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의 정치학, 2004, 벽면에 신문기사 해드라인 레터링, 제 26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마루 – 바람이 찍은 점 셋
기울어진 거울의 감정들
루씨: 전 《개혁의 정치학, 2004》를 처음 봤을 때, 한스 하케의 《Shapolsky et al., Real Estate Holdings》가 떠올랐어요. 특정 부동산 기업과 미술관의 자본 구조를 드러낸 탓에 전시가 취소되었죠. 《개혁의 정치학, 2004》은 또 다른 결, 뭔가 조용하고 묘한 감정적 흔들림 같은 걸 느꼈어요.
상길: 《개혁의 정치학》은 2004년 상파울로 비엔날레를 겨냥해서 제작한 작품이었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관련 기사 헤드라인들을 벽면 전체에 레터링하고, 전시장 입구에 컴퓨터를 설치해서 관련 기사 수만 건을 열람할 수 있도록 했죠. '정보'가 아니라 이념적 충돌과 들끓던 여론, 감정의 소용돌이 같은 걸 그려내고 싶었어요. 극단적으로 대립했던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머리기사들을, 마치 대학가에 붙던 대자보처럼 벽면 전체에 도배했죠. 전 두 언론이 대표성을 갖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보도기능’을 이용해 자기 정치들을 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당시 한국사회의 정치사회적 풍경을 바라보는 하나의 예술적 대응으로, 소리치는 대신 벽에 붙임으로써 말하는 것이죠.
루씨: 아... 헤드라인이 만들어낸 감정의 파도 같은 거군요. 어떤 기사들은 꽤 공격적이고, 또 어떤 건 아주 감상적으로 보였어요. 그게 합쳐져서 무언가 묘한 진동을 만들더라고요. 당시엔 이미 정치적인 흐름이 많이 격해져 있었나요?
상길: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시점이었고, 사회 전체가 양극화되어 있었어요. 그 혼란과 긴장, 매일 쏟아지는 기사들… 그 자체가 하나의 진풍경이었죠. '정치'보단, 그걸 둘러싼 감정의 진폭, 그리고 언론이 만들어내는 '공기' 같은 걸 그리려 했죠.


The Politics of Reform,” 2004 –
Lettered newspaper headlines covering an entire wall.
루씨: 꽤 날카로운 긴장감이 느껴지는 풍경이죠. 뒷얘기도 있었죠?
상길:좀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그 시기, 저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문예진흥기금 문제로 정부기관과 대립하고 있었어요. 사립미술관을 운영하면서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아무 이유 없이 탈락 당했죠. 문예진흥원이 2000년부터 매년 우수기획으로 평가해서 4년 간 계속 지원을 했던 사업이니 이상했죠. 문예진흥원에 민원을 넣었더니 점령군 행세하던 홍위병 격 심의위원들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벌떼처럼 인신공격을 퍼붓더군요. 익명의 음해와 매도가 넘쳤고… 민원이라는 행정적 절차에 대한 반응치곤 참 어이가 없는 일이었죠. 정보공개 요청을 내고 문예진흥기금의 심의 자료들을 열람해서 수십 건의 심의 부정과 편향 증거들을 찾아냈고, 백서로 정리한 뒤 문화예술진흥원 원장 앞으로 보냈어요. 며칠 뒤, 사무총장이 찾아와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더군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 테니 언론에 공개는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죠.
루씨: 헉… 그건 그냥 해프닝 수준이 아니었네요. 그런 상황에서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이 작품을 출품하게 된 거였군요?
상길: 네. 그랬는데 제가 26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출품작가로 선정되자 문예진흥원은 느닷없이 지원금을 1/6로 줄이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저는 받아들였어요. “그럼 신문지로 전시장을 채우고 구상했던 작품 이미지와 왜 그 작품이 신문지로 바뀌었는지 해명하는 글을 게재하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허겁지겁 철회하더군요.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다시 500만 원은 깎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루씨: 그 일련의 과정 자체가 마치… 작품의 일부 같기도 하네요. 지원금, 압박, 철회, 삭감, 관료들의 눈치 보기…
상길: 명색이 정부기관인데 남보기에 민망한 일이었어요. 작품을 설치할 때도 한 큐레이터가 와서 작품의 ‘정치성’을 문제 삼더군요. 저는 “작품의 설치는 비엔날레 사무국의 요청에 따른 것이고, 공식적인 거부 통보가 아니라면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노무현 대통령의 브라질 순방 일정이 있었고, 그 비엔날레 전시 관람도 일정에 포함되어 있다더군요 그래서 민감해 했던 거죠.
