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titled 97-7, single channel video installation, sound, 1997
마루–바람이 찍은 점, 여섯
— 작가 에세이
이슈 이후에 남는 것들
— 작가와 장인의 갈림길에 대하여
나는 오랫동안 이슈와 논쟁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것은 시대적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함이 아니라, 작가라는 존재가 스스로를 단련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비평과 미술사는 언제나 논쟁과 함께 움직여 왔다. 앵그르와 들라크루아의 대립, 쿠르베의 Art Vivant, 인상파 화가들이 모이던 카페 게르보아의 격렬한 토론, 1917년 『The Blind Man』에 실린 한 예술가의 기고문이 촉발한 논쟁, 그리고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도널드 저드의 대립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논쟁이 예술가들의 감각과 태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였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뉴욕 미술계 역시, 서로 다른 입장들이 충돌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해야 했던 시간들로 채워져 있었다. 비평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라기보다는, 오히려 예술가를 불안하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했다. 예술가들은 그 불안 속에서 다음 단계의 질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시기를 모더니즘 미술의 절정기로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완성의 시기가 아니라, 긴장이 유지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늘 하나의 위험이 따른다. 이슈와 논쟁이 작가를 단련하는 동기가 아니라, 곧바로 작업의 모티브로 소비될 때다. 이 경우 작업은 빠르게 반응할 수는 있지만, 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소진된다.
미술사는 문제의식이 외부의 이슈에 의존해 형성될 경우, 이슈의 소진과 함께 힘을 잃었던 수많은 사례들을 남기고 있다. 어떤 작가들은 논쟁의 한복판에서 눈부신 설득력을 획득하지만, 그 논쟁이 끝난 뒤에는 더 이상 나아갈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정착하거나, 반복으로 되돌아섰다.
내가 작가와 장인의 차이를 종종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을 가르는 기준은 기술이나 열정이 아니다. 장인은 숙련된 기술과 반복 가능한 형식을 통해 완성도를 높인다. 반면 작가는, 무엇보다도 문제를 문제로 자각하는 능력을 요구받는다. 그리고 그 문제를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감각과 의지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문제의 해결 능력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는 상태를 견디는 힘이다. 이 역량이 소진되는 순간, 작가는 장인의 자리로 옮겨지게 된다.
내 작업을 예로 드는 일이 다소 쑥스럽지만, 이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는 오히려 구체적일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오브제 설치 작업에서 내가 다루었던 문제들은, 1990년대 사진과 비디오 작업으로 옮겨 가면서 형식적으로 전혀 다른 언어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그 변화는 방향 전환이 아니라, 문제의 이동이었다. 동시대미술의 이슈와 형식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차용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던 질문을 다른 매체의 조건 속으로 밀어 넣는 방식이었다.
이 차이는 한국 미술계 안에서는 거의 판별되지 않았다. 형식의 새로움이나 동시대성이라는 트렌드로 인식될 뿐, 문제가 어떻게 지속되고 이동하는지를 읽어내는 시선은 드물었다.
그러나 1996년, P.S.1을 통해 만난 뉴욕의 미술 관계자들은 그 점을 단번에 정확히 간파했다. 이후 나의 작업은 ‘새로운 형식의 사용’이 아니라, ‘하나의 문제를 다른 장으로 옮겨 놓는 방식’의 이행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었다. 내가 그 시기를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 순간 비로소 판별의 기준이 정확히 작동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슈와 논쟁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의 주제가 아니라, 작가를 연마하는 도구여야 한다. 논쟁은 감각을 날카롭게 만들고, 문제를 자각하게 하며, 형식을 선택하는 기준을 바꾼다. 하지만 논쟁이 끝난 뒤에도 남아 있는 질문이 없다면, 그 작업은 이슈와 함께 소진될 수밖에 없다. 작가를 남게 하는 것은 이슈가 아니라, 이슈 이후에도 지속되는 문제의 밀도다.
나는 지금에 와서야 이 점을 더욱 분명히 보게 되었다. 미술사의 수많은 사례들은, 예술가에게 발 빠른 대응이나 한때의 스포트라이트보다, 오랫동안 질문을 유지하고 견디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작가와 장인의 차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2026년 1월)
여섯 번째 마루의 작품에 덧붙이는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당신은 이제 다른 시간, 다른 몸, 다른 침묵, 위치를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