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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om fuck, flash & MX, 2004

마루 - 바람이 찍은 점 둘

무리수 알고리즘이 뒤틀어 버린 시간들

루씨: 《random fuck, flash & MX, 2004》를 처음 봤을 때는 뭐가 뭔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는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마치 번개처럼 순간적으로 지나간 다음, 한참 후에 그 섬광의 잔상을 자각하게 되는 이미지랄까, 순간적으로 무한한 파편이 흩뿌려지는 느낌이랄까... 이 작업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상길: 당시 전 편집 타임라인의 프레임들을 조각내서 이리 붙이고 저리 붙여서 시간을 뒤틀어 놓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컴퓨터를 잘 다루는 큐레이터가 “선생님, 그 작업을 차라리 random으로 처리하시죠?”라고 하더군요, 전구에 불이 켜지는 것 같았죠. 무리수 공식이라는 건 차원의 다른 것이었으니까. 곧바로 ‘fuck!’이란 단어가 떠오르더군요. 뉴욕 거리에서 흔히 듣던 그 짧고 강렬한 욕설을 비선형적 시간 위에 마치 암호처럼 흩뿌린 거죠. 촬영도 순식간에 끝났습니다. 그냥, 툭—하고 던진 느낌이었죠. 타이틀도 설명도 필요 없었습니다. ‘random’과 ‘fuck’으로 충분했죠. 시간의 혼란, 불연속, 비선형성이 명확해졌거든요.

루씨: 그러니까 그건 어떤 충동 같은, 혹은 명료한 직관 같은 거였네요. 정말 흥미롭군요. 그 순간의 강렬함, 욕설 하나를 예술적 코드로 삼아 수학적 시간 질서에 침투시키는 방식. 기술적 우연이 하나의 미학적 개념으로 점화되는 그 찰나—그건 발명이라기보다  '감각의 직진' 같은 거죠. 지금 그 일화를 들으니 《random fuck, flash & MX》는 단순한 편집 실험이 아니라, 예술가의 직감이 수학적 개념과 충돌해 순간적으로 불꽃을 일으킨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작업, 한국에선 한 번도 전시된 적 없죠? 

상길: 사실 저는 늘 ‘소통장애’에 관한 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random fuck》은 그중에서도 가장 분명한 경우였죠. 당시 한국미술계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 이후 비디오 아트가 대세를 이뤘지만, ‘시간성’이라는 개념조차 쓰이지 않았으니... 참 이상한 일이었죠. 시간의 선형적 구조나 무리수 공식, 프레임 재배열, 비반복 같은 구조나 개념에 관심들이 없었죠. 비디오 아트의 핵심은 ‘시간성’에 있고, 저는 디지털 편집 화면 안에서  그 ‘시간’을 새롭게 비틀고 휘게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random fuck, flash & MX, 2004》는 0.8초 정도의 아주 짧은 클립—“fuck!”이라는 외침이 담긴 불과 몇 십 개 프레임을 무리수(irrational number) 공식에 따라 비반복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순서로 배열한 작업입니다. 그 짧은 클립들이 마치 끊긴 시간의 편린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어떤 감각의 궤도로 몰려들기를 원했죠.

루씨: 또 하나의 시간의 축이군요. 이 작업을 보고 저는 처음엔 좀 웃겼어요. 짧은 순간에 얼굴이 화면 밖으로 튀어 나올 듯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미지도 사운드도 무작위적으로 뒤죽박죽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되더군요. 뭐랄까? 감각이 자꾸 미끄러진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제게는 아주 강렬했습니다.

상길: 그랬군요.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이라는 것도 의식이나 감정에 따라 비선형적으로,무작위적으로 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루씨가 방금 미끄러짐이란 표현을 썼는데, 어쩌면 그게 제가 실험하고 싶었던 ‘시간의 표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루씨: 그 말씀을 들으니 이 작업이 일종의 ‘시간의 드로잉’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규칙 없이 배열된 감정의 덩어리들이 한 줄로 늘어서지 않고, 여기저기 어딘가에서 번쩍했다가 곧 사라지는 리듬 같은... 그런 측면에서 보면 《random fuck》은 ‘시간의 초상’일 수도 있지요. 단일한 선이 아니라, 불규칙하게 떨리고 뒤틀리는 면 또는 덩어리로서의 시간. 어쩌면 그래서 “fuck!”이라는 격렬하고 충동적이며 공격적인 단어가 떠올랐을 수도 있고, 그래서 더더욱 무작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파편으로 적합했던 건지도 모르죠. 말보다 빠르게, 의미보다 먼저 다가오는 그 소리는 본능적인 시간의 조각 같은 것이었을 수도...

상길: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시간의 드로잉’이라... 재밌는 표현이군요. 사실 최근의 드로잉 작업에서도 시간은 아주 중요한 모티브에요.

루씨: 《random fuck》은 이래저래 거의 전류처럼 직관적으로 튀어나온 작품이었네요. 그런데, 그만큼 단순해 보이기도 해서 오히려… 《계단을 내려오는 예술가》와 《random walking》이란 작품도 있었는데, 같은 ‘시간의 실험’ 작품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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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om walking, flash & MX, 2004

계단을 내려오는 예술가, flash & MX, 2004

예술가의 침묵이 의미하는 것들

상길: 그 두 작품도 무리수 알고리즘으로 시간을 분절해서 무작위로 재생하는 실험적인 작품이었죠.  

《random walking》은 시간의 분절이 공간의 이동으로 가시화되어서 마치 순간 이동하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켰던 작품이고, 《계단을 내려오는 예술가》는 뒤샹의 작품을 패러디해서 짧은 거리를 빠른 속도로 오르내리는 것처럼 이미지를 겹쳐 보이게 처리한 작품이었죠.

루씨: 이 작품들을 발표하지는 않으셨죠? 그건 의도적인 침묵 같은 건가요?

상길: 정확히 말하면, 반복되는 소통 불능의 경험에 따른 선택이었어요. 2001년 마지막 개인전을 마치고, “이제 더는 발표할 필요가 없겠다”고 판단했습니다. 《random fuck》도 한국에서의 전시 이력은 없습니다. 예술작품은 본질적으로 소통을 전제로 하는데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걸 반복해서 확인하게 되면, 작가의 유일한 방어 수단은 침묵이 됩니다.

루씨: 그 침묵 안에서도, 창작은 계속되었던 거군요.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몰입의 시간이기도 했을 테고요.

상길: 맞습니다. 가끔 칠흑 같은 고독에 휘감겨 죽어갔을 렘브란트를 떠올리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선 예술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일수도 있습니다. 침묵은 때때로 고통스럽지만, 완전한 자유를 주기도 합니다. 절대적 몰두가 가능하다는 건 축복일 수도 있으니까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물론 이대로 끝나버릴 수도 있겠죠. 그렇게 된다면 그냥 받아들일 생각이에요. 낙엽처럼  나도 스러지는 거죠. 전 그런 말을 자주 했어요. 작품은 예술가가 만들지만,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건 사회의 몫이라고 말입니다. 예술가와 사회는 서로 지켜야 할 윤리가 있어요. 그 윤리가 무너질 때, 통증은 오롯이 예술가의 몫이 됩니다. 

세상은 아예 모르겠지요. 물론 그 예술가의 재능과 성취를 향유할 수도 없을 것이고...

루씨: 그 말씀…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지금 그 말씀은 개인의 고백을 넘어서 우리가 함께 나누어야 할 공통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끝)

마루의 두 번째 대화는 여기까지입니다.
당신은 이제 다른 시간, 다른 몸, 다른 침묵, '마루'의 세 번째 대화를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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