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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학술 세미나

왜, 그리고 지금 다시 읽어야 하는가?


 

 

역사는 과거의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열어가려는 현재적 작업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과거를 다시 읽는 일이다. 때문에 이러한 다시 읽기는 현재를 과거와 구별하려는 새로운 해석의 관점을 제시하는 일이라 말할 수 있으며, 이것을 만족시킬만한 구체적 방법론이 전제될 때 역사는 현재적 가치로 재생산될 수 있는 것이다.

서구사회에 있어서의 현대화는 그들의 전통에 대한 비판과 극복의 역사적 과정이었으며, 현대미술은 그 문화적 대응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대사는 급변하는 세계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전통과의 역사적 단절과 현대화를 위한 비약의 기반 위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현대미술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 대한 문화적 대응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러한 역사적 현실을 떠나 한국의 현대미술이 동시대 서구미술의 이념과 양식을 공유하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바로 이 지점에 한국의 현대미술이 다시 읽어져야만 하는 시대적 고민이 있으며, 이러한 비판적 역사의식이 무엇보다 먼저 확인되어야 할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곧 한국현대미술을 서구미술의 주변부 문화로 인식해 왔던 서구 중심적 관점으로부터 이탈하여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현실을 그 중심1)으로 하는 새로운 해석의 시도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6, 70년대 실험적 경향의 미술현상들은 현대사에 관한 역사적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간의 수용미학의 논리2)를 넘어 이 시기의 예술가들이 겪었던 문화적 고민과 그 단층의 현상을 새롭게 조명해 감으로써 한국현대미술의 초기 역사를 생산적 관점에서 다시 읽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현대미술과 문화적 현실 다시 보기

 

   I

예술과 문화는 그것을 구축하고 지켜 가는 사회적 역량에 따라 생산성을 갖기도 하고 소모적 성향을 띠기도 한다. 문화란 개인들의 삶에 관한 철학과 감성으로부터 시작되어 주변으로 확산된 일종의 집단적 의식이자 관습이며, 사회란 단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의식과 감성이 공존하는 장소이다. 신앙과 철학, 이념과 권력 같은 것들은 존중할 만한 의식들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개체들간의 ‘다름’과 ‘차이’를 억압하게 된다는 점에서 예술의 자유로움과 뚜렷이 구분된다. 때문에 예술과 문화의 품안에서만큼은 각 개체들이 갖는 서로 ‘다름’의 ‘차이’와 ‘같음’의 ‘동질성’이 세심하게 배려되고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우린 이런 태도 안에서 ‘나’와 ‘우리’를 엮어줄 근본적인 문화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예술과 문화가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문화적 이질감과 언어적 간극을 넘어 ‘우리’의 존재에 관한 기쁨을 준다는 사실을 믿고있지 않은가?
현대미술은 천재라는 우상을 밀어낸 자리를 담론의 장소로 만들어 왔으며, 그 난해함의 호된 질책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적 가치를 생산해 왔다. 미술의 현장과 비평적 해석은 현대미술의 문화적 담론을 지탱해 온 양팔과 같은 것이었으나, 한국의 현대미술과 그 주변의 문화는 상호간의 깊은 불신의 골을 파오면서 극심한 소모적 문화성향을 수십 년간이나 연출해 왔다. 이것이 비록 짧은 역사의 한계라 하더라도 지난했던 과거 백년의 역사를 딛고 일어서려는 시대적 여망에 역행하는 퇴행적 문화현상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대미술 속의 무수한 가짜들은 그것이 가짜임을 명백히 규명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곤혹스러운 것들이지만, 한국의 현대미술 맥락에서는 자의든 타의든 진짜가 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함으로써 스스로 가짜일 수밖에 없는 가짜들을 만나게 된다.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의 생산적 담론 구축은 이 가짜로서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비판적 기능을 활성화함으로써 그 건강한 담론을 회복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 한계를 넘지 못하는 한 생산적 담론의 구축이란 요원한 일이며, 다시 읽기는 아무런 의미도 결과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현재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다시 읽기의 생산적 담론이  절실한 것이며, 우리가 함께 시작해서 지속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을 계속 이어가자는 것이다.

