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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들이여 내 칼을 받아라 #No.2
-김영나의 『20세기의 한국미술』
졸저, 비평가들이여 내 칼을 받아라, ICAS, 2005
국립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이자 미술사가인 김영나의 책 『20세기의 한국미술』은 거창한 제목을 감당하기에 너무도 부실하다고 판단되는 책이다. 좋게 말해서 쉽게 쓴 글들이지만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너무 가볍게 인식한 나머지 중요한 내용들을 함부로 다루고 있고, 미술의 역사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다루며 엉뚱한 역사를 진술해 놓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세기의 한국미술을 바라보는 필자의 관점 자체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포함해서, 진술의 내용들이 지극히 피상적일 뿐만 아니라, ‘선택’과 ‘집중’에 따르는 기초적인 논거조차 제시하지 않는 무책임한 역사진술로 많은 혼선과 오해를 만들고 있다.
책을 출간한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20세기의 한국미술』을 영역한 책이 대한민국 문화관광부의 학술부문 추천도서로 선정되고, 이런 정도의 책을 쓰는 사람에게 미술이론상을 주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심사위원이 과연 책을 읽어보기나 하고 심사를 했는지 의심스럽지만, 책의 내용도 읽어보지 않고 추천도서로 선정했다면 심사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읽어 보고도 이 책을 선정했다면 심사위원들의 자질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니, 심사위원은 그 어느 쪽이든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사람들이 전문인임을 자청하고 다니며, 미술과 비평 그리고 대한민국 문화관광부의 권위와 위상을 땅바닥에 곤두박칠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설마하니 문화관광부가 이런 결과를 위해 추천도서 선정제도라는 것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겠는가? 그래도 현직 대학교수이고 명색이 미술평론가라는 사람인데, 최소한의 인격과 전문성을 신뢰했기 때문에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석남 미술이론가상 역시 그렇다. 이 상이 어느 정도의 권위를 갖고 있는가를 따지는 일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상을 제정하고 수상자를 선정하여 보도까지 하는 것이겠는가? 끼리끼리 협잡해서 세상을 속이고 모든 사람들을 좌절에 빠뜨리면서까지 이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이 상은 심사위원이라는 자들에 의해 시작부터 상의 제정 의도와 제도의 시행 사이에 불미스러운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한국의 미술계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불신과 냉소주의가 역시 이유있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 있고, 지금 한국미술 비평계가 얼마나 썩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 *
김영나는 『20세기의 한국미술』 서문에서 “20세기의 우리나라의 미술은 동아시아라는 종전의 한정된 범위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흐름과 연관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20세기 우리나라의 미술활동의 전체 윤곽을 기본적으로 동아시아와 서양과의 관계 속에서의 미술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잡아보고자 하였다” 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1)
물론 20세기 한국의 미술을 세계적인 흐름과 연관지어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술현상을 주변의 사회적 상황들과의 연관을 통해 이해하는 일도 당연하고, 또 “동아시아와 서양과의 관계”든 ‘세계적인 흐름과의 연관’이든 시야를 넓혀 파악해 보려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그렇게 파악한 20세기 한국미술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한국미술을 바라보는 필자의 시야가 아니라 관점이고, 인식의 방법이며 내용에 있는 것이다. 미술사란 미술의 표면적인 현상을 기술記述하는 ‘사건일지’가 아니라 미술의 역사를 다루는 학문이다. 즉 미술이라는 예술영역 전반의 가치인식을 토대로 미술현상과 현상적 변화의 동인 그리고 역사적 의미와 가치의 부여라는, 대단히 포괄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진술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특히 현대미술처럼 예술 자체가 ‘예술이란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인지의 첨예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미술의 역사는 곧 각 예술가들의 인식의 내용이 무엇이고 그 방법은 어떤 것이며, 그러한 변화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다루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쉬울 수가 없는 것이다.
