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연구 - 김구림의 「현상에서 흔적으로, 1970」
김구림, 현상에서 흔적으로, 얼음+트레이싱 페이퍼, 1970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II 재현 출품작, 2001
김구림의 「현상에서 흔적으로」1)는 세 개의 붉은 색 용기 안에 크기가 다른 세 덩어리의 얼음을 넣고 각 얼음들의 윗면에 트레이싱 페이퍼를 같은 크기로 잘라 올려놓은 채 전시장에 설치하여,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증발되어 사라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세 덩어리의 얼음들은 각각 다른 속도와 형태로 허물어져 녹아 없어졌고, 그 윗면의 크기를 짐작하게 하는 트레이싱 페이퍼들만 물위에 떠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얼음이 녹은 물마저 다 증발하게 되면 용기의 바닥에 제멋대로 남아 그 흔적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얼음이 녹는 것은 물질 자체의 속성이고, 얼음이 녹은 물이 증발하는 것 역시 자연현상이므로 얼음이라는 오브제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존재와 변질, 그리고 소멸해 가는 부재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기에 적절한 매체이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음이 녹는 현상이 아니라 이 현상을 작품으로 제시하는 작가의 의도에 관한 몇 가지 의문들과 그 사이에 자리잡는 미묘한 감정들이다. 죽음과 매순간 직면해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우리는 소멸에 관한 한 언제나 특별한 감정을 갖게 마련이며, 사라져 가는 과정은 당연하게 이해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에의 집착을 갖게 한다. 이런 점에서 「현상에서 흔적으로」는 존재와 부재에 관한 격렬한 감정의 충돌과 존재가 사라진 흔적에 대한 끝없는 연민을 갖게 만드는 개념적이지만 사색적인 작품이다.
「현상에서 흔적으로」는 물론 고체상태의 얼음에서 액체상태의 물로, 다시 기체상태인 수증기로 증발하는 물질의 속성과 이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과 온도, 그리고 이 과정을 지켜보거나 최소한 연상하는 감상을 전제조건으로 성립한다. 그러나 사실 작가가 이 현상을 제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이디어 차원의 일이고, 또한 이런 현상들은 일상 속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므로, 이런 현상의 제시가 어떻게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얼음이 녹는 조건과 상황을 선택하고 제시하는 것만으로 제작의 개념을 한정시킴으로써 그 변질의 과정에 개입하지 않고도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변화, 즉 물질에서 비물질로, 혹은 존재로부터 부재로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이 현상은 미술관이라는 장소 속에서 이미 특별한 의미를 획득하고 있으며, 관람자는 작가의 '표현' 대신 순수한 '현상의 변화'를 목격하고 그 의도를 생각하는 감상활동을 통해 이 작업의 성립에 개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김구림의 「현상에서 흔적으로」에서는 얼음만 소멸된 것이 아니다. 그는 얼음이라는 구체적 사물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현상적 조건 속에 포함시킴으로써 녹여 없앴지만, 이러한 현상을 작업에 도입함으로써 예술작품을 제작한다는 전통적 개념과 예술작품이라는 결과물을 동시에 완전히 소거해 버린 것이다. 때문에 흔적으로 남아있는 붉은 색의 용기들과 트레이싱 페이퍼는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그 위에 얹혀진 먼지처럼 풍화되어 퇴색한 사물의 외연으로만 존재한다. 이것은 뒤샹이 '변기'라는 사물로부터 '변기라는 개념'만을 취함으로써 사물의 존재를 남겨 놓고 있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2)
그러나 나는 이 작업이 작품이라는 결과물을 제거함으로써 감상이라는 활동을 작품의 제작과정에 더욱 깊이 개입시키고, 나아가 작품으로 성립하는 일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도록 만듦으로써, 예술작품이 작가와 감상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개념 속에 존재하도록 하여, 그 개념적 소통의 운동을 통해 어떤 미적 감흥을 전달하고 자각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작가와 현상의 관계와 그 현상과 관람자의 관계가 그려내는 삼각구도 안에서 아이디어와 원리간의 관계가 성립하고, 그 사이엔 '의도'와 그 '개념'에 관한 일련의 사색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방법론은 예술의 본질을 묻고 그 새로운 존재방식을 탐구하는 아방가르드 미술의 전형적인 형태, 그러니까 '개념적 언어'로서 충분한 소통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지점에 이르러 얼음과 함께 개념 속으로 사라져 버린 「현상에서 흔적으로」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그에게 있어 이제 작품이라는 결과물은 더 이상 남아서 존재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2001년 10월 13일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II』의 세미나 <6,70년대 미술운동의 비평적 재조명>의 발제문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각주1) 1970년 5월 1일부터 7일까지 중앙공보관에서 있었던 AG 1회전에 출품각주
2) 사실 '샘'에서의 사물로서의 변기는 뒤샹의 뻔뻔스러움을 한층 더 부추기고 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