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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선 예술가

도서출판 ICAS, 2010

경계에 서서

 

 

지금껏 발표해 온 작품과 비평글, 기획물, 미술운동과 NGO활동을 추려서 담는다. 20여 년간의 활동을 정리해 본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나를 통해서 우리 시대의 단면을 드러내 보려는 의도가 더 크다. 정리라는 자기 한정을 통해 시대를 비추는 셈이다. 주어진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으니 그것이 곧 내가 본 시대의 단면이고 리얼리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미술운동이나 NGO활동은 창작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필요했다.

80년대 소그룹 운동은 70년대 단색조 세력과 80년대 민중미술 세력의 충돌로 빚어진 미술계의 긴장 속에서 제3의 돌파구를 열어가기 위한 노력이었다.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던 분위기는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 혼자서 극복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대세력에 맞서 소그룹 미술운동을 기획하고 실천했지만, 거대세력화의 유혹이나 제도권과의 정치적 타협을 거부하고 소임을 마친 뒤 서둘러 그룹을 해체했다.

NGO활동 역시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으며 문화예술계를 인위적으로 재편하려는 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했다. 상식이 통하는 미술계였다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일들이었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 점이 바로 이런 활동들의 당위성을 설명해 준다.

 

내가 주력해 온 것은 역시 작품의 제작과 발표이고 비평활동과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기획이다. 나는 현대미술이 비판적 담론 위에서 비평적 방식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가진 모든 것-감각과 지성, 사유의 힘과 예술적 광기를 다 던져 예술가로 사는 이유이고, 충동적인 작업들과 비판적 글쓰기, 다시 읽기 따위의 기획 활동이 모두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내 작품에 대해 말을 아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스스로를 PR하는 꼴도 우습거니와 남의 몫이어야 할 평가에까지 신경쓰는 용렬함도 싫다. 창작과 비평의 영역을 넘나드는 것은 우리 사회가 서구의 미술양식을 손쉽게 선택해서 공유하는 대신,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주체적 담론 구축을 포기한 채 스스로 동시대미술의 주변부로 전락해 왔기 때문이다. 앞선 세대들의 오류와 한계는 곧 다음 세대들의 기회이고, 비평활동은 그 기회를 현실화할 결정적인 방법이다.

적극적 비평활동이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나는 서구미술의 트렌드를 소비하기에 급급한 이 미술계가 재능있는 예술가들을 무참하게 소모시켜 왔음을 잘 알고 있다. 비평은 이 지독하게 불순한 환경 속에서 내 자신을 각성시키고 지켜내 온 힘이었다. 이따금 비평가들과 제도 미술관들을 향해 날선 공격을 가하는 까닭도 이런 사정들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는 우리 사회에 잠재해 있는 거대한 에너지를 예술적 가치로 전환시켜 내기 위한 첫 번째 작업으로, 평생 일구어 가야 할 작업의 토목공사인 셈이다. 사춘기 소년처럼 커지는 덩치를 감당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며 볼썽사나운 짓까지 서슴지 않는 미술계지만, 그럴수록 황무지를 개간하고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이 필요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예술가로서의 내 삶은 보편적 사회성의 상실로 이어졌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예술을 위해 산다는 말도 참 우습지만, 그보다 살기 위해 하는 예술이 더 우습다.

 

2010. 오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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