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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미술다시 읽기 I, 김장섭 대담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의 기획을 마무리하며

-자료집 서문을 대신하여-

 

 

 

나는 이 기획에 착수하면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의 맥락에 대해 적지 않은 오해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과거에 있었던 미술들에 관한 회고적 성격의 전시들을 쉽게 떠올릴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가 과거의「역사」를 대상으로 현재의 시점에서 요구되는 비평적 담론을 생산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것임을 선명히 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말하자면 이 기획들의 대상은 과거의 미술이지만 이것을 비평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지금', 그리고  '여기'의 문제로 만들고, 이것을 통해 과거를 우리 앞에 새롭게 등장시키고자 했다는 말이다. 지혜로운 후손들의 「역사」는 박제된 「과거」의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조상들의 과거를 새롭게 읽음으로써 「과거의 사실」들로부터 새로움의 가치를 부단히 발현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동시대성은 국가나 민족, 사회의 역사적, 지역적 특수성을 넘어 이 시대가 안고 있는 인식론이 공유되거나, 되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제시되는 것이다. 즉 현대미술은 우리 시대에 대한 깊은 인식론적 사유와 통찰을 바탕으로 하는 감성적 표현으로 세계를 묶는 중요하고 효과적인 소통의 언어이자 방법이다. 서양미술의 유입으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적지 않은 국제적 행사를 통해 그 마당을 확장시켜왔다. 고희동으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 맥락에 이르기까지의 변화는 그 100여 년의 세월이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질 만큼 실로 숨가쁜 것이었다. 소위 서양미술의 수용과 그 결과로서의 문화적 종속에 관한 우려와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들이 생겨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히 그럴만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나는 이 역사적 과정과 그에 관한 그간의 해석에 관해 상당한 의구심과 회의를 가져 왔다. 그것은 역사와 문화를 해석하는 인식론적인 방법의 문제에 있어 상당한 판단의 오류와 모순들이 쉽게 간과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한국현대미술의 수용적 측면은 불가피한 역사적 과정으로, 자동차와 전기가 우리 삶의 조건을 바꾸었듯, 역사적 패배감 속에서 새로운 문화에 대한 지적, 감성적 열망에 목마른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현대미술이 자리 잡았다는 사실 자체가 결코 부끄러운 일일 수는 없다.

또한 문화란 개인 혹은 소수로부터 시작되어 주변으로 확산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성격의 문화와 충돌하고 혼란을 겪으며, 절충되고 수용되면서 자리잡아 가는 것이다. 마치 댕기머리와 색동저고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누가 지금 이것 때문에 수용문화의 열등감으로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는가? 문화를 놓고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묻는 일은 언뜻 보기엔 매우 사변적이고 진지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넌센스한 비철학적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정체성이란 예술가들이나 비평가들이 고민할 일이 아니라 정치가들이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정체성과 지역주의의 화두는 수용문화에 대한 강박적인 피해의식 때문이거나 세계화, 혹은 국제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급조된 옹색한 전략의 소치일 뿐이다. 왜냐하면 집단적인 의식으로서의 정체성과 지역성에의 천착은 필경 전략적 목적과 전술적 방법으로 구상된 극히 비철학적 인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히려 현대미술의 수용과정에서 나타나온 인식론적 오류와 감각적 수용에 있으며, 의식과 감성의 문제들을 양식이나 패션의 선택적 문제로 받아들여 너무도 쉽고 편하게 소용시켜 왔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당시의 상황을 감안했을 때 이에 관한 비판적 해석은 비난이 아니라 보완의 성격이 되어야 하며, 이런 점에서도 『다시 읽기』의 필요성이 확인된다.

