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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부처간협력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사례발굴

 

 

 

                                                                                                                                                대표 인터뷰 - 정리 소개 : 신OO
                                                                                                                                                                      분석 및 제언 : 조OO

 

 

Ⅰ. 문화예술NGO <예술과 시민사회>


‘문화예술NGO 예술과 시민사회’(이하 <예술과 시민사회>)는 서울·경기 지역 21개 지역아동센터에서 23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과 시민사회> 사례는 교육콘텐츠의 연구, 개발, 기록에 가장 큰 강점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본 사례분석은 콘텐츠에 대한 집중적 연구가 왜 필요했고, 어떻게 구현되었으며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예술과 시민사회>는 이름에 드러났듯이 예술에 대한 이해와 시민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자기 철학을 가지고 있다. 자기 철학이 콘텐츠로 구현되며 이 콘텐츠가 강사에게 교육되고 강사는 이것을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적용한다. 교실은 다시 영상물로 기록되어 이후 연구와 문화예술강사에 대한 사회적 재생산 과정의 자료로 활용된다.

본 사례에서는 전체 교육과정을 통해 <예술과 시민사회>가 추구하는 자기 철학이 콘텐츠와 문화예술강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보고 이것이 각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변화와 효과를 나타내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1. 사례 소개

 

 

     a. 아름다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흐의 해바라기에서 무엇을 보고 좋아하는 걸까? 대범한 노란색들? 거침 없는 붓 터치? 다양한 해바라기의 형태? 아니면 그림 너머 고흐의 삶을 압도한 열정과 광기? 사람마다 고흐의 해바라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제각각이라면, 혹은 무엇이라고 딱히 설명할 수 없다면, 사람들이 매료된 이 아름다움들은 모두 과연 고흐가 만들어낸 것일까?

아름다움은 오로지 그것을 발견하고 느끼는 사람의 몫이다. 그동안 예술교육은 생산자 중심으로 창작을 위한 기능을 ‘가르쳐’ 왔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수동적으로 감동을 받는 감상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주체적으로 향유되지 않는 창작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름다움을 듣고, 보고, 느낄 수 있어야만 가치를 인지하고 생산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감상은 곧 또 하나의 새로운 창조(추창조)인 셈이다. 그윽한 달빛과 화려한 단풍잎에서 삶의 환희를 느낄 수 있는 존재들이 바라보는 세계는 다르다.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감성과 눈, 공감할 수 있는 마음과 그에 관해 대화할 수 있는 소통능력이 중요해졌다. 예술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타포를 읽을 수 있는 감지능력을 통해 새로운 창작과 즐거운 실험이 시작된다. 사회는 사람들이 스스로 원하는 방향대로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적 취향과 감각의 향유자를 길러낼 품을 키워야 한다.

한편 오늘날 문화예술이 사회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유용한가에 대한 모색과 그를 연구하는 방법론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결여되어 있다. 문화는 사람들의 생활이자 의식이고 감수성이며, 예술은 그들이 꾸는 꿈과 이상이다. 우리는 문화예술을 통해 타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스스로 삶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가 급속하게 산업화, 근대화를 겪으면서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문화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이 씨앗이 되었다. 예술을 창의적으로 누릴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예술이 가진 힘을 사회적으로 쓰임 있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야심을 품고 문화예술NGO <예술과 시민사회>(이하 예술과 시민사회)의 문화예술통섭교육이 시작되었다.

 

 

     b. 가르치지 않는 교육

 

      “그럼 지난 시간에 상상으로 설계한 나만의 드림하우스를 실제로 만들어볼까요?”
      “차가운 북서풍을 피하려면 어느 쪽에 창문을 낼까요? 창문틀은 몇 개가 필요하죠?”
      “기둥의 높이가 다 다르면 지붕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 기둥의 높이는 80cm네? 80cm면 얼마나 되지? 가장 키 큰 친구의 허리춤보다

       클까요, 작을까요?”

