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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Body, and Silence

Sangghil Oh
Time-based artist | Body | Resistance | Trace | Silence

“What cannot be said—must be drawn, screamed, or scattered.”

BODY

몸은 언어 이전의 진실이다.

감각은 언제나 몸을 통해 드러난다.

억압과 충동, 권력과 저항, 기억과 행위의 흔적까지,

몸은 예술의 첫 재료이자, 최종적인 발언이다.

Anonymous mirror, 1993

나는 타자를 연기하는 몸이었고,

거울은 그 틈에 놓인 무명(無名)의 장치였다.

익명성과 젠더의 경계에서,

응시는 방향을 잃는다.

Body,1993(small-1).jpg

Anonymous mirror, 1993은 시선의 권력 구조와 젠더 수행성에 대한 비판적 탐색이다.

작가 자신의 신체를 ‘재현된 타자’로 전치시키는 이 작업은, 주체의 자기표상과 타자화 전략을 병치함으로써,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사이의 권력구도를 전복하려는 시도다.

특히 카메라 프레임에 의해 분절된 신체의 일부와 성기를 가리는 제스처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말한 젠더의 ‘수행적 구성(performativity)’이 어떻게 은폐, 탈코딩, 중성화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제의적 장면이 된다. 동시에, 익명화된 남성 신체는 시각적 페티시즘과 성적 주체-객체의 이분법에 질문을 던지며, 관람자에게 자기 응시의 불안정성을 환기시킨다.

이 작업은 낸 골딘의 “I’ll be your mirror”라는 명제처럼, ‘거울’이라는 중간 장치를 통해 정체성의 반사와 분열을 유도한다.

궁극적으로, Anonymous mirror, 1993은 시각적 담론 속에서 성과 정체성이 구성되는 방식을 해체하며, ‘몸’ 그 자체를 개념적 인터페이스로 재구성하려는 동시대미술의 실천 중 하나로 위치 지어진다.

Hairlines of Control, 1993

도열시켜 놓은 머리카락들 사이로

관람자의 몸이 걸어 들어왔다.

소리와 냄새, 숫자와 간격은

설치를 통제에 더가깝게 변화시켰다.

prisoner's hair, 1993(small).jpg

수인들의 머리카락, 심장박동소리, 숫자들과 메시지들, 공간 전체

Hairlines of Control, 1993은 ‘도열’이라는 시각적 언어를 통해, 통제된 질서와 감각의 억압을 공간적으로 구현한 설치 작업이다. 바닥의 텍스타일 간격에 맞춰 정렬된 머리카락 다발들은 단순한 배열이 아닌, 무언의 규율을 시각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관람자는 그 도열 사이를 거닐며, 씻기지 않은 머리카락의 냄새, 다양한 형태와 색의 털, 그리고 공간을 울리는 심장박동의 둔탁한 리듬 속에 감각적으로 침식된다.

이 설치는 근대의 권력 구조—특히 감시, 통제, 분류의 메커니즘—를 신체적 체험으로 환원시킨다. 머리카락은 신체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결코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존재, 그것은 감옥에서 인격이 제거된 수인의 잔여물처럼 남아 있다.

이 작업에서 관람자는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라, 작가가 만들어놓은 감각적 감옥의 경로를 통과하는 존재로 위치 지워진다. 그리고 말이 사라진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몸의 기억이다.

Someone in the box, 1999

나는 내 몸을 상자 속에 가뒀고,

그 속에서 타자를 연기했다.

그 육체는 나였고, 동시에 당신이었다.

1999 someone in the box-1999-projections-c.jpg

5-channel video installationon a glass box, no sound

someone in the box, 1999는 프레임과 매체를 통해 신체를 타자화하고 해체하는 설치 작업이다.