흔히 서구미술의 영향을 비판적으로 언급하지만, 비평과 미술사를 통해 밝혀야 할 바는 그 영향의 내용과 의미 그리고 그 영향에 의해 무엇이 어떻게 변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지의 내용이다. 한국의 미술을 이끌어 온 주체가 한국의 예술가들이었던 만큼, 서구미술로부터의 영향을 밝히는 일도 영향을 받았던 주체들의 관점을 통해 파악되어야 하고, 그들이 생산한 미술의 가치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미술운동이란 미술의 가치를 생산하는 예술가 개체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이며, 그 목적과 방법이 미술 자체의 가치실현과 반드시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미술운동은 미술 그 자체와 다른 맥락에서 분석되고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극히 개체적 속성이 강한 예술가들이 집단적인 운동 성향을 보였다는 사실은 미술의 맥락에서 매우 특수한 상황으로 인식되어야 할 문제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핵심은 이러한 집단적 운동성이 나타나게 된 동기와 운동의 성격 그리고 그 결과를 운동주체들의 관점을 빌려 파악하고, 이것을 다시 미술이라는 보다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맥락에서 분석하여 의미를 찾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김영나가 문제 자체를 너무 가볍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20세기 한국미술을 바라보는 그녀의 관점이 바로 그 20세기 한국미술의 맥락에서 이탈되어 있기 때문이며, 미술의 현상을 뒷받침할 연구의 내용과 방법이 극히 부실하다는 말이다. 그녀의 시선은 시종일관 미술의 현상 표면에 머물고 있으며, 그 내용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상식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상식 수준의 내용들 대부분이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매우 그릇된 문제인식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김영나는 20세기 한국미술의 내용을 잘 모르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우리나라의 미술활동의 전체 윤곽을 기본적으로 동아시아와 서양과의 관계 속에서” 그것도 “미술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잡아보고자” 한다니 어찌 우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국의 미술상황을 타개해 가려는 예술가들의 일시적이고 지엽적인 미술운동의 관점에서 어떻게 “20세기 한국의 미술활동의 전체 윤곽”을 잡는다는 것인지, 또 한국미술계의 특수한 현실상황을 타개해 나가려는 미술운동을 어떻게 “기본적으로 동아시아와 서양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한다는 것인지 도통 이치에 닿지도 않는 말로 들릴 뿐이다. 도대체 이것이 미술사의 명제로 성립이 될 수나 있는 말인가?
이런 문제들은 『20세기의 한국미술』이라는 책 전반에 걸쳐 수없이 등장하고 있어 과연 이 책이 미술사가가 쓴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그렇다고 그 많은 내용들을 일일이 예시할 수도 없는 일이라, 1950년대 후반의 상황에 관한 내용들을 하나의 예로 삼아 문제를 살펴보았다.
김영나는 「해방 이후의 한국 현대미술 개관」이라는 글에서 1950년대 후반의 미술상황을 ‘새로운 세대들의 등장과 모더니즘의 확산’이라는 타이틀로 특징짓고 있다. 김영나가 무엇을 모더니즘이라고 말하는지는 이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김영나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과 현상」이라는 글을 통해 서구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개괄적으로 스케치하면서 ‘우리나라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나라 모더니즘 미술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모더니즘 미술의 이론이 서구 이론가들에 의해 정립되었고 따라서 모더니즘을 이야기할 때 서구적 기준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논의 자체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2)
이어서 그녀는 “근대성(모더니티)을 새로운 형태의 사회로 인식되는 사회적 문화적 조건이라고 본다면 우리나라 미술에서 변화하는 당대 사회의 새로움을 표현하고 그에 대한 미술가 자신의 반응과 자아인식이 작품에 재현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이후의 근대미술로부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근대미술가들은 종래의 관념적인 수묵산수류의 회화에서 벗어나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근대화되어가는 삶을 재현했다.”고 밝히고 있다.3)
