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Body, and Silence
Sangghil Oh
Time-based artist | Body | Resistance | Trace | Silence
“What cannot be said—must be drawn, screamed, or scattered.”
감각으로 조정된 오브제들
1980년대 후반부터 나는 나무가지와 뿌리, 흙, 뼈 같은 오브제들을 자연에서 빌려와 감각적으로 조율해내는 작업들을 모색했다.
오브제들의 원초적 속성과 그에 충실한 구조를 연구하며, 작업실 바닥과 벽, 공간 전체를 하나의 감각 구조로 확장시켰다. 그후 오브제들은 빌려온 곳에 되돌려졌다.
이들 중 일부는 전시가 되었지만, 대부분은 내 자신과 공간, 오브제 사이의 감각적 실험의 기록으로만 남았다. 2~30년의 시간이 흐른 뒤, 국립현대미술관의 요청으로 재제작되었다가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 간 작품들도 있다.
untitled,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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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brick powder, pigment, animal's bones, branches etc., ⌀ 5m
"나는 세계를 정의하기 보단 시대를 감각한다.
그리고 이 감각은 손끝에서 시작해서,
몸을 거쳐 시간과 함께 스친다.
그런 이유로 난 이 작품이
감각의 공명과 응시를 위한 공간이 되길 바랬다.
white cube 속의 푸른 원은
인간의 몸을 감싸고 남을 만큼 컸고,
밝은 조명 때문에 이 거대한 색덩어리가
허공으로 떠 오르거나
몸이 그 속으로 빠져드는 착각을 느끼게 했다 .
그건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untitled, 1989

powder of red brick, animal's bones, branches etc., ⌀ 5m
차가운 흙의 감촉이 체온을 흡수하듯
낮게 깔린 큰 원으로 퍼져 나갔다.
붉은 대지의 원은 중심이 아니라
바닥을 감각하는 방식이었다.
untitled, 1989 / 2020 reinstalled

root, branches, animal bone, etc.

벌목으로 죽은 이 나무는
2020년 예술작품으로서의 삶을 다시 얻었다.
거꾸로 세워지고 64방향으로 방사된
나뭇가지와 동물 뼈들과 함께
무의식적 구조를 호출하는 감각적 구조물로서,
눈으로 보는 조형이 아니라,
신체로 직면하는 사건으로.
untitled, 1989

root, branches
특별한 사람들과의 인연처럼,
사물과도 그런 인연을 맺게 될 때가 있다.
난 그걸 우연과 필연의 교차점이라고 부른다.
이 나무뿌리와도 그랬고,
2020년의 감나무 뿌리와도 그랬다.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형식들에 가려졌던
감각과 진동 같은 것들에 주목한다.
예술이란 물질과 접촉하는 감각의 흔적이자
비논리적 생리의 응답이기 때문이다.
untitled,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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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r, paint, branches
한 줌의 머리카락은 몸이다.
그걸 흰 페인트 위에 올려 놓은 건
일종의 제의적인 알레고리였다.
질서와 몰관계한 사물들의 우발적 마주침은 일탈과 파열음을 만들어 낸다.
with canvas, 1994

264 x 162 cm, wood, copper pipe, acrylic on canvas
각각의 삶을 살다가
이리저리 떠내려 온 오브제들은
그 세월만큼의 흔적들을 지니고 있었다.
우연히 아니 어쩌면 어떤 필연으로
서로 한 곳에서 만나
새로운 인연을 맺으며 작품으로 되살아 났다.
숨길 수 없는 '날 것'의 속성과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생경함 같은 것들은 늘 매혹적이다.
난 그 사이를 매개하고 감각을 조율하며
새로운 존재방식을 찾고 있었다.
Untitled,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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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남성용 소변기, 1985년 서울 앙데팡당
대학 졸업 직후 발표한 첫 작품이었다.
동시대미술에 눈 뜨게 해준
마르셀 뒤샹에 대한 경의와 응답이자,
한국 현대미술을 향한 선언적 비판이었다.
오브제의 기원을 다시 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