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I Seminar, 2000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를 마무리하며
올 장마도 마지막 며칠간 억수처럼 쏟아 붓던 비를 끝으로 물러나는 것 같다. 초가을이면 찾아오곤 하는 태풍이 남았으니 아직 안심할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피해가 덜한 것 같아 다행스럽다. 모두 살기가 어려운 때, 장마로 제일 곤경에 처할 사람들이 농민들과 저소득층이고 보면, 그동안 하늘이 원망스러웠던 해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는 전시문제로 인해 그 마무리가 예정보다 많이 늦어졌다. 새로 문을 여는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기고, 예상과 달리 공사일정에 차질이 거듭되었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힘겨운 과정을 거치고서야 MIA의 개관기념전으로 이 전시를 열게 되었고, 비로소 지난 1년 7개월여에 걸쳐 땀 흘려 만들어온 이 책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이번 기획도 역시 많은 선배님들의 뜻 깊은 관심과 따뜻한 배려에 힘입고, 많은 분들의 노고 덕분에 무사히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러운 일도 있었다. 올해 초 논란이 되었던 문예진흥기금 편파심의로 인해 후속연구의 진행이 불가능하게 되어,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는 지난 6년간에 걸친 연구를 종료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지금까지의 연구 작업보다 더 중요한 과제를 남긴 채 연구를 중단해야 하는 아쉬움을 남기며, 이 자료집의 출간을 끝으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고 하니, 별로 대단하지도 못한 일을 해놓고, 스스로 거창하게 우쭐대고 있는 모습으로 비칠까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그 의미는 땀과 열정만으로 세상이 원치 않는 성城을 쌓을 수는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훌륭한 예술적 가치는 탁월한 예술가의 손을 빌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지만, 그것의 공유는 사회의 몫인 것이다. 다만, 그동안 무척이나 고되었던 작업을 불평 한마디 없이 소화해 준 스텝들과 후속연구에 기대를 거셨던 분들에게 송구할 뿐이다.
한국의 현대미술을 다시 읽고 다시 정리해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었다. 미술을 진지한 연구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이후, 동시대 미술과 한국현대미술 사이의 차이를 발견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차이들 속에 숨겨진 의미와 가치를 분별해내는 데까지는 상당한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한국의 현대미술도 당연히 동시대성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할 터였지만, 닮은 외형과 다른 내용들 사이의 수많은 의문들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의문들이 이후 공부의 방향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고, 예술적 실천과 공부에 어떤 지식보다 훌륭한 동기를 제공해 주었다.
사실 ‘차이’는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지만, 그 ‘차이’의 원인과 결과를 밝히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지식은 연구에 합리적인 체계를 제공해줄 수 있지만, 연구주체에게 궁극적인 의문과 애정이 없다면 ‘차이’는 의미와 가치를 묻는 생산적 연구와는 거리가 먼, 단순한 비교진술의 차원에 머물게 된다. 누누이 강조해온 말이지만, ‘읽기/보기’는 ‘어디까지 확대하여 참조할 것인가’의 해석학의 문제이며, 창의성을 요구하는 작업인 것이다. 이 점 때문에 나는 항상 ‘읽기’와 ‘쓰기’의 강박에 시달려왔으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차이’의 문제에 조금씩 더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금껏 읽어 왔던 적지 않은 텍스트들 속에서 필자들의 견해에 대한 많은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 ‘같은 미술’ 맥락에 관한 ‘다른 해석’을 진술할 욕구를 갖게 했다는 말이다.
‘다시 읽기’는 ‘다시 쓰기’와는 비슷한 일인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일이다. 나는 지난 6년간의 작업을 통해 내내 이 차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것은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따위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앞으로도 계속될, 계속되어야할 보다 심화된 연구를 위해 당연히 열어두어야 할 방법적 문제이다. ‘다시 읽기’는 ‘다시 쓰기’에 앞선 준비과정이자, 많은 문제들을 검토하고 숙고해가기 위한 여백인 셈이다.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의 현대미술 맥락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연구시도의 동기제공에 있다. 우리 미술에 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미술의 틀로 자신과 자신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 생각하는 일이다. 지금도 여러 미술대학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예술가 혹은 이론가로서의 삶을 꿈꾸며 공부하고 있고, 해마다 예비 작가, 예비 이론가들이 미술계의 문을 두드린다. 물론 나는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공부했는지 그리고 어떤 의문들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있다. 나는 재능과 열정을 지닌 젊은이들이 우리 미술과 자신들의 의문에 집중해주기를 바라며, 그를 통해 미래를 열어가기를 바란다. 그것이 그들이 헤쳐나아가야 할 동시대미술 맥락 속의 ‘현실’이며 우리 모두의 미래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미술의 연구를 독려하기 위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은 비중을 할애해야할 일이 흩어져 망실위기에 놓인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정리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전시 등의 활동자료들은 물론 신문과 잡지 등에 실린 아티클들과 작품 이미지들, 한국미술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해외의 미술동향 등에 이르기까지 힘자라는 데까지 자료를 모아 분석하고, 필요한 외국자료들을 번역하여 정리해왔다.
