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Works 2023-1985
지지체로서의 바닥, 그 안과 밖의 field 확장
캔버스(종이)는 회화를 지탱하는 맨 밑바닥으로서의 지지체다. 평면이란 캔버스(종이)의 편평한 바닥 구조를 말하지만, 두께가 없는 실체로서의 평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회화로부터 3차원적 환영(illusion)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유럽의 오랜 회화적 전통과 결별하려는 서구 모더니즘 미술의 비평적 모티브일 뿐이며, 오직 개념적으로만 존재한다.
최근 일본 미술평론가들이 지적했던 곽인식의 ‘종이 속으로 스며드는 먹(물감)을 통해 드러나는 평면’은 서구 모더니즘 회화를 떠받쳐 온 평면의 뒷면, 즉 미세하지만 평면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새로운 공간-단일하고 납작한 바닥이 아니라 수많은 공기구멍으로 통해 있는 두께가 있는 평면을 환기시킨다. ...
하지만 이 공간은 아주 오래 된 것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수많은 전통 회화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이미지를 떠받치는 바닥으로서의 지지체가 아니라 안과 밖을 넘나드는 개념적인 공간으로서의 회화적 field다.
최근 거듭 시도하는 일련의 회화적 드로잉들은 바로 이 공간의 확장을 위한 일종의 실험이다. 화선지나 종이에 먹을 스며들게 하거나 이미 그려진 화면의 일부분을 gesso로 덮고 마르기 전에 먹과 아크릴 그리고 gesso로 다시 드로잉 함으로써, 단일하고 납작한 바닥으로서의 평면을 중층적인 회화적 공간field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서구 모더니즘 회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회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질료와 우연을 향해 열려있는 회화
수많은 화가들이 물감이나 먹 또는 목탄 같은 재료들을 다뤄왔지만, 대개는 조형적 표현을 위한 도구적 차원이었다. 하지만 형태나 색채는 물감이나 붓, 목탄의 물질적 특성을 통해 드러난다는 점에서 질료적 특성을 단순효과 이상의 중요한 회화적 요소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나는 선을 그을 때마다 종이 표면의 요철에 부딪히는 생경한 촉각들 때문에 번번이 생각 속의 선을 재현해 낼 수가 없다. 내겐 상상 속의 선보다 이 낯선 경험과 그 결과들의 우연한 결합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훨씬 더 경이롭게 보인다. 캔버스 표면을 덮고 있는 물감의 두께나 문질러진 목탄 가루의 흔적들, 화선지의 뒷면까지 번지는 먹과 물의 표정이 조형적 질서 이상의 존재론적 비중을 갖는다는 생각에 이르면서 질료를 느끼고 다루는 감각도 더 예민해졌다.
나에게 있어 회화는 그려져서야 그 존재를 드러내는 독립된 세계들이다. 비록 내 손과 감각 그리고 지적 기반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그 이상의 비중을 지닌 질료들의 특성과 매순간 피할 수 없는 우연의 결과가 만드는 자연스러운 표정들 때문에 가능해지는 일이다.
화가로서의 내 역할은 질료들과 우연한 현상들을 생생하게 느끼며 그 속으로 녹아들어 서로 어우러지도록 기획해내는 일이다. 선과 먹 그리고 물이 만들어내는 표정들 사이로 넉넉하고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들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새로운 회화 - 질료와 감각이 함께 여는 세계
종이나 캔버스는 회화적 행위나 그 흔적들을 감당하는 바탕이자 지지체이지만, 동시에 질료로서의 뚜렷한 특성을 갖고 있다. 요즘 많이 쓰는 전통 한지나 아크릴 회화용 종이들, 바인더나 젯소로 섬세하게 결을 살린 캔버스는 종종 드로잉의 모티브들을 엉뚱한 곳으로 이끌어 가곤 했었다.
먹이나 목탄, 물감과 흑연 같은 질료들도 물과 함께 어울어지면 흥미진진한 속성들을 드러내곤 하는데, 이 질료들의 특성들이 그간의 회화에 관한 생각들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무엇을 그리려 하거나, 어떻게 그리려는 의도보다 각 질료들의 특성과 그것들이 자극하는 내 감각이나 감수성에 눈을 뜨게 만들고, 그것이 질료들의 특성이라는 채널을 통한(최소한 동반하는)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 결과, 내 그림들에는 어떤 형태나 색채, 또는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들, 가령 눈에 뚜렷이 보이지만 그동안 주의를 기울여 보지 않던, 질료와 작가의 감각 사이에서 만들어진 아주 내밀하면서도 교감신경계의 격렬한 반응이 담기는 것 같다.
예컨대,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의 창작과 감상의 소통시스템을, 왜 그 전통 한지를 선택해서 먹과 아크릴 물감을 섞고, 물을 그렇게 많이 넣어 희석하는지, 번지고 흐르며 튀는 먹물들을 방임하고, 서툰 왼쪽 손으로 발작적인 목탄드로잉을 얹었는지 같은 의문들과 그 결과물들이 감상자의 어떤 감각과 감수성들을 자극하는지를, 보고 느끼며 교감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 특정한 지점이 작가와 질료들이 함께 열어가는 예술작품의 새로운 존재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이것이 오늘의 예술을 새롭게 정의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