김영나는 자신이 말하는 “근대화되어가는 삶을 재현”한 그림들이란 “근대화가로서의 자의식, 또는 자기 탐색의 시도를 보여주고” 있는 자화상들과 “누드, 근대적 건물들이 늘어선 도시의 풍경” 등의 새로운 소재들이라고 말하고,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사회에 대한 인식이며 근대성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김인승의 <춘조>에서 개량 한복이나 서양식 양복을 입고 서양 악기인 첼로의 선율을 감상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인물들이나, 구본웅의 <우인의 초상>에서 노동자의 모자를 비스듬히 눌러쓴 냉소적인 지식인으로 보이는 이상의 모습은 새로운 근대 한국인을 재현한 것이다.”라고도 주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김영나는 “사실적인 재현, 또는 아카데믹한 공식에서 벗어난 미술의 자율성 추구로 본다면 (…) 1930년대부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본격적인 모더니즘은 이후 해방과 6․25를 겪은 후, 1950년대 말부터 일어난 앵포르멜 미술이었다.”고 진술한다.4)
그러나 이러한 김영나의 모더니즘에 대한 인식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김영나의 시각은 모더니즘이라는 역사인식과 완전히 몰관계한 부분적인 현상의 표면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하는 모더니즘은 기껏해야 “서양식 양복을 입고 서양 악기인 첼로의 선율을 감상하는 인물” 등의 모티브를 “새로운 형태의 사회에 대한 인식이며 근대성의 표현”이라고 인식하는 수준인 것이다. 또한 김영나는 자신이 말하고 있는 그대로 “서구에서는 1880년대에서 1930년대에 걸쳐 일어났던 모더니즘 양식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미술을 한국의 모더니즘 미술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내용들은 김영나가 모더니즘이 서구인들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근대적 인식이라는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고, 그녀에게 일제 강점치하에서 왜곡된 근대화의 과정을 겪고 있었던 당시의 사회상황에 대한 역사적 문제의식이 전혀 없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녀가 말하는 “본격적인 모더니즘” 역시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녀에게는 미술도 역사도 그저 표면적인 스타일에 불과한 것이다. 김영나가 예로 들고 있는 것들은 일제의 식민치하에서 그리고 해방 후 미군정과 친미정권하에서 강요되거나 수용된 문화와 제도이식 과정의 표피적 양상의 일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모더니즘이 비판의 대상과 극복의 방법 없이 역사성과 맥락을 떠나 스타일로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설사 서구의 모더니즘이라는 인식의 틀을 빌려 한국의 역사와 미술 문맥에 적용시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전통적 가치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과 그 대안으로서의 비판의식 그리고 독자적인 방법론에 관한 논의를 통해 다루어져야만 하고, 동시에 서구미술의 모더니즘에 대응할 만한 대안성의 제시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김영나가 말하는 한국미술의 모더니즘이란 일제와 서구의 영향권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 ‘미술의 스타일 차용’에 불과한 것이며, 이런 주장은 결국 20세기 한국미술의 전반이 일본과 서구미술의 수용과 모방의 한계 속에 아류로 머물고 있다는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김영나는 얼마나 많은 한국의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이 이 문제를 고민해 왔고 또 고민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이런 기초적인 문제의식 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20세기 한국미술사를 다루고 있다니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 문제는 다른 미술평론가들이나 미술사가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닌 만큼, 이에 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다시 다루어지게 될 것이다.
김영나는 「해방 이후의 한국 현대미술 개관」이라는 글에서 1950년대 후반의 미술을 전위그룹의 활동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1957년에 창립된 《모던아트협회》와 《창작미술협회》 그리고 《신조형파》 등의 작가들을 전전戰前 세대로 구분하고, 같은 해 창립을 본 《현대미협》의 작가들을 전후戰後 세대로 나누고 있다. 김영나가 말하는 전전 세대란 “일제시대에 미술을 시작한 세대들 중 진보적인 화가들”이며, 전후 세대란 “해방 이후 설립된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첫 세대들”로 “젊은 나이에 전쟁의 참화를 겪었던 (…)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세대들”을 일컫는다.
