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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질이 단위이기를 멈출 때

수십 년간 나는 예술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지를 반복해서 물어왔다.

 

공유된 기준도, 언어도, 통합된 미학적 지평도 없다는 것은 —

예술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법론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술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와 작동 방식을 묻는 일이 중요하고,

작가는 그 답을 작업의 내부에서 찾아야만 한다.

 

이 글은 솔 르윗의 Brushstrokes를 보면서 시작되었다.

외형상 나의 드로잉과 유사해 보였지만,

그 안에서 어떤 기분 좋은 긴장을 감지했다.

화려한 종이 장미들 사이에서 진짜 장미를 발견하는 순간.

그 순간 로버트 모리스, 이우환의 작업들이 함께 떠올랐다.

그들과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았다.

 

르윗의 stroke는 반복적인 모듈로 작동하며,

그 모듈은 곧바로 개념적 단위로서 구조를 형성한다.

모리스의 stroke는 시간의 지속을 기록하며 반복을 통해 행위를 축적한다.

이우환 역시 반복을 통해 구조를 만들지만, 통제된 간격 안에서 지탱된다.

 

이 세 작가의 stroke는 각자의 단위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단위는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위로 인식되기도 전에 붕괴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이 드로잉은 그 안정성을 교란하는 조건 속에서 진행되었다.

벽에 걸릴 것을 전제로 캔버스를 테이블 위에 눕혔다.

물감을 상단에 두텁게 짜 올린 후,

캔버스에 물을 뿌리고,

붓으로 일부를 느리게 아래로 끌어내렸다.

 

구성적 의도 대신 중력과 물, 그리고 시간이 개입하면서,

번지고 섞이는 현상들이 나의 통제 바깥에서 비가역적으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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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길

d-220

2020

화면은 그릴 수도, 그려질 수도 없는 것들로 채워졌고,

이미지는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로 남았다.

1000014746.jpg

오상길

untitled

2026

이것은 회화 언어의 변형이 아니다.

의도적 스트로크 대신, 물리적 현상이 화면을 구성하도록 조건을 설계하는 일이다.

— 붓질이 단위로 굳어지기 전,

그 상태가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을 열어 두는 것.

이 경우, 붓질은 더 이상 단위로 작동하지 않는다.

오상길

untitled

2026

각각의 사건은 물질적으로, 시간적으로 고유하기 때문에 반복되지 않는다.

안정된 요소가 없기 때문에 모듈화되지 않는다.

결과가 의도를 초과하기 때문에 통제되지 않는다.

붓질은 재현의 수단이 아니라 물리적 사건으로 남는다.

 

반복 이전.

구조 이전.

형태 이전의 상태.

 

이 드로잉은 어떤 이미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발생하는 조건을 드러낼 뿐이다.

 

반복이 구조를 만든다면,

이 작업은 구조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붓질이 회화의 최소 단위였다면,

이 작업은 그 단위가 붕괴하는 자리에서 출발한다.

참조작품:

 

Sol LeWitt, Brushstrokes, 1990s

Robert Morris, 37 minutes, 3879 strokes, 1961

이우환, 선에서,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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