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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들이여 내 칼을 받아라 # No. 1
-김홍희의 『한국화단과 현대미술』
졸저, 비평가들이여 내 칼을 받아라, ICAS, 2005
미술사를 전공했고, 홍익대학교의 우대 겸임교수와 광주비엔날레 및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를 역임했으며, 현재 쌈지스페이스 관장이자 이번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이기도 한 미술평론가 김홍희는 2003년 『한국화단과 현대미술』을 출간한 바 있다.
그녀는 이 책에 실린 「한국 현대미술의 전환」이라는 글에서 한국현대미술의 발전과정을 1945년의 해방과 1950년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하여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전반기를 “서양미술의 도입과 수용의 단계”로 보고, 후반기를 “서양미술의 실험과 정착이 이루어진 시대로 이때에야 비로소 한국현대미술의 골격이 형성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김홍희는 “20세기 후반의 한국미술은 크게 세 차례의 전환점을 축으로 변증법적 발전의 역사를 전개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첫 번째 전환점을 “1950년대 말에 일어난 앵포르멜 운동”으로, 두 번째를 “1980년대를 뒤흔든 민중미술운동”, 세 번째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도입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파와 미술의 국제화운동”으로 각각 설정한다. 김홍희가 말하는 변증법적 발전이 의미하는 바는 “앵포르멜 운동이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발전과 정착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민중미술은 그에 대한 비판과 도전이었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상반된 이즘들을 화해로 공존시키는 통합적 국면이라고 볼 수 있다”는 대목에서 확인되고 있다.1)
모름지기 백인백색이라! 세상은 서로 모습이 다르듯 생각이 다르고, 취향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차이’를 드러내며 살아가는 곳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나란히 달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듯, 형태와 색채도 각각 조금씩 다르게 보고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이’는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차이’란 서로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고 가치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차이’가 중요하다. 모두가 같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나는 김홍희의 책을 읽으며 한국의 현대미술 문맥에 관한 이해의 ‘차이’가 매우 크다고 생각했고, 그 ‘차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것도 일종의 ‘대화’일 수 있으리라.
김홍희의 시각은 크게 보아 기존의 미술평론가들이나 미술사가들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저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고 있고, 후반기 미술을 앵포르멜로부터 1970년대 미술까지의 모더니즘 미술, 1980년대 민중미술,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나누고 있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현대미술의 문맥을 모더니즘, 민중미술,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나누고 있는 분류의 형태와 용어 그리고 1988년의 서울올림픽을 한국현대미술의 분기점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커다란 이질감을 느낄 뿐이다.
물론 그것은 김홍희의 관점일 뿐이다. 그리고 김홍희의 이런 분류가 미술계에서, 비평계에서, 미술사학계에서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로선 이 내용들이 그저 생경하기만 하다.
나는 문화나 예술이 ‘발전’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한국의 현대미술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해 왔다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철학에서도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변증법’을 미술이라는 문화현상에 적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비교적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문제일 것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한 인식의 차이는 쉽게 검증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미리 밝혀 두지만, 나는 ‘그럴듯한’ 것들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런 것’과 엄연히 구별되어야 할 가치로, ‘그런 것’에 가까이 가려는 사람들을 종종 혼란에 빠뜨리는 유사개념이기 때문이다. 또 문화나 예술에 있어서의 ‘발전’이라는 용어개념 사용의 적절성과 ‘변증법’에 관한 이해는 전문서적들의 도움을 받는게 좋겠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의 미술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은 미술을 좀 이상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미술과 미술운동을 혼동하고, 미술의 유파와 미술운동 그룹을 헷갈려 하는가 하면, 미술을 이데올로기나 양식의 문제 정도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술의 가치는 다수에 의해 공유되고 추구됨으로써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개인의 의식과 감수성에 의해 시작되어, 원리와 방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문화적으로 공유되는 것이다. 세계의 어떤 미술사에도 미술단체의 운동이 미술사가 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그 경우도 미술운동 자체가 아니라 미술운동의 미학적 가치를 판단하여 ‘선택’하고 ‘집중’한 결과일 뿐이다. 《다다》가 그 한 예이다. 말이 길어지지만, 이데올로기와 미술은 같은 것을 지향해도 다른 것이다. 미니멀리즘과 미니멀 아트의 차이라고 하면 적절한 설명이 될까?