 

  II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에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경향의 미술활동들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 시기의 미술활동과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연구는 매우 미흡하며, 논의와 평가의 과정을 건너뛴 주류중심의 연대기적 진술로 역사를 대체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현대미술에는 주류와 주변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당시 예술가들의 활동은 열악했던 사회 속에서의 현장 논리를 갖고 있겠으나 그 평가는 그 활동들의 전후맥락과 그 결과로서의 작품들에 관한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분석과 연구, 그리고 비판적 검증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소위 한국미술계에 있어서의 주류개념은 이런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화단에서의 대세주의, 즉 주도권을 둘러싼 패권주의적 속성3)을 띠고 있다. 그러나 당대의 주도적 흐름을 형성해 왔던 패권주의는 결과적으로 한 시대의 미술문화를 단순화시키고 그 담론을 빈약하게 만듦으로써 스스로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주류세력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물론 다시 읽기의 비평적 지평을 열어가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주류 중심적 관점을 경계할 필요가 있으나, 그보다는 주류 중심적 관점에서 소외되어 왔던 다양한 가치를 회복시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예컨대, 청년작가연립전으로부터 AG와 ST에 이르는 집단적 성향의 운동사에 가려 그 빛을 보아오지 못한 개인들의 발언과 그 구체적인 작업들, 그리고 그 배경의 이념과 실질적인 현상들, 그 현상들에 영향을 미쳤던 주변적 요소들의 성격과 내용을 꼼꼼히 밝혀가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이 시기의 미술활동들을 전후로 한 역사적 연계의 의미와 가치 역시 밝혀져야 한다. 한국현대미술이 동시대적 흐름에 주체적으로 동참하지 못하고 번번이 유행현상에 편승하는 소모적 문화현상을 반복해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앞선 시대의 예술과 문화를 비판적으로 되씹으며 담론화해 오지 못했기 때문
4)이다.
특히 6, 70년대의 미술활동은 그 전후의 미술현상들에 비해 비교적 개인들과 소그룹 단위의 건강한 발언과 운동성이 다양하게 펼쳐졌으므로 그 연구의 대상과 내용이 상당히 풍부하며, 그 성과 역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한국현대사의 생생한 현장을 역동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역사적 가능성을 지닌 부분이다. 6, 70년대는 국제적으로도 많은 전위적 경향들이 등장했고 활발한 비평적 활동이 개진되었던 시기였으므로 그 미술문화들 간의 상대적 영향관계를 잘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의 우리 나라의 미술과 담론들은 동시대미술의 정보와 지식을 수용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담고 있으므로 그 안에서 문화적 충격과 절충, 그리고 혼성의 구체적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이를테면 일본의 미술전문지인 「미술수첩」 등을 통한 정보의 수용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양식과 재료 공유 등의 문제들은 그 비평적 접근의 관점과 방법에 따라 동시대미술 양식의 동질성과 더불어 역사적 문화의식의 ‘다름’과 ‘차이’를 변별해낼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르테-포베라>나 <대지예술>, <플럭서스>와 <미니멀 아트>, 모노하와 <구타이>그룹 등은 동시대적 미술현상으로서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과 방법론을 구축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국제적 미술문화의 양상이 당시의 한국작가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III

마지막으로 제기할 문제는 동시대미술 문화 현상과 관련된 문화정치학적 지형도를 함께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현대미술이 예술과 관련된 근대적 신화의식을 어떻게 해체시켜 왔는지 잘 알고 있다. 일찍이 미국은 1958년 MoMA에서 열렸던 <미국 추상회화 조각전>을 시작으로 국제사회 속에서의 문화적 주도권 장악을 위해 고도의 문화정치학적 전략과 전술을 다양하게 구사해 왔으며, 그것을 통해 실로 엄청난 실익을 챙겨왔다. 한국도 1995년부터 <광주비엔날레>와 2000년 <미디어 시티>등에 상당한 자금을 투자하며 국제사회 속에서의 문화정치학적 대응을 시도하고 있지 않은가?5)
그러나 이러한 행사에 앞서 미술 현장의 문화적 역량에 관해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 추상회화 조각전> 역시 잭슨 폴록 같은 걸출한 작가들과 클레멘트 그린버그 같은 탁월한 비평가, 그리고 이들의 가치를 평가할 문화적 역량이 없었다면 그토록 성공적인 전시가 가능했을까? 정책적인 차원에서의 거대 행사도 필요한 일이지만 그 행사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한국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역사적 현실의 담론을 찾아내고, 한국현대미술 맥락을 통해 동시대미술 문화의 영향에 대한 대응적 논리와 그 나름의 아이덴티티를 구현해 가려는 노력을 담아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미몽(迷夢)에 잠겨있는 순간에도 세계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며, 현재로선 그들의 필요에 따라 우리의 문화적 위상이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함께 깨우쳐 가야만 한다.

