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오상길(작가,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기획자, 한원미술관 관장)
- 글에 들어서면서
과학과 인식론의 변화가 인류의 절대적 빈곤과 질병으로부터의 위협을 크게 감소시켰음에도, 어떤 사람들은 인간들의 삶이 궁극적으로 더 행복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변화의 부정적 측면들이 이 변화를 발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다다이스트들이 일찌감치 이 사실에 몸서리를 쳤고, 막스 베버도 도구적 합리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경고했듯, 현대인들의 지적, 물리적 환경은 이 시대의 삶을 끊임없는 개인적, 집단적 도전과 투쟁의 지평을 만들고 있다. 도대체 가치 있는 일이란 어떤 것이며, 무엇이 이 고뇌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줄 것인가?
예술적 가치의 절대적 평가 기준이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현대미술은 유동적이며 불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나 왔다. 때문에 우리는 현대미술에 관한 논의를 언제나 원점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꼬집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우리가 안고 있는 이 숙제가 더 난해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원치 않은 예술가들이 어디 있고, 그들로부터 사랑 받기 싫은 예술가들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사실 현대미술의 난해함은 예술가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예술가들을 통해 풀어가고 있는 어려운 시대적 과제인 것이다. 현대미술의 난해함이 대중들로부터의 소외를 자초하고 있는 요인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그 외연의 모습과 달리 윤리적이기 조차 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최소한 현대의 예술가들은 위대한 천재로 우상화된 과거 예술가의 모습을 거부하고 감상자들과 함께 새로운 미적 가치를 찾아 공유하고 소통하려 하기 때문이다. 스탠리 카벨의 지적을 빌지 않아도 ‘사기의 가능성’이 산재하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오류와 오독의 가능성 또한 넘쳐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그 ‘사기’와 ‘오류’, ‘오독’의 부정적 측면들이 현대미술의 난해함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속 시원히 문제를 해결하고 명료하게 규정지을 수 없는 어려움 때문에 생겨나는 난처한 또 하나의 숙제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것은 현대미술가들 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딱한 사정인 것이며,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현대미술의 동시대성이 각 국가나 민족, 사회의 역사적, 지역적 특수성을 넘어 이 시대가 안고 있는 인식론이 공유되거나, 되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제시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때문에 이것이 깊은 시대적 통찰을 필요로 하는 의식의 문제인 것이지, 쉽고 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양식이나 패션의 선택적 문제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한 우리 현대미술과 그 주변의 제도들은 이러한 맥락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거나 또는 인식해 오지 못했다. 우리 미술계에는 수많은 문제점들이 무수히 은폐된 채 산재해 있는 것이다. 때문에 20세기 세계미술사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한국의 근, 현대미술이 서양미술의 유입기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비록 외형적으로는 크게 팽창해 왔으나 이러한 시대적 인식론을 얼마나 공유해 왔는지를 다시 살펴보는 일이 비록 자극적이긴 하지만, 매우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은 과거의 일이지만 「역사」는 언제나 그 「역사」를 쓰는 시점에서 요구되는 바에 따라 선택되고 해석되어지는 ‘지금’, 그리고 ‘여기’의 문제인 것이며, 때문에 지혜로운 후손들의 「역사」는 박제된 「과거」의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조상들의 과거를 새롭게 읽음으로써 「과거의 사실」들로부터 새로움의 가치를 발현시키는 것이 된다.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과거에 대한 비판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지금의 새로운 쟁점과 이슈를 찾아내고, 그에 관한 활발한 논의를 전개함으로써 미술의 현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지금 우리’의 시대를 새롭게 구축하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현대미술 문화의 핵심은 시대적 과제에 관한 논의와 제안, 그리고 표현인 것이지 행사나 제도가 아니지 않은가?
그간 한국의 현대미술은 서구 미술의 수용이라는 차원에서 인식되어져 왔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 미술작품들과 이데올로기들을 서구 미술의 모방, 혹은 변용 정도로 읽고 해석해 온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비판적 해석들이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오류에 의한 오독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의 현대미술가들이 새로운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수용에 있어 열정적이었으나 그것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지혜롭게 극복할 만큼 총명하지는 못했고, 비평가들은 그 모양새를 잡고 내용을 설명하는 나름의 기능을 해 왔으나, 그 문화와 이데올로기들의 한계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만큼 날카롭지는 못했으며, 예술가들의 집단문화에서 파생된 독소들을 질타할 만큼 강직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그런 점에서 무기력했으나 지적으로 오만했다.