김홍희가 1950년대 말의 미술을 “앵포르멜 운동”으로 특징짓고, 1980년대 미술을 “민중미술운동”, 1988년 이후의 미술을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전파와 “국제화운동”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김홍희는 ‘운동’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운동’으로 미술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점이 내가 첫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문제점이다. 김홍희를 비롯한 적지 않은 미술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이 유감스럽게도 미학적 문제제기와 미술운동, 그리고 ‘유파’와 ‘그룹’을 종종 혼동하고 있으나, 이는 각각 다른 차원에서 해석하고 연구해야 할 문제들이다. 미술운동으로 당시의 미술계 상황을 부분적으로 바꿀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정작 미학은 다수가 동의했다고 해서 극복되거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미술은 다수가 운동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개인의 미학적 성취를 통해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운동’이 곧 ‘미술’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두 번째 문제는 김홍희가 말하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이 용어들은 넓게는 문명사 전반으로부터 문예사조 일반 그리고 미술과 건축, 심지어 패션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한 개념망을 가지고 사용된다. 미술만 해도 그린버그가 말하는 모더니즘을 위시로 하여 여러 형태의 모더니즘이 다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모두는 서구의 문맥, 그러니까 그들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구축되고 사용되어 온 개념들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이고 ‘맥락적’이다. 다시 말해서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환경이 다른 우리 미술 문맥에 그 중 어떤 개념을 어떤 맥락에서 가져다 쓰고 있는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어떤 모더니즘 책을 읽으며 공감하고, 어느 모더니즘 미술에 공명하여 그 스타일을 차용하면 한국의 모더니스트가 되는 것인가? 모더니즘의 역사적 배경과 비판적 맥락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가?
사실 이런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상황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미술평론가나 미술사가들이 개념망이 극히 광범위하여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용어들을, 개념범위도 제시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저자에게 이런 식의 기초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셋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김홍희의 ‘선택’과 ‘집중’의 논거가 무엇인지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미술사라는 것이 ‘김홍희가 그렇게 보면 그런 것’이 아닐 텐데, 왜 그렇게 보는지도 해명해야 할 것 아닌가? 바꾸어 말해서 김홍희의 ‘선택’과 ‘집중’에 의해 배제되고 ‘소외’된 미술이 ‘김홍희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 아니라면, 그 논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주장들과 함께 제시되었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설사 그것이 다른 이론가들의 ‘선택’과 ‘집중’의 경우와 꼭 같아서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누구의 입장과 ‘꼭 같다’라는 말 정도는 해 주어야 이런 소모적인 일들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사실 깊이 따지고 들어가려면 한이 없을 테니, 차차 논의하기로 하고 우선 아쉬운 대로 앵포르멜 운동이 어떤 맥락에서 “후반기” 미술의 “첫 번째 전환점”이라고 주장하는 것인지를 살펴보자. 김홍희는 이 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앵포르멜 미술은 말하자면 반국전 운동, 반형상 운동에 뿌리를 두고 당시로서는 화단의 기존 가치에 대한 도전으로 등장한 미학적 미술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그것을 단순히 외래사조의 일방적 수용으로만 여길 수 없는 당위를 찾을 수 있다. 앵포르멜 작가들은 10년 전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나 프랑스의 앵포르멜로 시작된 시대적 서구사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우리의 반형상화 요구에 의해 선택하고 그것을 우리의 정서에 맞추어 변형시킴으로써 한국 추상미술의 정립을 가능케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2)
