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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연구 - 이승택의 <바람: 1967- >

이승책, 바람, 1971

<바람>은 나뭇가지나 허공에 붉거나 흰 천 조각들을 매달아 놓는 것이 전부인 단순한 작업이다. 작가 자신이 풍어제1)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말했듯, 바람에 날리는 조각 천들은 행사 때마다 흔히 마주치는 깃발들이나 성황당의 천 조각들과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도 유독 이승택의 <바람>이 '예술작품'으로 간주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바람>의 예술적 가치는 펄럭이는 깃발들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장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장면'의 바깥, 혹은 그 뒤에 숨겨져 있다.
<바람>은 엄격한 의미에서 제작된 작품도 아니다. 작가는 그리거나 빚어 만드는 제작대신 아이디어와 최소한의 노동만을 제공하고, 정작 아름다운 장면은 바람과 시간에 맡겨 놓은 채 이내 감상자의 위치로 돌아가 버린다.
또한 작가는 자연현상 이외의 어떤 표상화의 의지나 의미 그리고 개념화의 목적을 배제함으로써, 근대적 작가의식과 예술의 존재방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동시에 감상자의 독립적인 지성과 감성을 극대화시킨다.


그리고 이것은 주목해야만 할 중요한 미술의 변화이다. 미니멀리스트들이 한사코 벗겨내려 했던 <모나리자>의 미소, 그 근대예술의 아우라aura가 바로 자연의 힘에 의해 힘차게 펄럭이는 사물object의 차원에서, 그것도 감상자의 가슴속에서 전혀 새로운 형태로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에서는 비판적 순수성이나 강박적 윤리의식을 느낄 수 없다. 그보다는 우리의 감성을 자연 속에 동화시키는 의식의 가뿐함과 예술을 향한 피보다 붉은 열정을 느끼게 한다. <바람>으로부터 풍어제와 성황당2)의 경험을 떠올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감상자의 몫이며, 작가와 감상자는 제작과 감상이라는 각각의 '예술작업' 속에서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의 참조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침묵함으로써 더욱 웅변적이고, 그리지 않음으로써 더 아름다우며, 개념적이지 않기에 마음으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非물질화'의 원리. 나는 이것을 지혜로운 한 동양작가에 의해 제시된 독특한 과정예술Process Art로 보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 근·현대사의 문화적 스펙트럼 속을 헤쳐 나온 이 작가의 역사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각주

1) 풍어제豊漁祭: 어촌에서 어민의 무사함과 풍어豊漁, 마을의 안녕을 비는 굿. 그 문학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 성황당: 마을의 터를 지켜 준다고 믿는 서낭신을 모신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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