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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문예지원이 복지후생인가 [중앙일보 2008. 7. 9]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문화예술계는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문화예술계의 코드인사는 새판 짜기를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고, 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는 전진 교두보로 기능했다. 예술위는 창작지원금이란 명목으로 매년 수십억원의 기금을 특정 성향의 예술가들에게 뿌리면서,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예술가들의 활동 기회를 상대적으로 제한했다.

지난달 제2기 예술위 출범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자는 예술위의 파행 원인을 위원들의 행정경험 부족으로 진단하며, 문화예술인들의 위원 참여를 30%로 제한하고 행정전문가와 경영인·법조인 등으로 70%를 채우는 방안을 제안했다. 예술위의 여러 문제는 평생 다른 분야에서 활동해온 11명의 예술가들에게 한 달에 한 번 여는 회의를 통해 합의도출을 요구했던 의사결정 구조의 모순에서 비롯되었다. 노무현 정권의 코드인사 출신인 다수의 특정 성향 위원들 사이에서 소수 위원들이 방어적으로 선택한 것이 장르별 이기주의였고, 이것이 파행의 핵심인 것이다. 이것은 일부 예술위 사무처 직원들과 예술위 비상임위원들도 주장하는 바다. 이날 발제자의 진단과 처방은 초점을 비켜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1기 예술위의 파행을 근거로 위원들의 권한 제한을 검토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발상은 1기 예술위의 예외적인 정치적 당파성과 전횡을 일반화해 체제를 경직시키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또 예술위를 이끌 만큼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은 행정가들과 법조인이 얼마나 되는지, 이들이 이끄는 예술위가 문화예술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예술위가 민간과 공공 영역의 동시 참여를 표방하고 있는 한, 예술위에는 문화예술 현장에 밝고 탁월한 기획력과 행정감각을 겸비한 진짜 전문인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예술위의 성공적인 운영이 유능한 전문가들의 역량을 어떻게 극대화해 내는가에 달려 있다면, 2기 예술위를 위한 대안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 장치가 되어선 곤란한 것이다.

그보다는 예술위의 운영에 적극적 경영마인드를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 국가와 국민은 예술위의 투자를 통해 더 큰 부가가치를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새 정권의 문화강국 실현과 문화산업의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목표와 문화부의 4대 지원원칙(선택과 집중, 사후 지원, 간접 지원, 생활 속의 예술)도 분야별 특성에 따라 섬세하게 준비되고 주도면밀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문화부는 성급한 개선안을 도출하기 전에 3년 동안 약 3500억원의 기금을 집행한 예술위 사업들을 면밀히 분석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교정해야 할 것인가를 치밀하게 연구해야 한다. 예술위는 해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최하위’를 기록해 왔다. 기금보전 대책도 없이 문예진흥원 시절의 네 배가 넘는 사업비를 지출해 2004년 5272억원에 달했던 문예진흥기금이 3900억원(2008년 말 예상)으로 줄어들 만큼 방만한 사업을 일삼아왔다. 원금을 1372억원이나 감소시키면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이런 문제들에 근거해 대책을 논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은 상당수의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이 문화와 예술을 복지후생 개념 정도로 이해하고 있던 노무현 정부의 예술정책에 기대어 새 정권과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은 국정철학이 다르므로 당연히 차별화된 정책과 전략을 필요로 할 텐데, 문화부는 현재까지도 지난 정부의 그것과 별다른 차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3년 동안 일해온 1기 예술위 위원들은 파행 운영을 ‘성장통’쯤으로 미화하고 있다. 이에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의구심을 가지고 문화부를 주시하고 있다. 새 정권을 뒷받침해야 할 문화부의 준비가 많이 미흡해 보여 안타깝다.

오상길 예술과 시민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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