이것은 앞에서 내가 김홍희에게 요구하고 있는 ‘선택’과 ‘집중’의 논거에 해당할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 내용들이 김홍희의 ‘선택’과 ‘집중’을 해명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선 앵포르멜 미술과 반국전 운동의 관계설정이 지닌 문제들 때문이다. 말하자면 앵포르멜은 미술양식과 이데올로기의 양면을 가지고 있고, 반국전으로서의 성격은 당시 화단의 상황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에서 각각 다른 맥락으로 이해하고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므로,
첫째, 앵포르멜이 반국전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이 미술과 운동간의 미학적 연계를 먼저 규명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반국전 운동은 국전세력들의 권위와 부패에 대한 신진세대들의 반발과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운동사적 의미를 갖지만, 그들이 내세운 앵포르멜이 반국전 운동에 합당한 미학적 기반을 제공했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별개의 미학적․미술사적 연구과제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에 관한 김홍희의 연구내용을 제시하라는 것이며, 앵포르멜과 국전의 아카데미즘 사이에 어떤 미학적 대응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인지를 설명해 보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김홍희가 생각하는 “미학적 미술운동”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당시 작가들이 앵포르멜을 추구했다는 정도의 피상적인 내용들의 과장인가, 아니면 이들에게 국전의 아카데미즘 미학에 대응하는 특별한 미학이 구체적으로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 내용을 제시하라.
둘째, “우리의 반형상화 요구”란 무엇을 두고 말하는 것인가? 반형상화란 ‘추상화’를 말하는 것인가? 흔히 주변에서 추상과 비구상, 반형상 등의 용어들을 구별 없이 혼용하고 있지만, 이 개념들은 각각 성격과 맥락이 다른 개념들이다. 추상과 반형상, 비구상 같은 개념과 문맥이 다른 용어들의 혼용을 지적하고 명쾌하게 규명해야 할 미술평론가나 미술사가들이 기초적인 개념들도 구별하지 못하고 맥락에 닿지도 않는 용어를 써서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면, 그 자체가 참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김홍희는 무엇을 근거로 반형상화가 요구되었다고 말하는 것인가? 당시 작가들이 추상미술을 지향했다는 사실을 그것이 요구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미술사의 해석에 있어 실로 중요한 차이를 발생시킨다. 당시의 작가들은 현대미술의 이해와 참여라는 모색의 단계에서 추상에 관심을 가졌을 뿐, 이것을 추상이 요구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한국의 현대미술 문맥을 완전히 다르게 왜곡․변색시키는 중대한 비평적․미술사적 오류가 되는 것이다. 김홍희는 “우리의 반형상화 요구”라는 주장에 값하는 내적 필연성과 문맥상의 당위성을 밝히라.
셋째, 김홍희는 앵포르멜 미술이 우리의 반형상화 요구에 의해 “선택”되고 정서에 맞게 “변형”되었다고 했고, 민중미술을 “한국 초유의 자생적 미술”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시기의 미술을 둘러싼 박서보의 ‘자생론’ 주장과 70년대 단색조 미술을 둘러싼 일련의 ‘자생론’ 논의들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 물론 나역시 이들의 자생론 주장을 비판해 왔지만, 문제는 주장에 대한 ‘공감’ 혹은 ‘부정’이라는 심정적 결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쟁점 자체에 관한 비평적 논증에 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의 미술계를 쥐락펴락해 올 만큼 미술계와 비평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박서보가 주장한 ‘앵포르멜의 자생론’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피식 웃고 지나갈 수도 있었을 이 어이없는 주장을 다수의 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이 강조하고 옹호함으로써 피할 수 없는 쟁점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즉 이것은 자생론 자체의 사실 여부를 가리는 일과 더불어, 이 주장을 강조하고 옹호해 온 미술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의 한국현대미술사 전반에 걸친 어설픈 기획의 정치학들과 그들에 의해 진술되어 온 한국현미술 문맥 전반에 걸친 비평적․미술사적 진술들의 진정성reality을 밝힐 수 있는 핵심적인 쟁점이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홍희는 이런 문제들을 “우리의 반형상화 요구에 의해 선택되고 정서에 맞게 변형되었다”는 정도로 박서보와 자생론 옹호자들을 달래 놓고, 민중미술을 “한국 초유의 자생적 미술”로 규정하는 식으로 구렁이 담 넘듯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이 쟁점에 관한 입장과 논거를 구체적으로 밝혀, 자신의 주장을 논증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노력과 부담도 없이 한 시대의 미술을 비평하고 규정하겠다는 것인가? 김홍희는 미술비평이 무슨 애들 장난인줄 알고 있나?
