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생리와 미술문화 시장
기괴한 모습과 천문학적 작품 가격으로 종종 토픽이 되는 현대미술.. 그 이면에는 높은 수준의 지성과 감각, 자본, 시장 윤리 같은 것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현대미술은 이 시대에 만들어진 모든 예술작품이 아니라, 근대미술과 차별화될만한 가치를 성취한 예술을 말한다.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과거의 미술’이 무엇이고, 왜 차별화되어야 하는지, 현대 예술가들의 문제인식이 뭐고 그들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대미술은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이 시대의 미술문화 담론이다.
마르셀 뒤샹을 비롯한 일군의 Avant-Garde 예술가들은 현대미술 문화를 주도하는 ‘보이지 않는 힘’들을 향해 과감한 문화적 테러를 감행했고, 그들이 이것마저 수용해 냄으로써 현대미술의 외연 확장이 이루어졌다.
예술의 본질과 당위성을 향한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의 집요한 철학적 회의들로 인해 현대미술은 개념화되었고, 테크니컬한 완성보다 유동적이고 과정적인 특성을 띠게 되었다. 예술작품이 artisan(匠人)의 손에서 artist의 손으로 옮겨가게 된 전환점이다. 추상미술이나 오브제 앗상블라쥬, 인스톨레이션, media art 등은 이런 현대미술의 어법idioms으로 고안되었던 예술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미술은 대중의 취향에 봉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통념을 교란하고 파괴하려는 고도의 지적, 감각적 활동들을 통해 특유의 순수성을 확보해 왔다. 현대미술이 대중의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런 배경에 근거하고 있고, 바로 그 점이 현대미술을 이 시대의 가장 독립적인 문화로 끌어 올렸다.
대중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비싸고 유명한 예술작품들-예컨대 Mark Rothko 같은 작가들의 주요 작품은 대부분 엄격한 가치 검증을 거침으로써, 그 작품을 시장에 유통시킨 제도와 자본 그리고 정책의 힘들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한마디로 그 작품 뒤에 당대의 지성과 감각 그리고 자본과 제도가 버티고 있다는 말이고, 그것이 높은 작품 가격을 뒷받침하는 credit인 셈이다. 이런 측면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미술제도와 정책, 자본, 지적, 감각적 역량에 관한 학습기회가 될 수 있다.
Sarah Lucas, Get off your Horse and Drink your Milk (in 4 parts), 1994 c-prints. 84 x 84cm, etc.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나 제도의 credit이 전혀 없는 한국미술계 같은 곳에서 발생한다. 조영남 사건은 우리 미술계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내부적 자정에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얼마나 한심하면 검찰이 나서서 ‘사기죄’로 다루었겠나? 그런 일을 겪고도 문제의 핵심-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판단이나 유통시스템의 문제는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신정아 사건은 어땠나? ‘학력을 위조한 희대의 사기극’은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학력위조라는 간단한 사기만으로도 미술관 큐레이터가 되고 미술대학 교수와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이 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이 사건의 중요한 핵심은 ‘학력중심사회’가 아니라, 미술관 큐레이터나 미술대학 교수,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이 되는 일에도, 그런 직책을 수행하는데도 전문역량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는 점이고, 미술계가 검증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 미술판에 사기꾼이 신정아 한 사람 뿐이겠나?
저널들은 어떤가? 신정아를 신데렐라로 치켜세웠던 저널들은 진실이 드러나자 일제히 낯빛을 바꾸었다. 더 가관인 것은 문제의 핵심을 '학력중심 사회'로 오도하며 본말을 전도시켜 버렸다.
단순한 사회적 윤리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런 문제가 미술시장의 규모를 형편없이 쪼그라지게 만들고 있고, 그에 따라 재능 있는 미술학도들 대다수가 알바로 생계를 연명하며 삼천포로 새는 인생을 살게 됨으로써,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손실을 겪고 있다는 게 문제다.
문화체육관광부 미술분야 전체 예산이 만화분야만도 못한 시대를 살면서, 그런 사실조차 관심을 두지 않는 미술계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수고는 남 시키고 열매만 따서 먹겠다는 얌체들이 들끓는 한, 미술시장의 활성화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어떻게 바로 잡아가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아니겠나.(201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