하지만 그렇게 정리한 자료들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우선 1960년대까지의 현실이 정치․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예술에 관심을 갖기에 너무 어려운 것이었고, 그런 만큼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을 담아내기에 너무도 척박한 현실이었으므로, 당시 활동을 재현해내기에 턱없이 빈약한 자료들만을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소위 화단의 주류로 살아남은 분들에만 집중되어 있어 기초 자료로서의 형평이 크게 어긋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이 작가 및 비평가 대담이었다. 이것을 위해 당시 미술에 관한 상당한 양의 기초 자료들을 분석하고, 대담 예정 작가 및 비평가들에 관한 집중적인 연구를 거쳐 질의서를 작성하는 일이 필요했다. 문제는 대담 자체가 아니라 대담을 통해 그분들의 경험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드러내어놓을 수 있는가에 있었으므로, 각별한 주의와 기술적 방법들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계신 분들을 찾아 전국을 방방곡곡 찾아 헤매야 하는 물리적인 어려움도 따랐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소득에 비해 결코 큰 것이 아니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현대미술 맥락은 서글프게 느껴질 만큼 초라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때문에 시작할 당시의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는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미술의 맥락에서 바라보려는 현재적 관점을 위한 기초 연구작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대담들은 나의 선배들이 과거라는 퇴적된 역사 속의 존재가 아니라 지금 현재를 함께 숨쉬고 있는 예술가들이며, 그분들의 역사 속에 현재와 미래의 문을 열어갈 대단히 중요한 열쇠가 숨겨져 있음을 깨닫게 했다. 게다가 우리 미술을 다시 읽으려는 현재의 내가 그분들과 몹시 ‘닮은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뭐랄까, 선후배 동업자간의 끈끈한 유대감 같은 것을 갖게 되는 부수입도(?) 올렸으니 말이다. 특히 지난해 3월에 있었던 김병기 선생님과의 대담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연륜 만큼 깊고 넓은 선생님의 열정과 혜안은 물리적 세월을 단숨에 뛰어넘어 ‘지금 여기’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실로 큰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이어진 이 대담은 단 한번의 만남으로 만리장성을 쌓으며 장장 7시간 30분 분량의 녹화테이프로 남겨졌다.
나는 쉰 두 분의 작가 및 비평가들과 가진 대담에 담긴 내용들이 지금껏 모은 12,000여 종의 자료들 속에 담긴 내용보다, 우리 미술에 관한 지금까지의 그 어떤 비평적․미술사적 진술들보다 더 충실한 역사를 재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그 어떤 비평적 논의나 진술에 앞서 원전으로서 연구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한국현대미술에 관한 예술가들과 이론가들의 연구를 독려하고 활성화하려는 목적에는 이 길이 우리가 나아갈 유일한 길일 수밖에 없다는 문화정치학적인 판단과 기존의 비평적․미술사적 진술들에 관한 의문들이 새로운 연구 작업의 결정적 동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전제되어 있다. 물론 나는 예술에 어떤 정치적 경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술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기반, 그러니까 개인과 그 개인들이 속한 집단의 생각과 감성의 차이에 의해 나타나는 미술의 특성들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한국의 현대미술은 한국이라는 문화적 프리즘을 통과한 동시대 미술문화이며, 이것이 동시대 미술의 한 축으로서 다른 문화권의 미술문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갈 기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록 예술가들의 활동과 이것을 비평적으로 진술하고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일이 전혀 다른 성격의 작업이라고 하더라도, 미술을 매개로 각각의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생산해간다는 점에서 서로 존중되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 상식적인 원론을 강조하기에 앞서 각 영역의 존재방식과 문화적 생산성에 관한 상호신뢰를 확인할 검증의 기회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들의 작업은 창의적이고, 비평은 객관적이며 미술사는 학문적 신뢰성을 지니고 있다는 식의 막연한 경계의식 속에서, 영역간의 문화적 접점을 만들지 못한 채 상호배타성과 불신을 키우며 미술문화 담론을 빈곤상황에 빠뜨려온 것은 아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현대미술에 관한 기존의 진술들은 사건사 또는 작가들의 미술운동사를 중심으로 한, 미술이라는 핵심이 빠져있는 이상한 미술의 역사이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있어 미술이란 무엇이고 우리 미술에 있어서의 ‘현대성’이란 어떤 의미인 것인가의 