넷째, 당시의 미술이 단지 서구의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를 “선택”하고 “변형”시킨 결과라면, 그렇게 정초된 한국의 추상미술은 그 뿌리를 서구의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이 점은 김홍희가 앵포르멜 이전의 미술을 “일본을 통해 수입된 뒤늦은 아카데미즘 화풍과 인상주의 계열의 형상화”라고 말하는 대목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도입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파와 미술의 국제화운동”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확인되고 있는 ‘수입’ 내지는 ‘도입’, ‘전파’의 맥락과 관련지어진다. 다시 묻건대, 김홍희는 민중미술을 제외한 한국현대미술의 맥락을 서양미술의 수용 또는 변형문화라고 말하는 것인가?
한편 “두 번째 전환점”은 “민중미술운동”이었는데, 김홍희는 이 미술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민중미술은 미술 분야에서 최초의 의식화운동이었다는 점, 한국 초유의 자생적 미술이라는 점, 또한 평론가들이 주도한 본격적인 미술운동이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3)
한 시대의 미술현상과 미술사적 평가 사이에는 미술로서의 가치판단과 그에 따른 역사성의 부여라는 과정상의 중요한 문제들이 가로 놓여 있다. 적지 않은 이론가들이 한국의 1980년대 미술을 ‘민중미술’로 특징짓고 있으나, 그러한 ‘선택’과 ‘집중’에 값하는 비평적 논거의 제시와 미술로서의 가치판단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평가’일 수가 없다. 민중미술은 아직도 동시대의 다른 미술들과 함께 단지 한 시대의 미술현상 중의 하나로 남아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고 끼리끼리 논의했다고 그 미술이 역사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역사상의 어떤 미술사가 머릿수를 대변하고 있는가? 1980년대에는 ‘민중미술’ 말고도 다양한 미술현상들이 있었고, 그러한 동시대적 양상의 실체가 무엇이고 그런 양상들이 각각 무엇을 지향하고 의미했으며 성취했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일이 바로 비평가들과 미술사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김홍희는 이런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바가 없다는 사실에 유념했어야만 했다. 다시 말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근거도 없이 평가를 하고 있다는 말이며, 그러한 평가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의 역사를 통해 드러난 미술현상들만을 보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역사에 의해 소거된 공백들이 존재하고, 그 공백에는 다수의 사이비 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의 말 같지 않는 논리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미술운동은 미술사가 아니며, 미술사가 될 수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미술이 당대의 미술사가 된다면, 아마 전 세계의 미술사들이 다 다시 써져야만 할 것이다.
실로 답답한 ‘우물 안의 기형 개구리들’이 아닌가?