“5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미술계의 탈바꿈을 위한 집단적인 노력이 전전 세대들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이는 주로 이제까지 정착하지 못하고 있던 추상미술로의 추구로 나타났다. 유영국, 한묵, 이규상, 박고석 등은 ‘모던 아트 협회’를 결성했고 (…) 이들은 대체로 일제시대에 미술을 시작한 세대들 중 진보적인 화가들로서 유럽의 입체주의나 야수주의의 절충적인 양식을 주로 선택했던 것이다.”5)
이 글에서 보이는 김영나의 시각은 그간 미술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이 해 왔던 진술들과 별다를 것이 없다. 김영나가 말하는 “집단적인 노력”이란 《모던아트협회》 등 단체들의 등장을 이르는 말일 것이고, 그 중 상당수의 작가들이 추상미술을 선보였다는 점을 당시 미술현상의 두드러진 특성으로 보아 “탈바꿈”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고 짐작된다. 사실 이 책에는 김영나가 말하는 “탈바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그때까지 “정착하지 못하고 있던”이라고 말할 만한 비평적 근거가 무엇인지, 그렇다면 이후에는 추상미술이 정착했다는 말인지 등에 관한 구체적 언급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당시 발표된 미술들이 추상미술이라고는 하나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고, ‘추상’이 이런 미술들의 특성들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과연 김영나가 말하는 “탈바꿈”과 “정착”이 구체적으로 어떤 미술의 어떤 상태를 일컫는 것인지, 또 당시의 추상미술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김영나가 어떻게 보고 있다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길도 없다.
미술사가가 한 시대의 특징적인 미술현상을 ‘선택’함으로써 역사를 ‘집중’시키면서도 정작 그 근거와 목적 그리고 현상의 배후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지도 못하면서, “탈바꿈” 또는 그때까지 “정착하지 못하고 있던”이라는 식의 평가용어를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비평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물론 김영나가 그때까지 “정착하지 못하고 있던 추상미술로의 추구”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는 대목에서 이러한 ‘선택’과 ‘집중’이 추상미술에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지만, 다양한 미술현상 중에서 왜 그녀가 ‘추상’을 ‘선택’하고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 다양한 추상미술의 경향을 어떻게 뭉뚱그려 다룰 수가 있는 것인지, 그런 추상이 한국미술 문맥에서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등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김영나가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그렇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 문제는 다시 김영나가 왜 전쟁을 함께 겪은 《모던아트협회》 등의 40대 작가들을 “전전 세대들”로, 《현대미협》 등의 30대 작가들을 “전후 세대들”로 각각 구분하고 있는지에 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다음의 문맥이 그녀의 ‘의도’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러나 젊은 미술가들은 이러한 절충적인 양식에 만족하지 않았고 그들에 의해 5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의 미술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혁신의 선두주자는 제도적 보수주의를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젊은 미술가들로 이들은 서구미술의 최신 경향과 실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을 한 그룹은 1957년에 결성된 ‘현대미술가협회’로 (…) 앵포르멜 운동의 주축을 이루었던 박서보는 (…)” 6)
이 글에서 김영나는 “전전 세대들”을 “유럽의 입체주의나 야수주의의 절충적인 양식을 주로 선택”한 작가들로 보고, “전후 세대들”을 “이러한 절충적인 양식에 만족하지 않았”던 “혁신의 선두주자”로 분류하여, “전후 세대들”에 의해 “우리나라의 미술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다고 진술함으로써, “전후 세대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나는 김영나가 말하는 것처럼 과연 “전전 세대들”의 미술을 “유럽의 입체주의나 야수주의의 절충적인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또 이들의 성취를 단순히 “절충적인 양식”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등의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부분은 많은 작품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씩 구체적으로 다루어 가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의문을 제기하는 선에서 유보하기로 했다. 