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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소변기, 1985 - 서울 앙데팡당
마루–바람이 찍은 점, 일곱
남겨지지 않는 작업들 (1985–1996)
루씨: 상길, 당신의 1985년부터 1996년까지의 오브제 설치 작업들을 “초기” 또는 “형성기”로 봐야겠죠?
상길: 네. 난 그 시기부터 ‘방법론’에 집중하고 있었어요. 한국미술계와 동시대미술이라는 겉보기와 아주 많이 다른 두 트랙 사이에서, 서구의 작가들과 다른 감각으로 시대를 읽고 있었죠. 한국사회의 급격한 변화들을 온 몸으로 겪으며 스스로 길을 찾는 과정이었어요.
루씨: 〈4개의 소변기〉는 1985년 서울의 앙데팡당 전에 출품되었죠?
상길: 그게 내 첫 발표작이었죠. 난 마르셀 뒤샹의 <샘, 1917년>을 미술에 관한 통념을 전복시킨 사건으로 이해했는데, 그때 그 소변기는 오브제가 아니라 ‘개념’으로 제시된 것이라고 판단했죠. 현대미술을 읽고 답을 찾는 시기였고, 난 굳어버린 신화를 흔들어 놓고 싶었어요.
루씨: 1917년의 레디메이드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다뤄진 건 아니었으니까.. 1989년의 오브제 설치 작품들은 훨씬 조용해 보여요.
상길: 뭔가를 주장보단 직접 드러내려고 했었죠. 그래서 작품에 부연 설명도 하지 않았고..


untitled 89-2, 가로수와 나뭇가지, 동물 뼈 등, 1989
untitled 89-2 재제작, 감나무와 나뭇가지, 동물 뼈 등, 2020
루씨: 작품들이 고정되지 않았던 것도 연관이 있겠군요?
상길: 묶거나 다듬지 않았어요. 오브제를 옮겨 와서 존재 그 자체를 제시하되, 바람 한 줌, 관람자의 발걸음에도 흐트러질 만큼, 고정되지 않은 상태여야 한다고 생각했었죠.
루씨: 그렇다면 그건 불안정한 상태라기보다는 열려 있는 세계 같은 걸 지향한 건가요?
상길: 맞아요. 그 작업들은 처음부터 자연 어딘가에 나처럼 존재하다가 잠시 전시장으로 옮겨져 예술작품이 되고, 전시가 끝나면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프로세스로 설계됐었죠.
루씨: 남지 않도록.
상길: 작품은 남지 않고, 감각의 여운을 남기고 시간을 통과하는 것이죠.
(침묵)
루씨: 어떤 양식을 만드는 조형과는 다른 것이었군요.
상길: 네. 나는 서구의 작가들과 닮은 언어를 쓰고 있었지만, 같은 감각에 서 있지는 않았어요.
루씨: 오브제 미술의 ‘다시 읽기’ 같은 것이군요.
상길: 그렇죠. 서구미술의 수용을 넘어 다른 감각의 경로를 제안하는 일이었으니까.
루씨: 근데 그건 그때 이미 지금의 드로잉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는 뜻인가요?
상길: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거죠. 그때나 지금이나 난 고정되지 않는 것, 완결되지 않는 것, 남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오브제든, 비디오든, 드로잉이든 형식이나 기법이 달라도 그 질문은 여전히 나를 통과 중인 셈이에요.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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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89-4, 안료, 붉은 벽돌가루, 나뭇가지 등,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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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89-4 재제작, 안료, 그라인딩된 커피가루, 나뭇가지 등, 2010
일곱 번째 마루의 '남지 않는 작품들'에 관한 대화는 여기까지입니다.
당신은 이제 다른 시간, 다른 몸, 다른 침묵, 위치를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루씨: 어떨 때 당신은 뭔가 설명해야 할 게 많은 것처럼 보여요.
상길: 동시대미술과 한국미술 사이엔 큰 갭이 있어요. 중요한 문제들 일 텐데, 양 쪽에서 공히 잘 읽히지 않으니까..
루씨: 어느 쪽에서도 편하게 읽히기 어려운 위치로군요.
상길: 1997년 P.S.1에서 돌아올 때, 뉴욕의 미술계 관계자들 중엔 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는지 묻는 이들이 있었어요. 뉴욕에 남아 있으면 좋은 기회가 많을 거라고들 했죠.
루씨: 당신의 선택은 달랐죠.
상길: 네. 나는 그렇게 말했어요. 뉴욕은 내게 기회를 줄 수 있겠지만, 한국은 내가 예술가여야 할 이유와 동기를 제공하고, 난 내가 무엇을 찾아가야 할지 결정한 상태라고 말이에요.
루씨: 그 선택이 ‘다시 읽기’로 이어졌군요.
상길: 1999년 한 사립미술관 관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를 시작했지만, 넓은 의미에선 나의 학습과 작업 전체가 ‘다시 읽기’인 셈이에요. 그건 한국사회의 시대 문화적 조건 속에서 한국인으로서의 감각과 DNA를 통해 동시대미술을 다시 읽는 일이고, 나는 그 지점에서 다른 감각과 이해의 지평을 열어 왔지요. 거기엔 일종의 탄성 같은 게 있거든요.(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