나는 지난 6년간의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를 통해서도 ‘민중미술’을 다루지 않았고, 그에 관한 한 지금껏 일관되게 침묵을 지켜 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보’일 뿐이다. 1980년대의 민중미술은 내게 아직 끝난 미술운동이 아니다. 그 주체들이 다른 캐치프레이즈를 내어 걸고 다른 말들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 한 그것은 변형이고 연장일 뿐이며 아직 진행 중인 역사인 것이다. 때문에 이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는 적절한 때 적절한 방법으로 그리고 전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1980년대 미술을 민중미술로 특징지어 평가해 왔던 이론가들과 당사자들은 그때를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따라서 김홍희가 ‘민중미술’을 의식화운동이었다고 평가하고, 평론가들이 주도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의 관심사도 아니려니와 궁극적으로 그 내용들은 김홍희와 마주앉아 나눌 얘기도 아니다.
다만, 나는 김홍희가 그 미술을 “한국 초유의 자생적 미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부분에 관해서 관심이 있을 뿐이다. 김홍희는 앞서 한국의 현대미술 맥락 전반을 서구미술의 ‘수용’ 및 ‘도입’ 또는 ‘전파’ 등의 맥락에서 설명했고, 그런 만큼 “한국 초유의 자생적 미술”이라고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대단히 궁금한 것이다. 김홍희가 말하는 ‘자생성’은 어떤 것인가? 미리 말해 두지만, 이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므로 신중하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김홍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파와 미술의 국제화운동”이라는 생경한 주장을 내세워, 이것을 후반기 한국미술의 “세 번째 전환점”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는 앞서 모더니즘에 대한 질문과 똑같은 맥락의 질문들이 있다.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이 그 질문을 참조해 대신하기로 하고, 포괄적인 사항들만 검토하기로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문화현상이라는 맥락에 국한시켜 본다면, 우리 사회에는 서구의 계몽주의 이전 단계의 가치관과 생활방식, 모더니즘 단계의 산업들과 시스템들, 그리고 혹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특징으로 제시해 온 정보화 내지는 서비스 산업 등이 혼재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서구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정보화 내지는 서비스 산업과 그것의 시스템적 확장은 경제 및 과학 분야의 원리로 더 잘 설명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런 측면에서 이런 현상을 ‘전파’라는 개념으로 말할 수도 없다. 다만 문화현상으로서의 그것은 최신 스타일로서의 유행이나 선진지식의 일부가 소개되는 상황을 지칭한다는 측면에서 부분적으로는 납득이 된다.
그러나 미술과 사회학의 새로운 스타일과 이론들이 일부 소개되었고, 그래서 그것을 추종하는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몇 있다고 한국의 미술계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파’를 받아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은 논리적으로도 대단히 놀라운 비약이지만, 미술평론가로서나 미술사 전공자로서도 확실하게 재검증을 받아야만 할 심각한 문제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는 대목이다.
우선 나는 이 지점에서 김홍희가 미술을 유행하는 스타일 정도로 이해하고, 미술비평 및 사회학을 유치한 수준의 ‘번역’ 정도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김홍희가 말하는 ‘미술운동’도 실은 미술운동이 아니라 그 운동들로 인해 빚어진 ‘상황’ 내지는 ‘현상’을 표피적으로 기술하고 있을 뿐임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운동’과 그것으로 인해 나타나는 미술현상 사이에도 실로 중요한 문제들이 가로 놓여 있고 김홍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미술운동에 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김홍희는 자신이 그토록 내세우는 ‘미술운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홍희가 말하는 한국미술의 포스트모더니즘 상황이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의 “상반된 이즘들을 화해로 공존시키는 통합적 국면”이라고 했는데,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이 어떤 맥락에서 상반된 이즘이라는 것인가? 그리고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을 화해로 공존시키는 통합적 국면이 대체 어떤 국면이라는 말인가? 덧붙여, 쓸데없는 논란을 줄이기 위해 몇 마디 덧붙인다. ‘이즘’은 미술의 ‘양상’이나 ‘현상’과 다른 차원의 이데올로기이고, ‘화해’와 ‘공존’ 그리고 ‘통합’은 ‘양상’이나 ‘현상’을 일컫는 말인 만큼, 주변에서 쉽게 목격되고 체감되는 일이므로 매우 분명하게 구별해서 대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김홍희는 한국미술의 문맥을 서양미술의 ‘도입’과 ‘수용’ 또는 ‘전파’라는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하는 바이지만, 그것은 김홍희의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김홍희 개인이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고 있든 전혀 관심이 없다. 다만, 미술평론가로서의 김홍희가 책을 쓰고, 그것이 미술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한, 그리고 그런 내용들이 비평계와 미술사학계에서의 자체적 논란을 통해 정리되지 않는 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더 이상 방치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물론 ‘도입’과 ‘수용’ 또는 ‘전파’라는 말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 그러나 미술평론가나 미술사가가 한 나라의 미술 문맥 전반에 걸쳐 그런 용어들을 평가의 맥락에서 사용했을 때에는, 신중했어야만 할 어휘의 선택 문제로 발전하게 되고, 그것이 자신의 전문역량 및 소양을 스스로 의심하게 하는 심각한 국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보나 지식을 ‘도입’ 혹은 ‘수용’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이념과 신앙을 전파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화와 예술에 있어서의 ‘도입’과 ‘수용’, ‘전파’란 설득력도 없고 상식적으로도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다.
