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근현대미술의 이해 #1
변화를 이끈 예술가들
Rembrandt, Self Portrait, 1669,
86×70.5cm, Oil on canvas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예술작품 속에 그 시대의 의식이나 감각, 문화적 감수성 같은 것들이 녹아들게 마련이고 이 점이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빗살무늬 토기와 폼페이벽화, 김홍도의 풍속화 등을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술작품에는 시대를 반영하는 특수한 방식들이 있다. 상징과 알레고리, 작가의 창의적 해석 등 예술작품 특유의 형식과 내용들이 그것인데, 이런 점들이 역사의 다층적인 이해와 상상력, 풍부한 감수성 같은-다른 역사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들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의 감상은 그저 바라보는 구경(look)과 조금 다른 집중과 연역, 상상과 해석의 힘이 실린 notice, 또는 관찰(watch) 수준의 ‘보기’ 활동이 되면 좋겠다. 또한 그 시대 문명과 역사적 상황, 문화적 특성 등의 일반적 정보나 지식을 참조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감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오늘날 우리들의 눈에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르네상스 회화의 원근법이나 렘브란트 회화의 강렬한 음영효과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약간의 상상력과 그 시대 또는 그 앞 시대에 관한 정보의 참조가 필요하다.
원근법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발견된 것’으로 당대 지식인들의 과학적 논리의 결과물이며, 인간 이성이 종교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게 되는 근대정신을 암시하는 키워드라고 말할 수 있다.
렘브란트 회화의 깊은 음영과 번쩍이는 빛의 효과 역시 spot light 같은 조명효과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당시가 전기나 spot light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1600년대였음을 감안해보면 실로 놀라운 능력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렘브란트는 일찍이 빛의 직진 현상을 통찰해 내고 이것을 3차원의 공간이나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에 반영하여 완벽할 정도의 인공조명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사진기술이 발견되기 훨씬 이전, 회화가 사실의 기록record을 수행했던 상황 속에서 일어났던 화가의 주관적 해석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이었다.
간혹 끌로드 모네처럼 아주 운좋게 당대의 찬사를 받으며 화려한 삶을 산 예술가들도 있었지만, 렘브란트처럼 뛰어난 예술가들 대다수는 예술적 소신을 지키기 위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예술가의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과 독창적 표현들이 당대의 권력이나 시장의 요구와 다른 것이었을 때, 예술가들은 소신을 꺾고 현실과 타협하거나 소외와 가난을 무릅쓰고 맞서서 저항하는 길을 걸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이 지닌 양면성-예술가와 대중의 욕구 사이에 다양한 차이들이 있어 왔음을 의미한다. 예술가가 당대의 권력이나 시대적 조류에 맞선다는 사실 자체가 가당치 않은 일인데도,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기꺼이 고통스러운 삶을 받아들였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당대의 사람들이 누리던 보편의 가치 경계 밖에 머물며 모두가 무심코 지나쳤던 현상들 속에서 특별한 가치를 찾아내 역사에 빛을 드리워준 존재들이다. 일찍이 하이데거가 예술가를 “어두운 밤바다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묘사했던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의 평가인 셈이다.
우리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훌륭한 예술가들의 업적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로부터 우리의 잠재역량을 불러일으키는 무한한 영감을 얻는 일이며, 이것을 위해 관찰과 분석을 위한 ‘상상력’과 다른 역사적 지식들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17세기의 어둠을 찬란한 빛으로 밝혀 놓은 렘브란트로부터 루이 다비드와 구스타브 쿠르베, 터너, 마네,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폴 세잔, 마르셀 뒤샹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직관력과 예리한 감각으로 자신의 시대를 꿰뚫고 변화시킨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극적이다. 그리고 이 감동적인 드라마들은 우리에게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이 우리 삶에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2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