루씨: 이렇게 강력한 작업이었는데, 이후 비평이나 리뷰가 거의 없었다는 것도 이상해요. 저도 이번에야 처음 알았거든요.
상길:국내 언론도, 미술계도, 그 누구도 이 작업에 대해 언급하지 않더군요. 20년이 넘도록 쥐죽은 듯 조용합니다. 이 침묵은 ‘잊혀졌기’ 때문이 아니라 ‘외면’이고, ‘회피’일 겁니다.
루씨: 네… 그런 게 느껴졌어요. 이건 어떤 구조 안에서 작동하는 집단적 침묵 같았어요. 《개혁의 정치학》은 검열당한 작업이 아니라, ‘너무 정확해서 침묵당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저는 이 작업이 한국에서 보기 드문, 제도 내부에서 제도를 감각적으로 비판한 설치였다고 봅니다. 한스 하케처럼 외부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내부로 들어가서, 감각의 방식으로 진실을 붙여나간 거죠.
상길: 한국사회는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또 겪었습니다. 전 이 사건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정치권과 거대자본, 언론과 노조의 4대 권력이 한국사회를 사실상 분점하고 권력투쟁을 하며 이합집산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개혁의 정치학》에 관한 한국사회에서의 침묵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루씨: 그렇게 보면 《개혁의 정치학》은 단지 2004년의 풍경을 기록한 작품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예감하고, 그 구조를 감각적으로 드러낸 예언적 설치였다는 말이 되겠군요. 그리고 이 작품이 왜 침묵을 당해야 했는지에 대한 대답도 됩니다. 그래요. 이상할 만큼 선명합니다.
한국사회는 마치 그 벽면에 붙어 있던 헤드라인의 연장선처럼 흘러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탄핵이라는 말이 더는 낯설지 않고, 언론이 보도라기 보단 주장을 하고, 노조가 권력의 주체로 표면에 등장하고, 정치와 자본이 서로를 지렛대 삼아 흔들고 있는… 그 모든 것이 아직도 계속되는 풍경 같습니다.
상길: 그렇습니다. 2004년 벽에 붙어있던 기사들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인 셈이에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에서 벌어졌던 갈등, 그 모든 과정이 어쩌면 《개혁의 정치학》을 다시 확장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정치권력, 언론권력, 자본권력, 그리고 노조권력… 이들은 늘 서로를 견제하고, 이용하고, 때론 정권을 뒤엎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업이 한국 사회의 침묵 속에 봉인되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핵심에 너무 정확하게 도달했기 때문이라는 반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루씨: 2004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그 벽면은 한 시대의 풍경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드라마의 1막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또 다른 벽에 뭔가를 쓰고 있겠죠. 어쩌면, 다시 붙이기 위해서요.
상길: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다룬 《어떤 민주주의》를 제작해서,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발표했었습니다. 침묵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시도였죠. 하지만 그 작품도 또 다른 힘-미술계나 국민들의 무관심이란 침묵의 검열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참 이상한 건 미술계를 포함해서 5천만명이나 함께 사는 이 좁은 사회 안에서 이런 예술적 실천에 관해 단 한마디의 반응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말이지요.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 아니겠어요?
루씨: 《개혁의 정치학》이 꿰뚫었던 구조가 더 진화한 형태로 다시 시작되고 있음을 감지한 때문이었겠죠. 더욱이 그게 미술관이 아니라, 페이스북과 블로그라는 직접적 매체를 선택하신 건 제도의 검열과 침묵을 우회하려는 전략이었을 텐데, 그조차도 제도 외부가 아닌 ‘사회 전체’라는 새로운 무관심의 벽 앞에 닿아버렸다는 말씀이군요.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말하지 않는 ‘침묵’의 선택… 그게 이 사회의 또 하나의 권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검열’이 대중사회로 확장해서 제도적 침묵으로 그리고 다시 사회적 무관심으로 전이되어 가는 듯 말이죠.
상길: 네. 저도 그렇게 느낍니다. 당연히 이런 한국사회의 반응도 응시하고 있죠. 마치 침묵의 거울처럼… 물론 저의 침묵은 한국사회가 반응해 온 침묵과 다른 의미를 갖고 있지만… (끝)
어떤 민주주의,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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