 

예술과 시민사회의 융합예술교육은 ‘가르치는 대신 정교하게 준비하고, 치밀하게 연구하는 교육’을 지향한다. 교사가 알고 있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방식의 교육보다 문제의 인식과 해결방법을 아이들 스스로 찾아 익히게 한다. 즐거운 상상과 놀이 활동으로 시작해 학습에 이르고, 결과물을 통해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간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성장단계에 적합한 활동을 제공해 몰입을 경험하게 하고, 친구들과의 협업을 통해 ‘관계 맺기’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설계한다.

물론 그를 위해서는 말 그대로 치밀한 연구와 정교한 계획이 사전에 준비되어야 한다. 같은 ‘집 만들기’ 활동이라도 때와 장소, 대상과 목적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 학습지도안이 여러 종류로 분화된다. 교과연계형, 방과후형, 지역아동센터형, 캠프형 등등. 어떤 때는 각자의 개성을 살려 예쁘게 꾸민 아름다운 집 만들기가 목표이고, 어떤 때는 기후와 주변 환경을 고려하여 꼼꼼하게 설계한 튼튼한 집 만들기가 목표이다. 어떤 때는 자신의 꿈과 관심사를 반영한 내부 실내 장식을 더 열심히 하고, 또 어떤 때는 모두의 집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마을을 만들고, 공원과 학교의 위치를 정하는 열띤 토론을 하기도 한다. 

차시별 교사용 수업지도안

프로그램별 교구재 패키지

 매뉴얼, 보조학습 자료 등

대상과 목적에 따라 개발된 다양한 학습지도안을 바탕으로 교사는 다시 수업계획안을 준비한다. 직접 만나는 아이들의 특성과 역동, 학습 수준과 성장단계를 고려하여 수업의 심도를 조절한다. 어떻게 하면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아이들의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열린 질문’을 던질 수 있을지 매번 고민한다. ‘열린 질문’이 던져지고 나면 아이들은 더 이상 선생님을 바라보지 않는다. 스스로 다음 질문과 답을 이어가며 수업을 이끌어 간다.

프로그램 연구 개발 단계에서 활동에 필요한 교구재는 모두 표준화하여 준비한다. 예술과 시민사회의 융합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은 학습지도안과 교구재, 조립설명서, 제작동영상 DVD, 학습보조 PPT 등을 패키지로 구성하여 판매하기도 한다. ‘예술교육인데 왜 아이들이 직접 만들게 하지 않죠?’란 질문은 심심치 않게 받는다. 어쩌면 직접 무언가를 그리고 만드는 것만이 자발적이고 창의적이라는 생각은 미술교육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편견이다. 예술과 시민사회의 융합예술교육 프로그램은 잘 그리고 잘 만드는 아이들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다. 손재주가 없거나 그리기, 만들기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교육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교구재 표준화는 만들기 이전에 아이들의 숨은 생각들을 끌어내어 상상력에 불을 지피고, 학습지점들을 극대화하는 다양한 루트를 개발하기 위한 매개물이다.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중지하고, 관찰하고 기록하며 분석하고 연구하는 일에 집중한다. 아이들의 눈빛이 언제 반짝였는지, 어떤 개념을 어려워하는지, 누구에게 무슨 말로 도움을 요청하는지, 바닥과 벽면의 면적을 어떻게 계산했는지, 과정에서 새로운 궁금함을 길어냈는지, 친구의 성취를 어떻게 칭찬하고 격려하는지 세심하게 관찰하고, 더 다양하게 연계할 수 있는 학습내용이나 놓쳤던 준비물, 발문 등등도 꼼꼼하게 기록한다. 이 기록들은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 동료 교사들에게,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연구자들에게 온라인커뮤니티를 통해 바로바로 공유된다. 이렇게 쌓인 수업보고서는 이제 9,000건을 넘어서고 있다.

 

 

     c. 다름에 대한 지지, 협업을 통한 성장 

 

아이들은 저마다 타고난 모습과 결이 다르다. 키 크는 시기가 다르듯 몸과 마음의 성장에도 차이를 보인다. 교육은 배움이 필요한 학습자의 입장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누구나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믿음으로 준비되고, 스스로 하고 싶어 하고,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이끌어내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일률적으로 가르치고 기계적으로 평가해서 서열화하는 기존의 교육은 변화가 필요하다.