누차 언급해 왔듯, 문화나 예술은 지역적 특징을 나타내지만 그 어디에서도 원전성originality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미술 문맥에서는 더 이상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도 않는다. 문화와 예술은 어떤 개인들이나 소집단으로부터 시작되어 공유됨으로써 드러나는 것이자, 유목성을 타고 번지며 때론 충격과 혼란 그리고 갈등과 절충의 과정을 거쳐 지역적 특성으로 자리잡아 온 것들이다. 이 점은 특히 현대미술의 문맥 속에서 누누이 강조되어 온 문제들이었다. 한마디로 참조되지 않고 제작된 작품이 어디 있고, 참조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미술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예컨대 서양미술은 어떤가? 다비드는 이탈리아 미술의 영향을 받았고, 모네는 일본 판화에서, 피카소는 아프리카 흑인 조각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들의 미술은 각각 이탈리아에서 ‘도입’되고 일본으로부터 ‘수용’되었으며, 아프리카로부터 ‘전파’된 수용미학인 것인가? 뒤샹은 프랑스 사람이었고, 반 고흐는 네덜란드 사람이었으며, 말레비치는 러시아 사람이었다. 인종도 다르고 문화적 배경도 다르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김홍희는 서양의 미술가들이 서로 주고받아 온 영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프랑스 사람인 세잔이 스페인 사람인 피카소의 ‘미술사적 아버지’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사실 이것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내가 더 우스꽝스러울 만큼 이상한 상황이지만, 이것도 피할 수 없는 우리 미술계의 지적 환경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 더 한심한 일은 한국의 미술을 ‘도입’과 ‘수용’, ‘전파’의 맥락에서 평가하고 있는 김홍희의 비평적 이해 자체가 서구미술로부터 ‘도입’과 ‘수용’, ‘전파’된 틀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눈으로 보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누워서 침뱉기’라고 하는 것이다.
그동안 공부 꽤나 한 것처럼 우쭐대며, 툭하면 모던이 어쩌고 포스트모던이 어쩌고 하는 위인들을 적잖이 보아 왔고, 심지어 “I am a modernist!”라고 외치는 위인들도 보았다. 하도 유치해서 뭐라고 말할 게재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지 않겠는가 하고 기대하며 애써 시선을 돌려 왔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I am a postmodernist!” “I am a feminist!”까지 등장하는 판이니 갈수록 태산인 것이다. 원색적인 말로 하자면 진작에 ‘그저 닥치는 대로 깨뜨려 버렸어야 했던 일’이 아니었던가 싶다.