나의 이 비판은 우리의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을 향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나와 그들을 구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것을 우리 시대의 어려움과 아픔으로 생각하며,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좋던 싫던 한 배에 타고 있으며, 이 어려움을 맞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현대미술의 수용적 측면을 역사적 과정으로 생각한다. 마치 자동차와 전기가 우리 삶의 조건을 바꾸었듯 역사적 패배감과 전후의 폐허 속에서 새로운 문화에 대한 지적, 감성적 열망에 목마른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들여와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란 개인 혹은 소수로부터 시작되어 주변으로 확산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성격의 문화와 충돌하고 혼란을 겪으며, 절충되고 수용되면서 자리 잡아 가는 것이다. 마치 ‘댕기머리’와 ‘색동저고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누가 지금 이것 때문에 수용문화의 열등감으로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는가? 문화를 놓고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묻는 일은 언뜻 보기엔 매우 사변적이고 진지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넌센스한 비철학적 태도인 것이다.
‘정체성’이란 예술가들이나 비평가들이 고민할 일이 아니라 정치가들이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정체성’과 ‘지역주의’의 화두는 수용문화에 대한 강박적인 피해의식 때문이거나 세계화, 혹은 국제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급조된 옹색한 전략의 소치일 뿐이다. 왜냐하면 어떤 예술가의 개인적 ‘정체성’과 ‘지역성’에의 천착은 그 작가의 특성일 수 있지만, 집단적인 의식으로서의 그것은 필경 전략적 목적과 전술적 방법으로 구상된 극히 비철학적 인식이기 때문이다.
-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우리나라에서의 80년대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격변의 시기였으나, 미술계에서도 수용미학에 대한 비판적 반성에 따르는 대응논리와 방법의 모색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시기이기도 했다. 우리의 80년대 미술은 미술의 현실참여라는 중요한 움직임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는 일제 조선총독부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치러진 鮮展이 실제로는 일본인 심사위원들에 의해 패배주의적인 노스탤지어와 퇴행적 탐미주의로 유도되었으며, 해방 후 선전출신의 작가들이 국전의 심사를 맡음으로써 비판적 자각 없이 지속되어 온 맹점을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미술계는 곧 순수주의와 현실참여라는 거대집단 간의 극단적 대립구도 속에 빠져들었으며, 이 과정에서의 흑백논쟁은 당시 젊은 미술가들로 하여금 그러한 상황 자체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찾게 만들었다. 1981년 창립된 <타라>로부터 시작되어 1989년에 창립하고 1년 만에 해체된 <황금사과>에 이르기까지 내가 주목한 9개의 소그룹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의 현대미술 맥락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80년대 소그룹들의 활동에 대한 비평적 재조명을 통해 밝히려는 것은 역동적인 운동성에 있는 것이지, 기존의 엉터리 10년 주기설을 뒷받침하는 미술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비판하고자하는 전형적인 비평적 오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의 현대미술이 ‘미군의 군화 발에 묻어들어 온’ 앵포르멜로부터 시작하여 몇 개의 스타일 미술들을 통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맥락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식의 주장을 해 온 그간의 비평들과 입장을 달리 하고 있다. 그들의 비평적 맥락은 얼른 보아서 생산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결과에 있어 극히 소모적이고, 방법에 있어 기계적이고 역사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비평은 현대미술의 인식론적 배경을 ‘아르마니’ 패션 브랜드쯤으로 생각하고, 그 변증적 체계를 서구의 미술맥락에 맞추어 강제적으로 적용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예술과 문화를 해석함에 있어 상황논리와 그에 대한 사유가 결핍된 비평으로 역동적인 미술의 역사를 ‘수용'의 맥락으로 전락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오류인 것이다.