1㎡의 투명 유리 상자 내부에 트레이싱지를 부착하고, 작가 자신의 신체 일부를 유리면에 밀착시켜 문지르는 장면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이 각각의 면에 투사된다. 이 신체는 더 이상 인식 가능한 인물이나 육체가 아니며, 마치 소시지처럼 길게 늘어나거나 해체된 살덩이처럼 뒤틀린 형상으로 상자에 갇혀 있다.

여기서 ‘상자’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응시의 구조이자 시각적 감옥이며, 그 안의 ‘몸’은 작가 자신의 몸이면서 동시에 관람자의 무의식을 비추는 타자적 형상이다.

 

이 작업은 신체가 매체 안에서 어떻게 조각나고, 편집되고, 타자화 되는가에 대한 실험이며, 관람자에게 자신의 응시가 하나의 권력이자, 프레임 바깥의 육체를 어떻게 상상하고 있는지를 되묻는 장치로 작동한다. "나의 몸을 나 스스로 갇히게 했다"는 이 설정은, 프레임 너머의 주체성을 상실한 이미지 시대에서, 신체가 어떻게 자기-이미지의 감옥 안에서 탈주를 시도하는가에 대한 메타비평적 질문이다.

Scream, 1999

그곳엔 목소리만 있고, 몸은 없다.

그 비명은 나의 것이었고,

듣는 당신의 것이기도 했다.

single channel video installation In the black cylinder, sound

scream, 1999는 공간, 몸, 목소리를 매개로 한 심리적 설치 작업이다.

작가는 P.S.1 레지던시 당시 미술관 지하공간에서 출발한 구상을 발전시켜, 지름 140cm의 검은 원통을 제작하고 그 안에 스피커들을 내장했다. 천장에서 투사되는 영상 속의 얼굴은 밀가루와 물을 뒤집어쓴 채 괴물처럼 일그러져 있으며, 실제로 질러낸 비명 소리는 메아리처럼 공간을 가득 채운다.

 

작가는 일부러 키 작은 관람자들이 보기 어려운 높이로 원통을 설치했지만, 화랑 측의 배려로 디딤 의자가 제공되면서 원래 의도된 불편함이 무력화되었다.

이 장치는 단순한 방해가 아니라, 감상에 수동적으로 머물지 않고 몸을 움직이게 하기 위한 유도였다.

scream은 이미지, 소리, 공간, 몸—모두를 감각적으로 교란시키는 장치이며, 침묵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말할 수 없게 된 현실에 던지는 날것의 외침이다.

Untitled, 1989 / 2010 reinstalled

몸은 어느새 푸른 원 앞에 멈춰 서 있었다.

그건 색이 아니라, 감각의 문이었다.

untitled89-2010 re-installed, 2010(a).jpg

pigment, branches, animal bones, etc.

untitled, 1989 / 재설치 2010은 깊고 순도 높은 청색 안료로 구성된 거대한 원형 설치작업이다. 이 작업은 단순한 시각적 오브제를 넘어서, 공간 속에 들어선 관람자의 몸, 감각, 심리 상태 전체를 불러내는 감각의 장이다.

 

원형의 크기와 구조, 밝은 조명 아래에서 더욱 또렷해지는 울트라마린 블루, 그리고 설치 공간에 은은히 퍼지는 에스프레소 커피의 향은 관람자의 감각 체계를 교란시키고, 마치 눈앞의 원이 떠오르거나,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환각적 경험을 유도한다.

 

이 작업에서 '푸른 원'은 단순한 색면이 아니다. 그것은 감각의 문턱이며, 작가와 관람자의 '몸'이 동시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감각적 사건이다. 관람자는 어느 순간,  자신이 그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눈이 아니라 몸 전체로 이 공간에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이 경험은 일종의 '시각적 수행(performance)'이며, 보는 자의 육체, 설치된 색채, 장소의 조건이 함께 만들어내는 감각적 공명과 몰입의 구조이다.

몸의 울림은 여기까지입니다.

당신은 이제,

다른 시간, 다른 침묵,

다른 대화를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pigment print, 140 x 1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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