박서보 등 4인의 젊은 작가들이 전시에 내건 반국전 선언을 아방가르드의 효시라고 주장하며, 기존의 1957년 설을 1년 더 앞당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미술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의 주장들은 비평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실로 개탄스럽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도대체 한국이라는 사회의 ‘현대’라는 역사의식이 고작 몇 개의 미술단체 창립이나, 앵포르멜이라는 미술양식을 수용하는 그룹의 출현 같은 사건을 통해 기점화된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어이가 없을 따름입니다. 특히 윤진섭 씨는 사실과 다른 내용들을 기정사실화 하면서까지 박서보 씨 개인을 이 기점 논의의 중심에 올려놓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기까지 합니다.

 

왜 한국의 현대미술에 관한 논의가 1950년대 앵포르멜 운동이나 1970년대 단색조 미술을 중심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인가의 배후에는 이 미술운동을 통해 미술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작가들과 주류 평론가 및 미술사가들 간의 담합이라는 정치성이 놓여 있습니다. 이들은 이 담합을 통해 상호 간의 필요, 즉 주류 작가들은 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에게 자신들의 미술운동에 관한 역사적 정통성을 보장받는 대신, 이들이 대학이나 미술관 등등 미술제도를 장악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식의 정치적 담합을 통해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켜 왔고, 이 연대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각각의 세력을 길러 왔습니다.

물론 이런 행태들은 미술과 명백히 무관한 것으로, 오직 자신들의 위치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조잡한 권모술수일 뿐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미술계의 불신과 반목이 바로 이런 행태로부터 비롯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 이들의 영향력 확대는 다음 세대 작가들과 비평가들에게 이의제기나 비판이 곧 대세를 거스르는 불충이라는 식으로 받아 들여졌고, 이런 현실을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추인하는 사람들만이 제도권에 진입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미술제도 속에 자리를 잡은 자들이 패권주의자들을 비호하며 미술계를 타락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역사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 그 미술운동들의 실체와 그에 관한 비평적․미술사적 진술 사이의 모순에 주목해야 합니다.

결국 저의 비판은 1950년대 앵포르멜 운동이나 1970년대 단색조 미술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운동을 통해 헤게모니를 장악한 사람들을 미술의 중심에 위치시켜 온 정치적 담합과 그것이 결과한 지극히 불건전한 미술풍토를 전면적으로 질타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그 미술들에 관한 본격적인 비판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한 뒤에 이루어질 것으로,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것입니다.

 

 

미술과 담론: 우리의 현대미술은 어찌 보면 서구미술의 수입과 적용에 급급하였기 때문에 우리식의 비평이나 미학의 관점을 마련하여 끊임없이 과거를 재해석하는 일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비평적 관점들도 과거 5-60년대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보다는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국제미술의 트랜드만을 쫒아가는 풍토는 매우 심각하다고 보여지는데 90년대 이후 상황을 비추어 볼 때 이점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지요?

 

오상길: 어떤 분들은 제가 누적된 현재의 문제들을 외면하고 곰팡내 나는 역사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우선 비평은 과거의 미술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현재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과거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미술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셨듯, 최근까지도 평론가들이나 미술사가들의 비평적․미술사적 관점들은 과거 5-60년대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퇴행했다고 보여지는 측면이 있지만, 제가 보기엔 미술현장의 상황도 이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유행에 따라 옷만 바꿔 입는 식으로 서구미술 문맥에 기대어 트렌드를 좇는 체질은 변한 것이 없고, 오히려 1930년대나 1950-60년대보다 고민이 더 없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때보다 지식과 비판 의식의 필요는 훨씬 더 늘어났는데도 말입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작가들과 이론가들이 이런 노력을 아예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비평담론 부재의 풍토가 미술계의 바이러스나 세균들 같은 아류들과 사이비들의 좋은 서식처가 되고 있고, 이제 이런 자들이 진정한 예술가들과 이론가들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제도 깊숙이 진출하고 있습니다. 미술계는 이런 자들의 영향력 확대와 그에 따른 전횡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술계 전체가 아예 썩어서 문드러지고 있는 것이지요.