물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이에 관한 분석적인 반론을 구체화할 수도 있다. 다만 이 책에서는 전체적인 맥락상의 쟁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대신 김영나가 왜 “전후 세대들”에 의해 “우리나라의 미술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근거로 이들을 “혁신의 선두주자”로 치켜세우고 있는지에 관해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글 전체를 통해서 “혁신의 선두주자” 혹은 “새로운 전환기”에 해당하는 납득할 만한 비평적 논거를 찾아 볼 수 없었다. 김영나는 이런 표현을 쓰기에 앞서 ‘혁신’이 무엇을 뜻하는 가치이며, 그 ‘혁신’의 내용이 왜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와 유사한 미술이어야 하는지의 문제와 “전후 세대들”의 활동이 어떤 맥락에서 ‘새로운 전환기’가 되었다는 것인지 등에 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했어야만 한다. 사실 이 책에는 이런 문제들이 무수히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어떤 사람이든 나름의 관점에 따라 ‘선택’하고 ‘집중’할 수가 있고, 또 그것을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술사의 ‘선택’과 ‘집중’은 한 개인의 주관과 취향 그리고 ‘의도’에 의해 임의로 조정되는 것이 아니다. 미술사도 엄연한 학문이고 미술사가가 학자라면, 당연히 학문적 중립성과 연구의 원리 및 방법 그리고 진술의 절차를 갖추고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또 이러한 ‘선택’과 ‘집중’은 생산성에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배제’와 ‘소외’라는 반대급부의 역기능을 동반하게 마련이라는 것쯤은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글의 진정한 압권은 “앵포르멜의 역사적인 의미는 이들 세대부터 서양화가 일본을 거치지 않고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양식의 전개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면서 국제적인 흐름을 호흡하게 되었다는 점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7)
사실 나는 내 눈이 믿기지 않아 이 대목을 몇 차례 다시 확인하며 읽었다. 정말 가히 압권이라고 말할 만하지 않은가? 이런 정도의 분별력과 역량을 가지고 어떻게 내로라하는 미술사가로 행세해 왔는지 알 수 없으나, 김영나는 한 나라의 미술현상, 그것도 식민강점과 정치사회적 분열, 분단과 전란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쳐 온 한국사회의 미술현상 속에서 ‘앵포르멜’ 미술을 확산시킨 작가들을 “혁신의 선두주자”라고 말하고, 그들에 의한 ‘앵포르멜’ 미술로 우리나라의 미술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그런 ‘앵포르멜’의 역사적 의미가 일본이 아닌 미국과 유럽을 통한 ‘정보와 지식의 유입경로 변화’에 있다고 말함으로써, 당시 작가들의 활동과 예술적 성취 그리고 나아가 한국현대미술의 위상 전반을 싸잡아 수용문화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김영나는 수많은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이 사회적 소외 속에서 굶주림과 싸우며 일구어 온 우리 미술의 역사적 의미를, 당시의 미술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역사적 경험의 실체들과 예술적 성취들을, 모두 ‘미술정보와 지식의 유입경로 변화’의 하위가치로 전락시켜 20세기 한국미술 전반을 수용문화의 역사로 전도시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당시 주역들을 “혁신의 선두주자”나 “새로운 전환기” 따위의 근거도 없는 수사들로 치켜세워가며, ‘얼르고 빰치는 식’으로 반발을 무마하는 당돌함마저 드러내고 있다. 그녀는 이미 세상을 떴거나 너무 늙어 발언권이 약해진 “전전세대들”의 반발 정도는 두렵지 않으므로, 그들을 “유럽의 입체주의나 야수주의의 절충적인 양식을 선택”한 예술가들 정도로 폄하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말 20세기 한국미술이 김영나 같은 위인에게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심한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이것은 실로 개탄스럽기 짝이 없는 현실인 것이다. 어쩌다 우리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이 진술들은 김영나 자신의 역사의식과 윤리의식 그리고 전문역량과 안목이 얼마나 일천한 것인지를 여지 없이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참으로 딱할 정도의 역량과 의식을 가진 사람이 아무런 비평적․미술사적 검증과 제재를 받지 않고 전문가로 행세할 수 있는 비평적 현실에 있는 것이다. 국립 서울대학교 미술사학 전공교수의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도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역사가 무엇이고 윤리가 무엇이며 미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대학교수로 미술사가로 행세를 해 왔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아무리 실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정도면 정말 충격적인 것이 아닌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런 책을 쓰는 것일까? 