또 다른 문제는 동기와 결과에 관한 해석의 오류에 있다. 서구미술로부터 자극과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 동기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예술과 문화는 서구미술에 대해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동시대성이 동일한 방법론들과 해석학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믿는 인식론적 오류에 의해 우리의 '그 무엇'은 제대로 된 측정과 분석, 그리고 평가를 보류해 올 수밖에 없었다. 바로 비평적 방법론의 부재가 문제였던 것이다. 서구미술의 맥락에 적용되어 왔던 방법론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바로 '그 무엇'은 변종의 혐의를 뒤집어씌울 문제가 아니라 연구해야 할 핵심적인 쟁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도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비평적 『다시 읽기』의 필요성은 설득력을 갖는다.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80년대는 정치적으로 역사적인 분기점이었지만, 미술맥락에서도 매우 중요한 변화의 시기였다. 1979년 창립된 <현실과 발언>으로부터 시작된 '민중미술'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 그 변화의 한 축이며, 기성화단과 '민중미술'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제 3의 대안을 찾아 나섰던 일련의 소그룹들의 활동이 또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다. 그 동안 우리의 현대미술 맥락은 미술 내적 논리에 따르기보다는 세력을 중심으로 한 주류 중심의 미술에 의존하면서 스스로 단순논리에 빠져 왔다. 80년대는 민중 미술이 현실의 문제와 정치적 투쟁이라는 참여의 문제를 제기했었던 반면, 80년대의 소그룹들은 게릴라식 전술과 전략으로 당시의 제도권 대 민중미술의 흑백논리를 거부하고 중심담론과 세력권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방법을 제시했다. 이들은 시대적 상황에 대응하는 측면에서 의식을 공유했으나 개별적인 자신들의 성격과 상황논리를 더 중요시했으며, 앞선 세대들과 달리 거대집단으로 발전하기를 거부하고 끝까지 소수로 남아 자신들의 활동을 운동 차원으로 발전시켜 가고자 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윤리적 태도를 실천했다.

80년대에는 실로 많은 소그룹들이 등장했으며 저마다의 입장과 가치를 제시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이것은 소위 국제적 미술의 동향 속에서 그룹들이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린 사실과 대조적으로 보이는 대목으로, 왜 그 시점에서 유독 한국에만 그토록 많은 그룹들이 출현했어야만 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기획은 80년대 미술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한 시대에 대한 미술사적 평가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때문에 나는 80년대의 여러 그룹들과 개별적인 작가들을 대상으로 검토하였으나, 결국 그 중에서 당시의 상황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이후 자신들의 진로를 비교적 선명히 설정했던 <타라>와 <'82 현대회화>. <난지도>, <Meta-Vox> 그리고 <Logos & Pathos>, <3월의 서울>, <Museum>, <레알리떼 서울>, <황금사과>의 9개 그룹들을 비평적 재조명의 대상으로 설정했다.

 

80년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변화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정치와 사회가 그랬고, 국제적 미술의 동향도 큰 변화의 흐름을 보이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서구미술의 정보와 지식이 거의 시차 없이 유입되었으므로, 이를 토대로 서구의 예술가들과 대등하게 동시대적 대응을 모색하려는 젊은 예술가들의 연구와 작업이 가능해졌던 시기이기도 했다. 앞선 세대들이 서구미술의 정보와 지식, 그리고 미술의 양식을 수용하는데 있어 10여 년간의 시차를 보였던 것과 분명한 환경적 조건의 차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총체적이고 체계적인 비판과 반성이 이루어 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장의 상황들은 일단의 비평가들에 의해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범주 속의 현상으로 진술되었고, 이에 반발하는 작가들의 입장은 결국 미술의 현장과 비평 사이의 깊은 불신의 골을 파게 되었다. 게다가 90년대 이후 등장하는 또 다른 일단의 비평가들은 앞선 비평가들의 비평적 입장에 대한 검증 없이 현장과 작가들을 무시한 채, 80년대의 소그룹들의 성격을 임의적으로 재단하고 평가하여 자리 매김 하려는 일련의 비평적 해석의 오류를 범함으로써 이 기획의 동기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

또한 80년대 소그룹 운동을 주도했던 작가들은 9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계의 주요한 작가 군으로 자리잡았으며, 국내, 외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으나 구체적인 비평적 접근은 거의 이루어 진 바가 없었으므로 이 80년대 소그룹들의 운동이 『다시 읽기』의 첫 번째 대상으로 선택되었다. 물론 제한된 시간과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비평적 재조명이므로 구체적인 내용에까지 이를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으나, 문제의 제기와 쟁점을 구축하는 전제 조건을 구축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다시 읽기』의 시작에 불과하며 더욱 다양하고 구체적인 기획을 통해 이 한계들은 지속적으로 보완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은 일련의 기획은 많은 시간과 여러 사람들의 노력, 그리고 많은 자금이 투자됨으로써 가능했다.