책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현대미술은 그 나름의 스타일을 통해 드러나고 있고, 이것이 문화적 트렌드로 비쳐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스타일을 수용하여 조금 변형시킨다고 해서 곧 현대미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많은 작가들이 이런 방식으로 손쉽게 동시대미술 문맥에 동참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현대미술에 관한 한 트렌드주의는 서구 중심주의를 고착화시키는 문화적 소비행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컨대 미니멀리즘과 미니멀 아트, 그리고 미니멀의 영향을 받고 있는 문화적 트렌드의 관계를 통해 이 점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미니멀리즘이나 미니멀 아트는 미니멀 스타일을 생산했지만, 가구나 패션, 전자제품이나 실내장식 등에 확산된 미니멀 스타일은 미니멀 아트로부터 미니멀 스타일만을 차용하고 있을 뿐, 정작 미니멀리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소비행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의 눈에는 한국의 미니멀 아트 추종자들의 미학이 기껏해야 미니멀 스타일의 가구를 선호하는 대중의 기호 정도로 비쳐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이유에서 작품의 세련된 매무새나 감각적인 디스플레이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작가들을 촌스러운 사람들이라고 비판해 왔습니다. 미니멀 아트를 이해하고 있는 그 사람들의 지적수준이 유치하다는 말이고, 미니멀의 문화적 소비에 지나지 않는 감각적 수용에 관한 그들의 우월감이 우습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최근의 미술경향 속에서도 무수히 발견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문화의 심각한 문화정치학적 불균형이 바로 이런 현대미술에 관한 불투명한 인식 때문에 빚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외국에서 인정받으면 대단한 작가로 인식하는 풍토도 유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에서의 평가란 또 하나의 시각에 불과한 것으로, 그저 그네들의 눈에 그렇게 비쳤을 뿐인 것입니다. 그보다는 20세기 세계미술사에 왜 한국의 현대미술이 단 한마디로 언급되고 있지 않은 것인지에 관해 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술과 담론: 오 선생님은 80년대 중반 소위 설치미술과 탈모던을 주창하던 <메타 복스>의 멤버로 활동하셨고 이후에는 비디오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비평가로서 전시기획자로서의 활동이 더 왕성하신데, 화단이나 평단으로부터 이런 멀티플레이어로서의 위상에 대한 견제나 의도적 무시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개인적 견해는 어떻습니까?

 

오상길: 화단과 평단의 견제와 의도적 무시는 잘 알고 있지만, 제겐 관심사조차 되지 못하는 일입니다. 좀 심한 표현이 되겠지만, 동네 개들이 짖는다고 후미진 골목길로 돌아서 다닐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직업적인 윤리의식이나 역량도 없는 자들이 자리 지키려 급급하느라 수고가 참 많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를 견제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소외시키려 애쓰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고, 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매우 어리석다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저를 견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한 사람의 예술가를 견제하느라 노심초사해야 하는 자신들의 현실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미술이 머릿수로 해결해 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알아야지요. 지금 그 사람들은 저 한사람에게 자신들이 4-50여 년간 해왔던 비평과 미술사를 치명적으로 견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모양입니다. 이 형국은 오히려 제가 혼자서 그들 모두를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들은 이 견제로 인해 옴짝달싹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필경 그들이야말로 역사 속에서 모두 소외당할 사람들일텐데, 그것이 바로 자승자박의 자충수라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을 두고 어리석다고 말할 수밖에요.

 

흔히 저를 보고 너무 강성이라고들 하는 모양인데, 부당한 일들을 보고 침묵하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렇게들 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언제나 대화에 임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미술과 역사에 관한 윤리를 전제로 요구할 뿐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담합이나 결탁을 타협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미술계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는 분들이라면, 그게 누가 되었던 성실한 대화에 임할 것이고 대안도 함께 모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작고하신 인공갤러리 황현욱 선생이 저를 보고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고 하시던데, 어쨌든 제가 알고 있는 바들과 제가 할 수 있는 바들을 제공할 의사가 있습니다. 책에서도 밝혔듯 비판이 능사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대안을 찾는 일이고 부단히 실천해 가는 일입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비판하는 문제들에 관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들”이라고 하시던데, 그런 자세는 좀 곤란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게 잘 알고 있는 분들이 어째 그리 무기력한가 말입니다.