하기는 이런 사람에게 미술이론가 상을 주고 있는 현실이니 놀라울 것도 없다. 그저 헛 웃음만 나오고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한국의 현대미술은 우리 사회가 겪어 온 역사적 단절과 현대화로의 비약에 따르는 정치․사회․문화 등 제도 전반의 변화들과 맞물려 있고, 어떻게 보면 이 역사의 한 단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야기된 약소국의 끔찍한 현실이었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온 겨레의 절박한 몸부림의 역사였다. 갖가지 모순들과 일그러지고 뒤틀린 한계들이 아직도 곳곳에 산재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식인들이 이것을 현실적 고통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역사적 주체로서의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문화와 제도의 이식과정에 따르는 부작용과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김영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역사와 현실이 자기 문제로 생각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한국의 예술가들이 서구미술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과 그 결과로서의 한국미술을 서구미술의 모방이나 수용의 맥락에서 평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말하자면 서구미술로부터의 영향은 자극과 동기일 뿐이고, 그 결과로서의 한국미술은 한국이라는 사회, 구체적으로는 각 작가 단위의 문화적․역사적 감수성과 독해라는 프리즘을 투과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예술가들이 서구의 미술을 모델로 하여 새로운 미술을 경험했다는 것이 독자적인 맥락에서 시작된 미술과 차별화되는 근거가 될 수는 있겠으나, 같은 이치로 그들의 미술이 서구의 그것과 동일선상에서 이해될 수도 없는 것이다.
앞서 다루었듯, 한국의 작가들이 한때 앵포르멜 미학에 자극받고 그에 심취하여 앵포르멜과 유사한 형태의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그것을 단순히 서구의 앵포르멜과 동일한 차원에서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말이다. 더구나 이 양식에 공명하여 집단적 양식화의 양상을 연출하고 있는 상황을, “혁신” 혹은 “새로운 전환기”라고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 아니라, 한국미술을 수용적 차원에서 해석하고 있는 김영나 자신의 주장에 대한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일부 미술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이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형태적 특징으로 분류하여 유형화하고, 그 가치를 서구미술의 양식주의 비평의 틀에 기대어 평가하고 있지만, 이는 발생과 전개의 과정이 전혀 다른 미술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평가의 예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방법이 한국미술 문맥 속에서 극명한 한계를 갖게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지 못하는 소치일 뿐인 것이다.
한편, 한국의 현대미술은 예술가들의 집단적인 미술운동에 힘입어 성장해 왔고, 그만큼 그 어느 미술사에도 없는 대단히 역동적인 역사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미술운동과 미술 그 자체를 동일선상에서 파악하고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인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현대미협》의 반국전 운동을 미술운동 차원에서 ‘전위’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들의 비정형회화는 미술사의 맥락에서 서구미술의 ‘후위’이자 하나의 Post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한번 힘주어 말하는 바이지만, 이런 경우의 ‘후위’와 ‘Post현상’은 모방과 수용의 맥락에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절충과 혼성화의 맥락에서 분석되고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더 확대해서 말한다면, 현대미술 자체가 이러한 자극과 절충에 의한 혼성미술인 것이며, 이것이 또 다른 결과-새로운 미술적 대안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적 동기가 되어 왔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영나의 글은 현대미술과 한국미술의 문맥 양쪽에서 모두 그 궤도를 이탈해 있다. 뿐만 아니라 조사와 연구, 분석과 가치부여 작업의 모든 면에서 놀라울 만큼 일천하고, 무책임하며 몰가치하다. 미술사도 하나의 역사를 다루는 학문임에 틀림이 없고, 이것이 지닌 나름의 학문적 가치와 비중이 있다면, 그에 값하는 학문적 체계와 과학으로서의 원리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김영나가 미술사라는 학문을 전공한, 국민들의 세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국립대학에서 적지 않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로 알고 있고, 그런 만큼 기초적인 소양과 최소한의 윤리성 정도는 갖추고 있으리라는 점은 물론이거니와, 지명도 높은 학자로서의 탁월한 전문성을 기대하고 『20세기의 한국미술』을 구입해서 보았다. 