한순간도 머물 수 없고, 매순간 변태 해야만 하는 현대미술의 숙명적인 속성상, 언제나 그에 관한 비평적 방법론은 그 미술의 복잡한 상황적 배경과의 밀접한 관계를 함께 밝혀내 가야만 하는 것이며, 현대미술의 동시대성은 다원적이고 동시 다발적인 성질로 작용하고 해석되게 된다. 한국의 현대미술이 정보와 지식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서 그 결과까지 동일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며, 수용의 과정은 그 결과에 작용하는 동기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과 같은 제 3세계에서의 현대미술은 서구의 그것과 결코 동일한 성질의 것이 될 수 없으므로, 서구 미술맥락을 구성하는 일체의 요소들은 한국현대미술이라는 텍스트를 해석하기 위해 참조해야 할 또 하나의 텍스트일 뿐이다. 따라서 서구의 현대미술과의 ‘차이’, 즉 한국현대미술의 그 ‘이질적’인 측면들이 바로 한국현대미술 비평이 관심을 가지고 밝혀 나가야 할 과제였던 것이다. 이런 오류를 통해 앞서 언급한 비평들은 한국현대미술의 길을 열어 온 것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말해 끊임없이 단절시키고 폐쇄해 왔다고 까지 말할 수 있다.
- 80년대 소그룹 운동에 관한 비평적 재조명의 단서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기획되었으며 이 시대의 「역사」를 쓰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소그룹들의 활동은 어떤 측면에서 지금껏 연장되고 있는 진행형의 역사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 시대의 「역사」를 다시 써 나가기 위해 설정된 역추적의 방법 때문에 그 첫 번째 선택의 대상이 되었다.
80년대 소그룹 운동이 비평적으로 재조명되어야 할 이유는 물론 이 소그룹들의 활동에만 국한할 수 없는 현대미술에 관한 한국현대미술의 복합적 오독과 비평적 오류에 있으나, 이에 대한 접근의 단서로 몇 가지 쟁점들을 제시했다. 그 동안 한국의 현대미술사는 거대 집단세력의 역사를 중심으로 비판적 검증이 결여된 채 진술되어 왔기 때문에 온당한 미술의 역사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태도이며, 따라서 그간의 비평이 간과해 온 미술 현장의 상황논리와 그에 대한 비평적 해석이라는 두 가지 맥락을 설정함으로써 「다시 읽기」의 당위성을 제기하고 그 방법론을 새롭게 구축하고자 했다. 때문에 이번 기획의 목표는 작가들과 작품들에 대한 양식사적 평가가 아니라 80년대적 상황을 구성하는 소그룹들의 운동성과 그 결과로 만들어진 8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계의 상황적 변화였다.
80년대의 소그룹들을 통해 활동했던 작가들은 각기 다른 감성과 미학, 그리고 현실적 입장들을 가진 소위 거대집단 알레르기를 지닌 극히 개별적인 성향을 가진 작가들이었으며, 이들은 시대적․상황적 필요에 따라 이합집산하며 때론 강성발언을 통해 제도권 미술들을 비판하고, 때론 제도권과 자신들을 의도적으로 단절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시대적 의식을 분명히 했다. 이 작가들의 이러한 태도는 그들 이전의 선배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시대적 성향을 만들게 되며, 9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 양상의 모태가 되었다. 때문에 우리는 결과물로서의 미술작품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도 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과 그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운동성이 중요한 연구과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은 지금까지의 비평들의 관점과 달리 이들이 미학적으로 결코 통일될 수 없었던, 오히려 개별성이 강한 작가들이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획을 통해서는 주로 이 소그룹들의 운동성에 주목하고자 했으며, 구체적인 미학적 평가는 그 다음 단계에서 다시 철저하게 개별적인 작가의 단위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간의 비평이 오독해 온 중요한 오류의 또 하나를 경계하는 이런 접근 방법은 미술사에 있어 ‘유파’와 ‘운동’은 혼동해서는 안 될 엄연히 다른 성질의 개념이며, 현상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유파’는 통일된 이데올로기와 미학을 가진 집단의 정체된 개념을 갖는 반면, ‘운동’은 어떤 상황을 타개해 나아가기 위한 역동성을 본질로 삼는다는 말이다. ‘운동’을 하는 그룹들이 때때로 어떤 상황을 타개해 나아가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통일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나 이것은 전략적 측면에서 표방되는 외침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 때문에 ‘운동’의 성향을 곧바로 ‘유파’로 해석하는 일은 틀림없는 비약이 된다. 부연하자면, 이들을 하나의 ‘유파’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각 작가들의 개별적인 작업과 세계관, 방법론에 관한 면밀한 비판적 해석과 검증을 거쳤어야만 한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한 우리 나라 작가들에 대한 이런 방식의 접근은 있어 본 적이 없다. 만일 소그룹 운동의 작가들에 관한 개별적이고 면밀한 비판적 검증이 이루어진다면 그 과정에서 이들의 활동이 ‘유파’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른 성격의 것으로 판명될 것임을 나는 확신하고 있다.