지난 해 10월 나는 이 기획을 위해 80년대 소그룹 작가들과 모임을 가졌으며, 이 자리에서 기획의 취지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 작가들은 현재의 비평적 담론을 구축하기 위한 이 기획의 취지에 선뜻 공감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번거로운 자료의 제공과 인터뷰, 그리고 작품의 출품에 쾌히 응해 줄만큼 우리의 미술계와 비평계에 큰 애정과 관심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이들이 소그룹 운동을 했던 당시에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현실적 욕망보다 시대적 고민과 예술가로서의 열정을 갖고 있는 작가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이 지면을 통해 선, 후배, 동료 작가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이 기획을 위해 한원미술관이 준비한 자료들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우선 이 소그룹들의 전시도록 일체(46종)를 수집하고 도판 일체를 스캐닝(800여 cut)하고 다듬어 자료화하고 서문 및 작가들의 글을 타이핑하여 재구성해 이를 CD-ROM으로 제작해서 발제를 맡은 미술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에게 제공했다. 또한 80년대 소그룹 관련 기사 및 비평문들을 찾아내고 복사하여(60여 종) 모두 제공했으며, 주요작가들과 가졌던 인터뷰 내용들을 그룹 소개내용과 함께 편집하여 9개의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자료화하였고, 그 인터뷰 내용들을 다시 타이핑하여 역시 발제자들에게 모두 제공했다. 또한 이 자료들은 3차례에 걸친 학술행사들에서 발표되었던 발제문들(기획 취지문 및 2차 워크숍 발제문: 김미경, 김영재, 유병학/ 3차 워크숍 발제문: 김원방, 김정희, 심상용/ 본 세미나 발제문: 김미경, 심상용, 오상길)과 함께 <현장의 미술, 열정의 작가들>展에 함께 전시되었으며, 이 자료집에 선택적으로 수록되었다.

 

이 업무는 단 한 사람의 큐레이터와 함께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찬 일들이었으므로 지난 몇 개월간 여름휴가도 포기한 채, 매일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만 했었다. 이 점에 대해 미술관에 수업 차 갓 들어 온 큐레이터 전상민 씨에게 너무도 미안하고 또 깊이 감사한다. 워낙 힘든 일을 많이 해왔던 나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실로 엄청난 고통이 따랐을 터였으나 단 한마디 불평도 없이 전문인으로서의 소명감과 끈기, 그리고 명민한 판단으로 훌륭히 이를 수행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결코 길지 않은 시간동안 엄청난 양의 자료를 검토하고 빡빡한 학술행사 일정에 참여해 준 동료 이론가들의 노력도 참 뜻 깊은 것이었다. 몇 가지 유감스러운 일도 없지 않았으나 차라리 현재 우리 미술비평계와 미술사학계의 실질적인 면모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었던 일로 생각한다. 여러 이론가들이 많은 애를 썼으나 과로로 병원신세를 지면서도 침착하고 견고한 발제를 해 주셨던 김미경 교수님과 주변을 돌아 볼 겨를이 없는 가운데에도 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발제를 해 주셨던 김원방 선생님, 역시 건강상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 학술행사에 임해 주신 심상용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한편 이 기획은 한원미술관의 뜻깊은 투자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우수기획전 지원으로 가능했는데, 이 자리를 빌어 한원미술관 이사장님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 깊이 감사한다.

 

이제 마지막 행사인 <현장의 미술, 열정의 작가들>展도 막을 내리고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I』, <80년대 소그룹 운동의 비평적 재조명>의 기획도 또 다른 평가의 몫으로 남겨지며 역사의 뒷장으로 넘겨진다. 그러나 우리의 미술에 관한 애정과 관심은 여전하며, 이 기획은 우리의 비평적 과제를 또 하나 산적시킨다. 우리의 현대미술은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는 단순한 행위에 그치지 않을 문화의 영역으로 확장됨으로써 '지금 우리'가 누리고 즐길, 살아있는 문화로 부단히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현대미술은 위대한 천재로서의 우상을 밀어낸 자리에 수용자로서의 관람자들을 초대해 왔기 때문이다.

 

 

2000년 10월에

오상길(작가, 한원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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