 

멀티플레이어라고 하셨는데, 그게 뭐가 되었던 제겐 이것이 다 미술하는 일입니다. 우리 미술은 제게 아직도 전문영역을 구분해서 운영할 수 있을 만큼 성숙되어 있지 못합니다. 겉으로야 번듯한 미술관 건물도 있고, 저널리즘도 있지요. 하지만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전문성과 맨탈리티는 일종의 원시적인 상태 혹은 야만의 상태에 있다고 판단됩니다. 누가 이것을 빗대어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라고 하던데, 저는 그 말이 돼지를 모욕하는 언사라고 맞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저의 멀티플레이가 아니꼬우면 맞서서 저를 쓰러뜨리면 될 일입니다. 뒤에서 궁시렁대지 말고 말입니다. 오죽하면 작가가 나서서 그런 일을 하고 다니겠습니까? 제 할 일이 뭔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주제에 빈정대기나 하고 다닌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들의 실체를 고백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미술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 말은 제 자신을 엉뚱한 짓들을 하고 다니는 자들과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스스로를 한국 미술계의 마이너리티라고 자처해 왔는데, 이것도 메이저를 자처하는 사이비들과 제 자신을 구별하기 위한 표현일 뿐입니다. 마이너면 어떻고, 메이저면 또 어떻겠습니까? 상식적인 말이지만, 평가는 저의 몫이 아닙니다. 물론 빈정거리는 자들의 몫도 아니지요. 그건 역사가 할 것입니다.

 

 

미술과 담론: 90년대 이후 민중진영의 정치적 맥락을 타고 화단의 전면에 부상하고 있습니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이들 세력들이 보이는 70년대와는 또 다른 패권적 세력화에 대해 우려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비평집에서는 이점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패권적 세력화에 대한 개인적 견해와 본 비평집에서 이를 언급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오상길: 이번 비평집에서만 다루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에서도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미술을 다루지 않는 것은 명백한 의도를 드러내는 일로, 1980년대 당시 그 사람들의 활동에 동참하지 않았던 이유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침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상당한 양의 자료가 수집되었고, 분석도 마친 상태입니다만, 1990년대 이후, 특히 최근 10년간에 걸친 그 주체들의 행적이 저의 그물망을 자꾸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더 지켜보자는 것이지요. 이미 그들 스스로가 세상이 다 알 수 있을 만큼 자신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파악한 내용의 핵심은 ‘그 자들은 제게 미술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난 문예진흥기금 편파지원 논란에서 보여주었듯, 이 시대를 야만으로 물들이고 있는 이상 다루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게는 일하는 방식이 있고 일해야 할 때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는데, 누가 뭐라던 저는 그 방법과 때를 지켜갈 것입니다. 그것이 제겐 순리인 것입니다.

 

 

미술과 담론: 오 선생께서 제시한 새로운 비평적 담론의 생성을 위해서는 화단과 평단의 체질개선이 따르지 않는 한 현재로선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해봅니다만, 새 담론 생성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오상길: 많은 분들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제게도 현재의 상황이 그렇게 보이구요. 다만, 제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의 현실이 그것이고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있는 일부 젊은 예술가들과 비평 인력들이 보여주는 희망이 그것입니다. 저는 기꺼이 그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소위 현재의 주류들은 별다른 경쟁과 견제 없이 손쉽게 기득권을 쥐었지만, 그것이 역사적으로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될 것입니다. 현재의 젊은이들은 총명하지만 용기가 부족합니다. 온실에서 자란 탓이겠지만, 저는 그들의 잠재력을 믿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이 이들의 진로로 막아서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알고 있더라도 비켜설 생각이 없습니다. 젊은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은 기초적인 생계를 꾸려갈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있고, 선배들이 거품으로 채워 단물만 빨아먹고 내팽개친 미술시장 때문에 그림을 팔아먹고 살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잔꾀 많은 자들이 문예진흥기금이나 문화재단 기금들을 잘게 쪼개어 이들에게 던져줌으로써 시간을 연장해 가고 있지만, 그런 얕은 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습니까? 결국 일이 터지게 될 겁니다.