그러나 정작 김영나는 연구대상 설정의 당위성을 뒷받침할 학문적 준거도 제시하지 않고, 연구의 기본적인 원리와 방법 및 진술의 절차도 따르지 않음으로써, 미술사의 학문적 과학성과 중립성 자체를 모두 의심스럽게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많은 예술가들과 애호가들이 김영나의 위상을 국립 미술대학의 교수이자 미술사가라는 학자로 존중하고 있는 한, 이런 진술들이 미술과 미술문화에 끼치는 영향도 적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술사가에 의한 평가는 곧 그 시대의 미술전반은 물론, 당대 예술가들의 자존심과도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이런 어불성설이 책이 되어 버젓이 서점에서 팔려 나가고, 적지 않은 학생들이 이 책을 보고 한국의 현대미술을 엉뚱하게 곡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뻔한데, 이에 관한 논란은 고사하고 문제제기조차 없을 만큼 이 나라 비평계와 미술사학계의 전문역량과 윤리적 불감증은 심각한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한발 더 나아가 이런 책을 문화관광부의 학술분야 추천도서로 선정하여 정부기관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수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을 오도하고 있으며, 미술이론가상까지 주어 가치와 본말을 동시에 전도시켜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미술평론가요 미술사가라는 탈을 뒤집어 쓰고, 실로 뻔뻔스럽고 가증스러운 짓거리들을 서슴없이 벌리고 다니고 있으니, 우리는 지금 얼마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이런 처지에 전문인으로서의 역량은커녕, 마땅히 해야 할 일들에 관한 문제의식과 윤리성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위인들이 일말의 반성도 없이 뻔뻔스럽게 학자연하고 다니며 “한국미술에 뭐 볼 게 있느냐?”고 깐죽대어 왔다는 사실에 낯짝을 주먹으로 후려갈기고 싶은 분노를 느낀다.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위인들이기에 그동안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아 왔지만, 이제 그들 모두가 예외 없이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만 할 것이다.
『20세기의 한국미술』이라는 책 속에 실린 김영나의 글은 이후에도 이런저런 심각한 문제들로 점철되어 있으나,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를 느끼지 못한다. 물론 이 글이 발단이 되어 본격적인 논쟁으로 발전된다면, 얼마든지 최선을 다해 더 깊이 파고들어 문제를 파헤치며 성실하게 임할 용의가 있다. 또 이런 문제가 김영나에게서만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다른 미술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의 글도 대동소이한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으나, 이런 경우에도 ‘선택’과 ‘집중’ 그리고 순서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김영나는 이 책의 지은이 소개에서 밝히고 있듯이 학문적으로도 선진국가라는 미국에서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덕성여대와 서울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 낸 이른바 한국미술계의 ‘메이저리티’가 아닌가?
그런 만큼 나는 그녀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런 맥락에서 나의 ‘선택’과 ‘집중’은 이 비판이 가져 올 미술계 안팎의 파장을 염두에 둔 판단이었음을 솔직하게 밝혀 둔다. 아울러 내가 듣고 있는 한 김영나는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있어 상대적으로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으며, 나와도 아무런 개인적인 사감이 없다는 점에서 이 느닷없는 비판으로 그녀가 안게 될 충격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하지만, 이 책의 모두에서 밝힌 바 있듯, 이것은 전적으로 나에 의한 일방적인 선전포고이므로, 이 비판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김영나에게는 충분한 반박의 기회가 있을 것이고, 그런 만큼 나는 그녀의 적극적인 반론을 기대하고 있다. 나의 선제공격은 이것을 계기로 시작될 논쟁이 한국미술과 비평 및 미술사학의 질적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리라는 기대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주
1) 김영나, 『20세기의 한국미술』, 도서출판 예경, 2001, p.8, 참조.
2) 앞의 책, p.318, 참조.
3) 같은 책의 같은 쪽 참조
4) 같은 책, pp.318-320, 참조.
5) 앞의 책, pp.186-187.
6) 앞의 책, p.187.
7) 앞의 책, p.18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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