가장 중요한 의문이 전제되지 않은, 그래서 필자들의 해석도 찾을 수 없고 예술가들의 미학적 성취도 밝혀져 있지 않은 텍스트들이 한국현대미술의 역사를 버젓이 대체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진술의 한계 문제로 그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미술뿐 아니라 현재의 우리 미술과 제도 전반에 걸친 수많은 현상적 문제들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동되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진술들에 관한 비판적 검증 없이 손쉽게 인용하고 그럴듯한 틀을 덧씌워 추인하는 방식으로 담합하다시피 ‘정설화’ 해온 비평적․미술사적 진술들로 인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더 많다는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미술의 현대성 문제는 그저 ‘추상미술’의 도입과 확산, 혹은 ‘기성에 저항하는 신진작가들의 제스처’ 정도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현대미술은 일제의 강점기와 해방공간 그리고 분단과 전쟁과 독재와 시위로 점철된 역사적 상흔 속에서 이루어진 근․현대화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들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전통의 단절과 현대적 상황으로의 비약이라는 역사적 질곡과 진통의 한 가운데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시 읽기’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미술에 있어서의 현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다분히 역사적인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자문과 그에 새로이 답해가려는 비판적 대안의 모색인 것이다.
이 책의 발간으로 막을 내리게 된 그동안의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는 어디선가 비유했듯 건축을 위한 기초적인 토목공사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간의 기초 연구 작업을 토대로 만든 본 공사의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우리의 현대미술을 ‘다시 읽고 정리해내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작업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장마가 물러가자 높은 습도와 함께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그동안 함께 땀 흘리며 일해온 고마운 분들을 한 분, 한 분 떠올린다. 특히 올해는 1930년 1월 1일부터 1965년 12월 31일까지의 각 일간지 미술기사들을 망라하여 자료화하는 작업이 진행되었고, 이것을 위한 많은 분들이 노고가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이번 자료조사를 위해 애써준 김효연, 박혜연, 사혜정, 양시영, 양혁진, 최선 씨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한 자료를 데이터화하고 편집 및 조판작업을 하느라 말할 수 없이 고생한 큐레이터 이태한 씨와 전상민 씨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의 뜻을 함께 전한다. 특히 전상민 씨는 장장 6년간에 걸친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던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작업 내내 자료의 정리와 학술행사 그리고 전시와 자료집 출간의 모든 과정을 훌륭하게 소화해온 1등 공신이었다. 만일 이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는 애초에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크게 아쉬운 점은 활자 크기와 간격을 줄여도 두 권의 책으로는 엮을 수 없을 만큼 수록해야 할 자료들이 많았고, 준비된 예산은 이미 방대한 자료의 수집과 학술행사, 그리고 전시에 대부분 소요된 데다가, 2004년도 문예진흥기금 신청사업도 편파적 심의로 인해 이미 탈락한 터였으므로, 이미 많은 비용을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형편에 있는 나로선 잘 팔리지도 않는 자료집을 세 권으로 나누어 분권하는 일만으로도 감당하기 힘겨운 일이었다. 실로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결국 상당한 양의 자료들을 걸러낼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출간의 시점에서도 내내 마음에 걸리고 스텝들에게 죄송스러운 일로 남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흘린 땀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온 8권의 책들은 우리 미술을 연구하려는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대신할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미술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가 끝나고 작품이 철수된 썰렁한 전시장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쓰레기들처럼 긴 장정을 끝낸 마음은 끝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2004년 8월의 끄트머리에 서서
오상길(작가, MIA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