문제는 상당수의 자칭 문화지식인들이 심각한 서구중심주의의 폐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하염없이 바다 건너만 바라보며 소식 올 때만을 기다리는 섬 처녀처럼, 이 사람들은 스스로 보고 느끼며 생각하고 각성함으로써 깨우치려 하지 않고, 남의 책 먼저 들춰보기 경쟁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지적이라며 좋아들 하지만, 실로 웃기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안경끼면 지적 여성이 되는 것인 양 연기가 정형화된 TV 배우들처럼, 책 읽고 몇 글자 외우면 지식인이 되는 줄 아는가? 기왕 그럴 것이면 ‘독해’라도 좀 잘하고 김용옥이 말하는 ‘번역’의 개념이라도 좀 제대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미술이 뭔지, 비평이 뭔지, 미술사가 뭔지, 기본적인 조건과 원리 그리고 방법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글만 쓰면 비평가이고, 학위들만 받으면 학자라는 것인가?
보아하니 김홍희는 일종의 ‘국제병 환자’가 아닌가 싶다. ‘환자’라는 실례의 말을 하는 것은 김홍희가 말하는 ‘국제주의’ 혹은 ‘국제성’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국가간의 관계일 뿐이다. 그리고 그 관계는 상호간의 존재와 존재방식에 대한 주체적 인식과 힘의 균형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다. 문화정치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나 ‘국제성’을 들먹이는 것인가?
우리가 영어를 배우고 쓰는 까닭은 영어가 국제공용어여서가 아니다. 많은 나라들이 다른 언어권간의 소통을 위해 영어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 불편과 막대한 재원을 소비하면서 영어를 배우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실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손실일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도 한계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영어를 사용한다고 미국 사람들처럼 생각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 사람 집에 갔다고 그 사람들의 문화적 취향에 맞추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 상대에게 호감이 있다면 그를 위한 배려로써 그의 취향을 존중해 줄 수 있고, 그와 잘 지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 때문에 외교적 매너를 갖출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뉴욕이 현대미술의 중심지라고 말하는 것은 그곳에 큰 미술시장이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제도와 시스템들이 있으며, 그것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몰려든다는 말일 뿐이다. 가서 살아 보라.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미술제도 속에 깊숙이 들어가서 살면서 느껴 보라. 뉴욕은 그저 서울처럼 뉴욕일 뿐이다. 뉴욕의 미술계에서 인정을 받으면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 위인들이 있지만, 그것도 앞뒤 내용을 모르는 가소로운 얘기일 뿐이다.
지금 우리를 포함한 전세계가 당면한 제도적 폭력과 갈등의 문제들 중 상당수가 국가 혹은 문화권간의 심각할 만큼의 불균형한 역학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른바 문화정치학적 불균형은 강대국들의 패권주의와 약소국들의 패권주의를 저지할 역량의 부재 때문에 빚어진다. 또한 그것은 국가간의 관계를 ‘국제무대’라는 환상으로 오해하고 있는 ‘국제병 환자’들의 식민적 발상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서구의 지식과 정보를 소용하는 까닭이 그것을 통해 현재 우리 상태를 개선해 나아지기 위함에 있지, 그들에게 동화 내지는 동질화되어 가기 위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껏 국제적 찬사에 목을 매어 온 적지 않은 위인들을 보아 왔지만, 한결같이 정말 한심한 인간들뿐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역량 있는 작가를 길러낸 적도 없고, 검증을 해 본 적도 없다. 이 자체가 정말 부끄러운 일인데도, 이런 위인들은 그런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 국제적으로 발이 넓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 실속도 없이 남 좋은 일이나 시켜 주고 다니면서 말이다. 그런 일을 두고 정작 그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들 있는가? 그러면서도 그저 남들이, 일본의 누가 극찬을 했고, 헤럴드 제만이 좋다고 그랬으며, 비엔날레에서 상을 받았다는 것이 마치 무슨 보증수표나 되는 양 내세우며 기뻐 날뛰고들 있는 것이다. 칭찬을 좋아하는 순진함은 이해가 가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정말 자신들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그 결핍을 어떻게 해소해 가야 할 지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들이 없는 것 같으니 말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들 살아갈 것인가?