한편 미술 ‘운동’은 뛰면서도 하지만 앉아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들은 80년대 소그룹운동이 주로 <난지도>나 <메타복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평가했으나 나는 그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비록 외형적으로 <난지도>와 <메타복스>가 격렬한 활동을 벌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역동성을 가능하게 했던 前後, 그리고 주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비판과 저항은 고함만이 아니라 침묵과 단절, 그리고 조용한 실천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82 현대회화> 그룹은 스스로 자신들의 목적달성에 실패했다고 선언하고 1984년에 해체되었으나 나는 그들의 활동이 결코 실패했다고 생각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 비판적인 해체를 통해서 그들의 시대적 고통을 우리가 함께 공유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내가 <메타복스> 해체전의 서문을 통해 쓰고 있는 그룹해체의 사유와 같은 맥락의 발언이기도 하다. 이 젊은 예술가들이 넘고자 했던 장벽은 사실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역사적 과제였던 것이며, 때문에 이 발언은 설사 무력함과 좌절의 아픈 정서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도 극복하고 있지 못한 현대미술의 본질적 속성 앞에 고통스러워하는 차라리 장렬한 모습이자, 젊은 예술가의 깨어있는 의식의 한 단면인 것이다.
흔히들 <로고스와 파토스>나 <레알리떼 서울> 역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들끼리의 모임이라는 점 때문에 이 그룹들의 비중을 매우 제한된 범위에 한정시키고 있으나, 정작 이들은 비평이 감당했어야 할 집단 이데올로기와 그 권력의 틀에 대한 나름의 도전과 대응을 해 왔던 靜中動의 운동성을 가지고 자신들의 시대에 대응해 왔다고 생각된다.
<타라>와 <3월의 서울>, <뮤지엄>과 <황금사과> 등 개체의 목소리와 그에 대한 탐닉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도전과 대응 역시, 제도권 미술의 중심담론에 비판적 관점을 대두시키는데 분명한 일조를 했다. 이들의 기성미술로부터의 이탈과 반발은 어떤 측면에서 게릴라식 전투와 닮았으며, <난지도>나 <메타복스>의 강성 투쟁과 더불어 당시의 미술계를 장악하고 있던 거대 집단 세력에 수많은 총탄 구멍을 냄으로써 서서히 균열이 생겨나는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상황적 측면들은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와 조건이었다. 80년대에 이르면 한국의 미술계에도 서구 미술의 정보와 지식을 시간적 편차 없이 공유할 수 있는 지적, 감각적 환경이 제공됨으로써 당시 동시대 미술의 쟁점과 이슈에 자유롭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 젊은 작가들에게는 선배들의 시대에 비해 지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훨씬 윤택한 조건이 제공되었으므로, 이들의 기성세대에 대해 비판은 구체적이고 논리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면적이고 체계적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점 또한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이들의 비판과 저항이 자기 미술맥락에 대한 변증적, 대응적 성격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과 단절을 통해 同세대간의 의식과 표현의 장을 확대해 가면서, 동시에 동시대 세계현대미술의 조류와 쟁점, 이슈를 공유하고 대응함으로써, 세계현대미술과 한국현대미술에 대해 공히 자생적 대응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80년대 소그룹 운동은 당시 비평의 쟁점이었던 포스트모더니즘 대 리얼리즘 담론의 소모적 대결 속에서 미술운동의 역동적인 현장성의 가치가 간과된 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식화된 퇴행적 비평으로 또 다시 서구미술의 수용현상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이들의 비평은 현장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가할 만한 사유와 열정을 결여하고 있으며,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적 현상과 스타일에 함몰된, 우려할 만큼 심각한 역사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에 빠져 있다. 이들이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현상과 스타일이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 사유에 의해 비판되고 해체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던가?.
