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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미술이 더 현대적이라는 착각

추상이 더 현대적인 미술이라는 생각은 서구미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이들의 착각이다. 대상의 재현(representation)을 예술적 성취의 중요한 목표로 삼은 건 오직 유럽뿐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비롯한 탁월한 르네상스의 화가들이 구축한 투시법과 원근법, 명암법 등이 바로 그것이고, 끌로드 모네나 조르주 쇠라의 이론과 예술적 성취도 궁극적으로는 대상 재현(representation)의 reality를 목적하고 있었다....

추상은 사진기술의 발달과 예술의 형이상학 심화의 결과이며, 유럽전통 회화맥락의 반동이다. 그러니까 추상은 전적으로 유럽미술의 역사적 극복 과정에서 대두된 결과였고, 유럽과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한국의 미술계가 추상이 더 현대적이란 도그마dogma에 빠져 있는 건 일종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1238년~1358년에 건설된 알람브라Alhambra 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기하추상 양식들이 이미 완전한 추상성을 갖추고 있었음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유럽미술이 전부 대상 재현(representation)의 reality를 목적했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들라크루아나 쿠르베를 비롯해 자연주의 화가들이나 상징주의 화가들, 반 고흐, 폴 고갱, 폴 세잔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다른 것들을 추구했다. 이런 미술의 역사를 형식주의Formalism 관점에서 체계화하여 강력한 비평적 질서로 구축해 낸 사람은 미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였다.
Neo-Marxist였던 그는 회화의 본질을 2차원적 평면성으로 정의함으로써 유럽회화의 특성 중 대상 재현(representation)의 reality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모든 문학적인 서사(narrative)와 3차원적인 환영(illusion)을 배제한 비대상적(non-objective)이고 비재현적(non-representational)이며, 비구상적(non-figurative)인 추상회화야말로 현대적인 회화modernist painting라고 주장했다. Jackson Pollock의 all over painting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언뜻 명쾌해 보이는 이 이론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치명적 모순이 숨어있다. 그 하나는 유물론자의 관점으로 단순화 되어버린 역사적 해석문제다. 몇 가지 설득력 있는 물리적 특징들로 역사와 예술가들의 성취 속에 숨겨진 지적, 감각적 문제들을 단순화하여 일반화해 버리는 무리수들 말이다. 세상의 어떤 멍청한 화가가 대상과 똑같이 그리는 걸 목표로 평생 그림을 그린단 말인가!

두 번째는 minimal artist인 도널드 저드Donald Judd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등에 의해 제기된 그린버그 이론의 모순이다. 이들은 회화에서 환영(illusion)을 소거하면 평면성이라는 조건과 회화적 아우라(aura) 대신 캔버스canvas라는 물체를 만나게 되며, 거기엔 어떤 회화적 아우라도 없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규명했다. 프랭크 스텔라의 저 유명한 선언적 발언 “네가 보고 있는 게 바로 그것!What you see is what you see!"이 설득력을 얻는 지점이다.

필자는 앞에서 이런 배경과 아무 상관도 없는 한국의 직업 미술평론가들과 미술사 전공자들이 단지 서구미술의 양식을 수용해 추종했던 30년대 김환기나 유영국, 60년대 유사 앵포르멜 회화들, 유사 기하추상 그림들을 한국의 현대미술 기수로 치켜세우고, 그런 사람들을 20세기 한국미술사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것이 코미디라고 말한 것이다. 그들을 평가할 지점은 전혀 다른 곳에 있는데 말이다.

문제는 이 코미디가 그저 웃음거리 해프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식의 오류들이 지금껏 비판적으로 극복되지 않고 있고, 바로 이런 점이 한국미술의 대외적 경쟁력 수준을 말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그들이 물을 것이다. 한국의 현대미술이란 도대체 어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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