마지막으로 묻자. 1988년 서울올림픽이 왜 한국현대미술의 전환점이라는 말인가?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뭐가 어쨌다는 것인가? 유명한 사람들을 내세우면 꼼짝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아니면 미술을 사회현상쯤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김홍희는 백남준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백남준을 내세운다고 김홍희의 논리가 더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좀 생각했으면 싶다.
무엇보다 어이가 없는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의 미술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파와 미술의 국제화운동”으로 규정하고 있는 김홍희의 ‘의도’이다. 한 시대의 미술문화가 어떻게 일구어지는 것인지, 미술운동이 무엇인지, 나아가 구체적인 미술현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 주역들이 어느 정도의 역량을 가진 사람들인지조차도 분간을 못하는 사람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김홍희의 한국미술을 향한 비평적 경박성은 미술과 미술의 상황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지도 못하면서 부분적인 현상을 확대해석하여 과대포장하고, 그와 다른 동시대의 다양한 양상들을 임의로 축소하는 방식으로 특징짓고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기정사실화해 가려는 ‘의도’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지금까지 해 왔던 한국미술계 속에서의 활약(?)과 관련지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김홍희의 주장들은 자신의 취향과 지향을 정당화하기 위해 급조된 조악한 정치학의 소산일 뿐, 궁극적으로 비평도 미술사도 아니다. 김홍희는 이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생각하고 성취해 가고 있는 다양한 미술현상들을 이렇다 할 비평적 준거도 없이 ‘배제’해 놓고, 일부 포스트모던 추종자들의 트랜드 스타일에 지나지 않는 가치들을 미술의 중심에 올려 놓으며, 당대의 미술들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파와 미술의 국제화운동”으로 단순화하여 특징지음으로써, 수많은 예술가들의 성취들을 ‘소외’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나는 비록 한 사람의 작가에 지나지 않지만, 이런 식의 재단과 평가를 용인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현 단계 우리 미술의 상황 및 김홍희의 사회적 위상이 끼치는 영향 범위를 감안하여, 이런 주장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 둔다. 이 문제에 관한 나의 대응은 전면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개진될 터이지만, 그 내용들에는 김홍희의 미술평론가로서의 전문역량 및 기초적인 소양 그리고 조악한 정치학들을 치밀하게 검증하는 일이 포함될 것이다.
다시 한번 밝혀 두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내게 시작은 끝을 향한 무한대의 질주를 의미한다. 이 비판을 애써 외면하며 회피하고 싶겠지만, 그것도 상대를 보아 가며 판단해야 할 일이다. 이 비판의 회피는 곧 그로 인해 야기될 더욱 심각한 국면, 이를테면 가혹할 만큼 계속될 무차별적 융단폭격을 초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었기는 하지만, 나는 오랜 시간에 걸친 고민과 갈등 끝에 불특정 다수의 미술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고, 일단 전쟁이 시작된 이상 인정사정 보지 않고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할 것이다. 따라서 향후에 전개될 상황들로 인해 누가 어떤 상처를 입던,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떻게 되던 전혀 상관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현재 한국의 미술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이 행하는 방식이나 수준 따위로는 현대미술의 다양하고 첨예한 문제들을 결코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만큼 현재의 그들이 없다고 미술을 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나는 오히려 그들이 젊고 유능한 인재들의 앞길을 막고 있고, 그것이 한국미술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에게는 김홍희가 말하는 미술의 ‘발전’이 바로 이런 식의 무한경쟁과 격렬한 비판적 투쟁에 의해 얻어져야만 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각주
1) 김홍희, 「한국 현대미술의 전환」, 『한국화단과 현대미술』, 눈빛, 2003, p.15, 참조.
2) 앞의 책, p.16.
3) 앞의 책,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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