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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정치학

 

 

민주주의는 시행착오를 통해 고안된 시스템인 만큼 모순과 역기능이 있고, 제도의 이식移植에도 수많은 과도기적 부작용이 수반된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라는 기본원칙 아래, 개체의 특수한 가치와 다수의 보편적 가치를 양립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감각과 윤리적 균형감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I.
 

오늘 날의 정치․사회 권력은 물리적인 폭력과 억압 같은 공권력 대신, 교묘한 언술과 눈속임, 소외, 방해, 간섭 등의 고차원적이고 음성적인 전략을 구사한다.1) 드루킹 같은 여론조작 전문기술자들이나 어용단체들을 동원한 시민사회의 교란과 언론 플레이, 포퓰리즘 역시 이런 공작 정치의 전형들로, 이념과 이해관계에 따른 집단적 대립을 유도해 냄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을 향한 도전과 저항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특히 3S 산업-Sex, Sports, Screen 산업2)-의 무차별적 확산이나 지역주의, 개혁과 수구 또는 보수 대 진보의 대립 등은 시민들을 무력한 현실도피자들로 만들어 가거나 사회분열에 이르는 가해와 피해의 주체로 만든다는 점에서 치명적 독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정작 3S 산업의 경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엄격한 삼권분립과 강력한 언론, 정부의 예산집행까지 감시하는 여러 시민단체 등 성숙한 시민의식과 사회적 균형감이 민주주의의 합리성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고 있다. 물론 그런 나라들에도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이 있다. 문제는 그 구체적 양상이 매우 다르고, 결과도 국민들이 편갈라 나서서 싸우거나 파국으로 치닫는 일은 거의 없다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 정치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포장 속에 전혀 다른 본질-권력을 향한 야수적 욕망과 비열한 권무술수가 난무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II.

 

서구문화와 제도가 이식된 지 100여년, 민주주의 체제도 60여년이 흐르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몸에 맞지 않는 큰 옷을 입은 사람들처럼 체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선거 때마다 피켓 들고 굽실거리며 한 표를 호소하는 무리들이 우리를 대신해 나라를 운영할 능력과 소양을 가지고 있는지 늘 의심스럽지만, 선거용 전단 속의 화려한 수사들과 자화자찬 이력들로 그 의문들을 해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민들에게 선거는 불충분한 정보와 해소되지 않는 의문 속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곤혹스러운 일이고, 권력을 잡으려는 자들에게는 치부를 숨기고 단시간 내에 뜻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주체의식과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시민활동이 절실하다.

 

III.
 

최근 몇 년간 우리는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각종 병적 징후들과 기괴한 상황들을 지켜봐 왔다. 세월호나 최순실 사건 같은 건 말할 나위도 없고, 민주주의의 실현과 거리가 먼 좌파 대 우파 또는 진보 대 보수의 대립구도나 기성 언론들의 기회주의적 행태들, 정치인과 정당들의 이합집산 등 역시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는 편을 갈라서서 대립하고 싸우며 상대방을 모욕하며 밀어내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맞서야 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존엄과 삶을 위협하는 온갖 부당함이나 부조리한 악습과 폐단들이지 정치적 이념이나 노선이 다른 사람들과의 투쟁이 아니다. 정치적 이념과 노선은 상황에 따라 선택하고 뜻을 모으기 위해 설득하고 수용해가야 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5천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의 생존권과 미래를 책임지고 고민하며 지혜를 모아가야 할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것인가.
 
권력을 목적하는 정치세력들이 노골적으로 조장해 온 편 가르기 전략에 휘말려 시민들이 편을 갈라 실리없는 싸움에 골몰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주권을 가진 시민들이 대신 일할 공복들을 뽑아놓고, 뒤에 줄서서 대신 싸우는 형국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대의代議 민주주의란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반영할 정치인을 내세워 대신 정치를 하는 일이지, 시민들이 정치적 리더를 추종하는 일이 아니다. 시민들은 정치인들이 맡긴 일을 얼마나 잘해 냈고 얼마나 효율적이었는지를 검증하고 평가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시민(주인)들이 꼼꼼하게 결재하지 않는데 각종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힌 정치판이 똑바로 돌아갈리 없지 않은가.

언론을 믿을 수 없다면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시민들이 정치세력들로부터 독립적인 시민단체NGO를 구성하고, 십시일반十匙一飯  자발적 후원구조를 통해 분야별 전문가들을 직접 고용해서 정부의 각 부처별 정책과 예산, 집행 및 성과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평가에 나서면 어떨까. 이 평가들을 근거로 정권을 평가하고 정치인들을 선택해 간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옥석을 가려낼 수 있을 것 아닌가.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원한다면 훌륭한 정치인이 없음을 개탄하거나 절망하기보다 정치인들이 훌륭해 질 수밖에 없도록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가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치인들이 대신 잘해 주기를 기다리는 건 고양이에 생선을 맡기고 잘 관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일과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2007 / 2018 수정보완)




각주

 

1) 오래 전에 보았던 책이라 잘 생각이 나지 않으나, 기억이 맞는다면 이 지적은 Jean Baudrillard의 것이다.

2) Sex 산업을 통해 개인들에게 원천적인 죄의식을 심고, Sports 산업을 통해서는 사회적 불만을 카타르시스시키며,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현실적 좌절을 환상을 통해 해소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3S 산업은 향수 냄새로 위장된 화학가스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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