 


매듭짓기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의 또 하나의 목적은 물론 질곡 많은 현대사의 역사적 대응으로서의 현대미술 문화를 재구축하고, 나아가 동시대미술 현상 속에 소위 주변부로 치부되어 왔던 제 3세계의 문화적 대응을 실현해 가는데 있다. 이것이 다시 읽기를 통해 생산적 담론을 구하려는 참 뜻이며, 우리의 역사를 다시 읽어야만 하는 이유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너무 성급하다거나 지나치게 벅찬 꿈이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지적이 우리 자신의 나태함과 무능함을 감추기 위한 신중한 위선이 아니길 바라며, 발 앞의 작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이 결국 눈앞의 큰 강을 건너는 일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재 세계에는 100여 개가 훨씬 넘는 국제전들이 열리고 있고, 이 중 대부분이 제 3세계권 국가들에서 열리고 있으며, 많은 지식인들이 다원주의와 혼성의 문제
6)를 앞다투어 다루고 있는 의미를 깊이 새겨 볼 필요가 있다.

나는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에 임하며 ‘사상누각’에 비유7)되는 한국현대미술의 국제사회 속에서의 인식이 바로 우리의 역사의식 부재와 분열증적인 자기 욕망의 현시욕, 그리고 무력감이 자초한 결과에 다름 아니라는 반성과 함께, 이것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진정한 현대성을 획득해 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도전하고 극복해 가야할 분명한 대상이 존재하고, 연구하고 매진해야할 수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자각과 우리가 하나씩 해결해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우리 문화 예술의 환경은 아직도 열악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선명한 역사적 과제를 해결해 나아갈 기회가 우리에게 남겨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각주

1) 당시 작가들은 서구 문화의 영향을 어떻게 보았으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응하였는가를 살펴봄으로써 그 영향의 실체와 동기,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작업에 나타난 문화적 혼성의 특성과 그에 관한 새로운 해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2) 사실 일부 비평가들과 미술사가들은 이 시기의 미술작품들과 작가들의 활동에 관해 ‘이론의 부재’와 ‘양식적 유사성’ 그리고 모방을 전제로 한 작품의 발표 시기 문제를 논란의 단골 주제로 삼아 왔다. 한동안 이와 같은 접근은 일견 설득력 있는 논리로 받아들여졌고, 이 시기의 작업들은 서구 미술의 수용이라는 맥락에서 평가되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서구미술의 이론적 배경이 이 역사적 질곡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해답인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한다. 현대미술에 있어서의 이론이란 실험적 미술활동과 함께 병행된 문화적 대응작업이었으므로 반드시 선결되었어야 할 문제는 아니었으며, 이론적 배경에 충실했다 하더라도 그 근본적인 한계를 벗어 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문제는 오히려 한국의 현대사에 엄연히 존재하는 문화이식의 한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있었으며, 이것은 이론과 미술활동에 있어서 공히 떠안아야 할 궁극적인 과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간의 비평적 시각과 미술사적 해석은 이러한 현실과 역사적 맥락에서의 특수한 상황논리를 배제한 채 미술작품의 형식과 이론적 측면에서의 가치만을 검증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3) 한국현대미술 맥락의 뿌리 깊은 불신은 역사적 질곡으로 인한 생존의 위협 속에서 과도하게 증폭된 개인적 욕망들과 이것을 제어할 수 없었던 비판적 힘의 부재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유난히 많은 단체들의 난립과 그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예술가들의 이합집산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이해관계를 둘러싼 집단논리와 반목은 미술문화의 소산이 아니며, 논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틈바구니 속에서의 비평은 너무도 무력해 보인다.

4) 많은 작가들은 작업의 발상과 관련하여 역사적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일종의 신화적 진술들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신들이 천명하고 있던 아방가르드적 태도와 근본적으로 거리가 먼 것이다. 또한 이들은 전위와 권위를 한 얼굴 속에 공존시키면서 담론화를 위한 문화적 비판과 도전 자체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보수적 완강함을 보임으로써 건강한 담론 자체를 허용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해 왔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그들이 추구했던 전위적 정신과 모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필경은 그들 자신을 역사 속에 함몰시키는 결과로 되돌아 올 것이다.