미학적 측면에서 80년대 소그룹 작가들은 그 시대의 다양한 미술의 담론과 양식을 어느 시대의 작가들보다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실험해 왔다. 밖으로는 당시의 세계현대미술의 상황을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며, 안으로는 여러 가지 경로로 소위 70년대 중심세력으로 자리 잡은 평면주의 미학에 대한 비판적 반성과 아울러 이 집단주의 세력들에 의해 주변 미술로 평가절하 되어 온 6-70년대의 일단의 실험미술들과의 연계를 이어 감으로써 명실 공히 한 시대의 역사를 구축했다. 이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소그룹 운동은 극히 평면적이고 인상적인 수준의 비평적 한계 속에서 몇 개의 도식적 틀에 맞추어져 무리하게 해석되어 왔기 때문에 이러한 비평적 오독과 오류가 바로 소그룹 작가들과 비평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되어 온 것이다.
그간 이 소그룹들과 동시대에 함께 활동하며 비평적 단상을 열어 왔던 미술평론가들은 나름의 공과를 쌓았으나, 자신들이 선택한 비평적 맥락을 위해 이 소그룹들의 활동을 모더니즘 담론과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에 짜 맞추어 해석함으로써 자신들의 비평적 한계를 스스로 만들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이후의 현장 경험이 없는 평론가들이다. 이들은 책상머리에 앉아 80년대 미술평론가들의 비평과 전시 도록 정도나 뒤적이며, 그들의 비평과 평론들을 전제로 80년대 소그룹운동을 평가하고 쉽사리 자리 매김 해 왔다는 윤리적으로도 매우 심각한 비평적 오류를 서슴지 않고 범해 왔다.
이 소그룹 운동을 주도했던 작가들이 이제 고작 40대의 중견들이며, 현재 한창 활발한 작가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의 생각과 입장들은 이들의 안중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지적하는 이러한 비평적 오류의 심각성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일단의 평론가들은 90년대 이후의 한국현대미술계의 패션화된 역사주의적 담론과 현상들을 비판적 검증 없이 주도함으로써 쟁점과 이슈들이 사라진 비평의 현장을 만들고, 문화적 ‘대응’이 부재한 행사중심의 미술판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미술의 현장이 사라지게 되는 일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어왔다. 이 부분은 향후 더욱 깊고 폭넓은 논쟁을 통해 밝혀 나가야 하겠으나, 이 자리에서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갈 것은 이들의 비평적 오류가 90년대 이후의 한국현대미술이 또다시 서구미술 맥락에 맹목적으로 경도 되어 감으로써 80년대 보다 더욱 퇴행적인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술사를 전공한 비평가들은 15분마다 새로운 미술이 등장하는(바바라 런던) ‘지금, 여기의’ 현장 미술과 자신들의 미술사적 접근 방법론 사이에 매우 커다란 간극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로움이란 기존의 것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며, 언제나 대단히 복잡한 상황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므로 새로운 미술에 대한 성급한 접근과 재단은 우스꽝스러운 지적 오만과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입증하는 결과를 떠안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말이 될지 모르겠으나 이 당시의 소그룹 작가들은 대부분, 적어도 극히 유동적인 현대미술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을 만큼은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이 그룹들의 성격과 활동방식, 그리고 이들이 내세운 선언문들에도 잘 드러나 있으나, 이 소그룹들의 리더로 활동했던 작가들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명확히 밝혀지고 있다. 다른 작가들도 그랬으리라 생각하지만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든 설사 함께 그룹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다른 작가들과 어떤 미학을 공유하고 선언하며, 유파를 만드는 식의 어리석은 짓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또 다른 맥락에서, 80년대의 소그룹 운동에서 출발한 작가들 중 상당수가 지금에야 작가로서의 전성기들을 구가하고 있다는 점과 90년대 이후의 한국현대미술의 상황에 80년대와의 실질적인 어떤 분기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80년대 소그룹 운동은 그 출신 작가들에게 지금도 진행 중인 역사인 것이며, 이런 관점에서 80년대의 소위 한국현대미술의 10년 주기설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 현장의 미술과 열정의 작가들
