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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예술가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현대미술은 천재들의 불가사의한 재능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던 예술을 의심하며, 예술자체의 본질을 묻는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미술이 특권층들만을 위한 예술’이란 비판은 잘못된 것이다. 왕족이나 귀족 같은 특권층들을 위한 예술은 오히려 대중이 알고 있...는 근대미술이었고, 천재성을 향한 통념적 신비주의나 허황된 아우라 같은 대중들의 순진한 믿음이야말로 난해한 것이었다. Mona Lisa의 신비한 Archaic smile이나 Van Gogh의 불타는 yellow 그리고 Rothko의 chapel painting이 지닌 숭고함의 '강박' 같은 것들 말이다.

현대미술의 난해한 이론들 대부분은 근대미술의 통념이 지닌 허구를 비판적으로 규명하고,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제시된 것들이다. ‘담론화’란 '창작'과 '감상' 활동을 대등한 쌍방향의 구조로 바꾸어 놓는 결정적 장치로, 시각예술의 현대화 과정은 귀족들이나 자본가들이 독점하고 있던 ‘예술의 가치’를 대중이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민주화'시켜오는 과정인 셈이다.

어려움은 감상자들이 아니라 오늘의 예술가들에게 주어져 있다.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보다, 통념적 ‘예술’ 너머의 새로운 ‘예술’ 개념과 그것의 문화적 가치 그리고 자신들의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존재방식을 제시하고 비판적 검증을 통해 등장해 왔다. 조영남이 예술가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조영남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오늘의 현대미술은 서구의 예술가들이 지난 100여 년 간 제기하고 응답해 온 예술에 관한 문제의식, 즉 ‘예술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의 담론 위에서 실험해 온 원리와 방법을 지칭하는 것이지, 추상표현주의니 미니멀이니 하는 따위의 스타일을 일컫는 게 아니다. 과거와 차별화할 만한 현대의 정신과 감각의 첨예한 공감대를 제시했기 때문에 세계가 공유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중국적인’ 또는 ‘한국적인’ 편린들을 내세워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려는 생각은 황당한 촌극이 아닐 수 없다. 어딘들 그 나라다운 문화가 없겠나? 문제는 세계가 왜 그 문화를 수용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것인지에 있지 않겠나?

중요한 것은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무엇’으로 세계를 납득시킬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왜 21세기 동시대미술이 함께 지향해야 할만한 가치라는 말인지, 만일 그런 게 있다면 어떻게 제시해 가야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무엇이 세계가 향유해 온 예술적 가치인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제 눈 높이에 맞는 그림들을 사고팔면 진짜 예술작품이 되고 미술시장이 만들어 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게 오히려 미술시장을 더 혼탁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

 

지금 한국미술계는 엄청나게 팽창된 자본과 유동자금들이 왜 미술시장으로 흘러 들어오지 못하는지, 왜 우리 미술시장의 규모가 이토록 비정상적으로 작은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해 생각해야 한다.

 

우리 미술계는 욕망에 앞서 자성부터 해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하기 위해 동시대미술과 한국미술의 문맥을 각각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무엇이 21세기 동시대미술을 이끌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 남의 것을 가져다 베껴 먹는 방식으로 만들어 온 한국의 현대미술을 세계 시장에 내어 놓는 일은 남대문 짝퉁 프라다 백을 들고 뉴욕의 프라다 매장에 가서 사달라고 조르는 일과 다르지 않다.(2005 / 20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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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o da Vinci, Mona Lisa, 77 × 53cm, oil on wood, 1503–06, Musée du Louvr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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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el Duchamp, L.H.O.O.Q, 1919, penci on the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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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hko Chapel Houston, Tex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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