다만, 저는 그것이 다시 과거의 불순한 운동을 재연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빵 한 조각을 훔쳐 먹고 평생 옥살이를 해야 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뻔히 보이는 함정을 피하기 위해, 당분간 고통스럽지만 허기를 참고 미술의 문제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미술이 자신들에게 의미가 있고,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건강해져야 이 정신적․물질적 빈곤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도 가난하게 살고 있고, 또 앞으로고 얼마간은 더 어려워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후배가 내뱉은 말이 늘 마음에 걸렸었는데, 그 후배는 저에게 “우리보고 선배님처럼 살라고 강요하진 마십시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선배님의 처지는 우리들에게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당시 저는 저를 부끄러워하는 후배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그 친구에게 늦은 대답을 할까 합니다.

 

우리는 예술가들이고 그 사실을 과대해석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우리들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저 예술가들일 뿐입니다. 우리에겐 돈과 권력 대신 재능과 열정이 있지 않습니까? 세상은 대부분의 탁월한 예술가들을 현실로부터 소외시켰지만, 뒤늦게나마 그 사실을 깨닫고 있고, 어리석게도 그 죄의식 때문에 그들을 우상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예술가들의 뜻이 아님을 우리가 알고 있고, 또 우리의 뒤에 이어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펼쳐 갈 예술가들이 알 것입니다. 예술가들의 현실은 고급 승용차를 사고, 큰 집에서 살며 우쭐대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예술가로서의 현실과 리얼리티가 있습니다. 저는 예술가들이 그것에 좀더 집중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나는 아직 한번도 굶지 않았고, 앞으로도 굶어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하다고는 하나, 그 대신 예술가로서의 1,000%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하고 있는, 세상과의 아주 괜찮은 타협이고 거래인 것입니다.

 

 

미술과 담론: 향후 메타비평과 관련한 활동 계획이 있으시다면?

 

오상길: 메타비평이라고는 하지만, 저는 공부하며 미술하는 사람이므로 그것은 제 연구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입니다. 책을 써서 세상을 향해 말하든 그렇지 않든 과거에도 그래왔듯이 저는 앞으로도 그렇게 공부하고 미술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면, 세상으로부터 받아 온 혜택에 값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오래 전 고등학교 졸업식 장에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친구가 읽었던 글의 일부가 생각납니다. 대단히 조숙했던 그 친구는 후배들의 설익은 송사에 대한 답변의 글을 통해 “이제 우리는 은혜의 껍질을 벗고 새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는 말을 했는데, 마음에 크게 남아 있습니다. 저는 삶이 힘겹고 고달플 때마다 그 친구가 했던 말을 기억해 냈습니다.

제 마음 속에도 많은 은혜의 껍질들이 존재합니다. 그것들은 때때로 저의 소신과 어긋나 괴로운 번민을 안겨 주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입니다. 저는 세상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질 만큼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부는 값을 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미술하는 사람으로서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위해 할 무엇인가를 찾아 행하고자 합니다. 최근 인터넷 카페형식을 빌려 대안미술학교 <해토解土>를 열었는데, 불과 두 주일 만에 궤도에 오를 만큼 진지하고 유쾌한 대화가 열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대안미술학교 <해토解土>는 미술에 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풍토를 만들기 위해 개설했고, 비영리적이고 자발적인 이 모임에 뜻이 통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또 최근 무가지 음악신문을 내고 있는 친구의 청탁을 받아들여, 미술에 관한 무보수 칼럼을 몇 달째 쓰고 있는데, 미술과 무관하게 살아온 분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아 기쁩니다. 예술가로서의 활동과 더불어 시민들과 함께 펼칠 새로운 담론의 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술과 담론 : 예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목표하시는 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특히 새로 개설한 대안학교 해토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기회가 되면 자중에 그 일들에 대해서도 한번 소개할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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