5) 그러나 이러한 행사들이 얼마나 전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매우 의문스럽다. 몇 명이 참가하고 몇 명이 관람했는지, 입장수입이 얼마이고 얼마의 흑자를 냈는지의 문제 보다 중요한 것은 이 행사들을 통해 국제사회 속에서의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얼마나 더 신장되었고 그것을 통해 어떤 문화정치학적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인지를 따져 보는 일이다.

6) 이 다원주의와 혼성화의 문제는 또 다른 방식의 서구 중심적 관점이 될 위험성을 안고 있으나 결국 관건은 주체적 역사의식에 근거하는 문화정치학적 대응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7) 치바 시게오, 틈새에서 잉태한 미술-한국미술의 현재, 아시아 세기의 서두에 전시서문 중에서

     오오사카, 해안통 갤러리 2001. 8. 21-‘아시아의 창조력’ 심포지움

치바 시게오는 한국의 현대미술이 “6.25 동란 후 서구와 북미의 신경향 미술을 모방하고 배우면서” 시작되었고, “한국작가들은「무엇을」표현해야 할 것인가를 충분히 결정짓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표현할 것인가 하는 측면에만 자신들의 리얼리티를 드러냈고, 결국 이러한 토대 위에서 각자가 표현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하면서 “「환원」reduction파(앵포르멜파) 대 「확산」diffusion파(다다 또는 반예술적 경향)의 활동들도 이제 와서 보면, 「무엇을what to express」충분히 결정하지 못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양자간의 차이는 없다고 본다.” 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80년대에 들어서 모노크롬파(단색조 평면회화;역자 주) 대 「사회파(社會派) socialist-minded artist(민중미술, 혹은 현실주의 리얼리즘; 역자 주)」의 대립관계에서 “「무엇을/어떻게」가 미술가에게 꾸준하게 보였”으나, 90년대 들어 변화된 양상 속에서 인간-물질의 관계를 단순하게 파악할 수 없게 되고, 민중미술 또한 싸워야 할 상대가 확연해지지 않음으로써 다시 “무엇을/어떻게 표현해야 할까도 자명self-evident한 해법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그는 “이러한 경향이라면 서구에서는 명백한 개념과 실체를 상실한 까닭으로 인하여 「근대미술modern art」의 붕괴 징후로 간주할 것이다. 하지만 무너져 내린 만큼 축적된 것이 거의 없는 한국의 미술상황은 이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주어진 비젼과 설계도에 따라 예술가란 목수들이 지은 집(한국현대미술)이 그리도 쉽사리 모래성처럼 용해되고 침식되어갈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하고 있다. 또 “현재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 주된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미술계 전반에 걸친 「액화(液化)liquefaction 상태」 또는 「액화 상태란 말로 비유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인들이 어떻게 다시「미술」을 재건해야 할 지 또는 해야 하는 지의 문제다. 전자의 핵심은 한국 현대미술의 고유성peculiarity, 즉 현재의 아이덴티티를 포기 하든가, 아니면 점점 비대해지는 글로벌리즘에 대항하여, 예전처럼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든가 하는 문제다. 또 후자가 지닌 문제의 핵심은 「미술」 자체의 개념을(그 미술이라는 용어도 포함하여) 완전히 해체시켜 버린 다음 이 해체를 인정 하든가, 아니면 또 다시 손바닥으로 이「개념」을 꽉 움켜쥐려 하든가다. 바꿔 말하면, 문제는「미술」의 범주를 벗어나서, 아니면 여전히 그 범주 내에서「무엇을/어떻게」를 재고해야 할지의 차원이다. 바야흐로 이제 「미술」이라는 개념규정이 불분명해진 까닭으로, 선택방법을 고민해야할 전환점에 서 있다. 정말로 「미술」의 범주 바깥에서 「무엇을/어떻게」를 재고할 수 있을까? 비록 일시적인 개념이긴 해도 「미술」을 되찾고 그것과 관련하여 「무엇을/어떻게」를 꾸준히 밀고 나갈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오늘날, 갈등과 대결의 쟁점 사항이다.”라고 충고하고 있다.

나는 치바 시게오의 한국현대미술 맥락에 대한 접근방법이나 내용들, 그리고 그 해석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재까지의 한국현대미술 맥락의 비평작업이 얼마나 커다란 맹점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허술함이 국제 사회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게 되는가의 좋은 예가 된다고 생각하여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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