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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미술사, 일괄적 틀을 벗어나야”

(아트 인 칼처 인터뷰, 2003. 4)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라는 시리즈 전시와 자료집 발간을 3년에 걸쳐 해 오고 있다. 이 작업을 시작한 계기가 있다면?
 
나의 관심은 ‘미술이란 무엇이고, 예술이 우리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이다. 많은 시간을 그에 관한 사색과 공부에 할애해 왔는데, 내가 공부한 현대미술과 한국현대미술의 맥락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1980년대 후반부터 자료를 모으고 현재의 ‘다시 읽기’와 비슷한 작업에 착수했었지만, 여건 상 결실을 맺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1999년 한원미술관 관장직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방대한 양의 1차 자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국현대미술사 연구의 시금석과 같은 자료라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 수집했고, 걸린 시간을 얼마나 되나? 자료수집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자료의 양이 꽤 많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큐레이터들과 함께 도서관 등지에서 살다시피 하며 70년대 미술 관련 자료 350여 종과 일본 모노하 자료 200여 종을 수집했다. 또한 각 작가들이 작업실을 샅샅이 뒤져가며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자료 수집과 분류, 분석과 데이터화에 거의 1년이 걸렸다. 특히 일본 모노하 관련 자료들은 번역하는데 많은 시간과 경비가 소요되었지만, 정신이 번쩍 들만큼 공부할 내용이 많았다.
 
 
-14명 단색조 화가들과의 생생한 대담이 눈길을 끈다. 대담에서 특히 중점을 둔 사항이 있다면?

흔히 말하는 한국현대미술사는 작가들이 중심이 된 소위 ‘운동’과 ‘사건’에 의존해 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운동사’적 담론들은 작가 개인의 시각을 배제한 채, 개별 작가들의 경험과 미학을 일괄적인 틀로 파악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이번에 수집한 자료들 역시 소위 그 ‘주류’들에 의해 생산된 것이 많다. 그 대안으로 대담을 통해 개인들의 시각으로 70년대를 바라보고자 했다. 그 결과는 내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놀랄만한 성과가 있었다.
 
 
-‘모노크롬’의 신화를 벗기고, 거기에 가려진 우리 현대미술사의 여백을 복원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현재 화단의 주류에 대한 도전으로 읽힌다. 이에 대한 반발은 없었는가?

사실 나의 다시 읽기 작업에는 그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문제들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들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다. ‘전위’와 ‘권위’를 한 얼굴에 지닌 분들은 나의 시도를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그분들의 역사의식 부재 때문이다. 이 작업은 우리 시대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를 도전으로 생각한다면, 동시에 이 도전이 얼마나 강력하고 구체적이며 지속적인지, 그래서 이것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작업을 통해 많은 선배 작가들과 예술가로서의 동지애와 강한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참 좋았다. 내기 기획했던 <모노톤에 가려진 70년대 평면의 미학들 전>에 박서보, 하종현 두 분이 출품을 거부했는데, 이것이 반발인지는 잘 모르겠다.
 
 
-3년간 작업을 뒤돌아 볼 때 느낀 점이 있다면?

돌아보면 부족함이 많다. 이 작업을 통해서 이론가들이 집중적으로 연구할 미시적 과제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여백을 메워가는 일, 잃어버린 한국 현대미술사를 회복하는 길이다. 뜻 있는 젊은 이론가들이 많이 나와서 각 방면에 전문 연구자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들을 계속 도울 것이다.
 
 
-이후 전시와 연구,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올해 네 번째 ‘다시 읽기’에 착수했다. 1930년대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수용되었던 추상미술로부터 60년대 비정형회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초창기 추상미술에 대한 연구를 목표로 하고 있고, 상당한 성과를 기대한다. 그리고 내년부터 이 후속작업으로 작가별 개인 연구에 착수할 생각이다. 지금까지의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가 역사라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흐름을 파악하려 했다면, 이 후속연구는 작가라는 개인의 미시적 관점을 통해 ‘한국의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에 접근을 시도하는 작업이다. 좋은 이론가들과 이 작업을 함께 추진하고 싶다.(김동욱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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