나는 어느 글에서인가 내 자신을 ‘현대미술의 광적 수용자’이며 동시에 ‘충동적인 작가’이자 ‘이론가’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그것은 현대미술이 언제나 미완성 상태일 수밖에 없는 내적 논리를 천착해 왔으며, 양식사적 평가의 한계 밖에서 새로움에 도전해 온, 끝없는 저항과 부정의 정신을 그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며, 결코 고착되거나 완성될 수 없는 유동적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 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대미술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창조하고 누리며, 즐길 수 있는 진정한 현대의 문화라는 말이다. 비록 아무 것도, 어떻게도 규정할 수 없고 끝없이 모호할 수밖에 없는 난해함을 갖지만, 생각해 보면 사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진정 명확히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것인들 明證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런 점에서도 현대미술은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고, 끝내 부정의 미학을 추구함으로써 어떤 사상보다 더 현실적이고, 철학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진술되는 일체의 담론과 패션화된 미술, 그리고 강력한 제도의 힘은 비록 우리 앞에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결코 살아 있는 문화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한 세기를 때론 격변하는 시대의 희생양으로, 때론 자기 역사의 배반자로 살아 왔다.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서의 21세기는 적어도 지난한 과거를 딛고 새롭게 일어서려는 희망과 의지를 담는 ‘미래’인 것이다. 바로 굴절되고 단층 지워진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자신들의 새로운 역사를 쓰려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준비되어 있지 않는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미래에 관한 우리의 희망과 의지는 무엇으로 현실화 될 것인가? 지금 나의 눈에는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그리고 부단히 우리를 지치게 하는 뒤틀리고 헝클어진 ‘현재’가 보인다. 그러나 나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그 암담한 현재 앞에 무기력하게 서있는 처연한 우리 자신의 참담한 모습이다. 진정으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를 참다운 쾌락으로 이끄는 것이 무엇일까? 비록 ‘현실’은 난감하지만 그만큼 우리에겐 도전할 대상이 있고, 개척할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우리 시대에 도대체 미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미술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는 소극적 문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시대적 의식을 깨우치는 적극적 문화의식의 중요한 통로임을 말해 주고 싶다. 미술은 이 사회의 많은 제도 영역 중의 하나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 대해 무한히 개방되어 있고 통해 있는 문화의식인 것이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를 기획하게 되었다. 비록 제한된 시간과 규모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나, 새로운 역사를 향한 강한 열망으로 이 힘겨운 일들을 수행하고자 했다. 과거로부터 ‘지금 여기’의 역사를 위해 가장 가깝고 현재도 진행 중인 미술의 역사로부터 다시 읽기를 시작함으로써 우리 현대미술의 역사를 역추적 하고자 했으며, 이것이 현재로선 ‘지금 우리’의 역사를 새롭게 써 가려는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들의 위상을 관념적으로 제한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예술가이고자 했던 출발의 순간부터 이 시대의 참다운 예술가는 작업실의 화가일 수만은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 왔다. 나는 한사람의 예술가이기 이전에 ‘역사 속의 존재’이며, 이 시대의 ‘정치’와 ‘사회’, 그리고 ‘문화’ 속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결코 가벼이 생각하지 않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읽는 우리 미술의 역사는 지금의 우리에게 수많은 새로움의 가치를 일깨워 줄 것이다. 그것은 미술 문화의 가치가 몇 개의 미술 작품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읽고 이해하는 「다시 읽기」의 독해를 통해 비로소 우리 앞에 발현될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80년대 소그룹들의 운동에 눈을 돌리는 것은 그것이 한 시대에 맞서 역동적으로 살아 온 생생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동성은 그 이전의 과거에도 엄연히 살아 있으며, 이것을 다시 읽는 독해의 방법과 그 결과를 통해 우리 미술의 역사는 ‘수용’과 ‘종속’의 허물을 벗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제한적이고 상황적이며, 현장 중심적인 역사는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같은 역사는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 세미나 발제문(2000.10.7 문예진흥원 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