융합예술교육을 연구하며 스웨덴 교육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고등학생 오빠가 초등학생 동생의 수학학습을 돕는다. 자연스럽게 10년 후, 20년 후, 이들이 함께 살아갈 지역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 과정에서 교사는 이들을 관찰하고 다음 목표를 제시할 뿐이었다.

교사는 섬세한 프로그램 준비와 유연한 운영, 객관적인 모니터링과 분석을 통해서 성장 궤도를 디자인하되 다양성을 조절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그 과정을 어떻게 구성하고 조직해 갈 것인가를 아이들과 함께 궁리한다. 아이들 저마다의 자기 감각과 감수성을 발현하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과정에서 협업을 학습하고 각각의 성장이 일어난다.

집을 만드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는 기둥과 벽을 세우고, 누구는 작은 손잡이를 만든다. 교사는 아이들 사이의 편차가 쟁점이 되지 않도록 한다. 멋진 집을 완성하려면 어느 하나 빠짐없이 중요하다. 각각 만든 부품을 조립할 때는 여럿이 팔을 엉겨 잡아야 하고, 함께 들고 날라야 한다. 집들을 모아놓고 마을을 꾸린다. 동생들에게 왕초 노릇을 하고 센 척하던 녀석이 이장님이 되자 돌보는 사람으로 변한다. 갈등은 소외와 대립 때문에 발생한다. 동기와 지지는 아이들을 변화시킨다. 아이들이 관계를 통해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협업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은 대부분 팀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나만의 Dream House 만들기

       d. 21세기형 문화예술교육콘텐츠 연구개발, 기록과 관리

 

예술과 시민사회의 가장 큰 자산은 바로 위와 같은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사회적 소명과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한 교육콘텐츠의 연구, 개발, 기록이다.

교육콘텐츠는 단순한 수업 아이템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다. 이 시대의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 아이들이 이 시간을 통해서 무엇을 구하고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에 관한 깊은 성찰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교육철학과 방법론, 아이디어, 프로그램은 명확하게 다른 차원의 고민들을 필요로 한다. 아이디어가 콘텐츠가 되기까지는 일관된 맥락과 광범위한 설계, 현장에의 적용과 수정의 반복을 거치는 지난한 연구 과정이 필요하다.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14번 월광을 들으며 물감 묻은 손으로 종이 위에 연주한다. 음악에서 느껴지는 리듬과 감정에 따라 마음에 드는 색을 고르고, 빠르게 혹은 느리게, 살살 혹은 세게, 진하게 혹은 연하게 점을 찍는다. 기성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던 아이들은 단순히 음악이 주는 감흥대로 감각적으로 반응했지만 결과물은 감동을 자아낼 만큼 조화롭고 아름답기만 하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흩어지고 모이는 점찍기 그림을 통해 변화와 통일, 균형의 원리를 익히고 회화적 표현의 풍부함을 경험한다. 한편 아이 내면에 이 색을 선호하게 한 동인을 찾아내고 길러내는 것, 아이들이 가진 순수한 감성과 예술적 감성 발현시키고 꽃 피워줄 장치를 연구하는 것이 예술과 시민사회 연구진의 과제이다.

또한 ‘이것이 과연 아이들에게 유용한가’는 교육콘텐츠를 만들고 전하는 사람이 내내 가져야 하는 의구심이다. ‘뭔가 도움이 되겠지’하고 안일하게 접근하거나 어느 순간 관성적으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타고난 모습과 결, 성장의 비밀을 지닌 아이들에게 교사 개인의 방식을 전달하고 주입하는 것이 괜찮은 방법일까, 오히려 아이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건 아닐까 하는 치열한 경계가 필요하다.

아이가 살아갈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모두 과거로부터 온 것이며, 아이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를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어떤 가능성을 지닌 존재인지 깨닫게 하고, 삶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성찰의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미래 시대의 교육 콘텐츠와 현장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모색과 연구 과정이 필요하다.

이에 예술과 시민사회는 교육콘텐츠의 질적 성장을 연구하고 평가하기 위한 방법을 계속해서 찾고 있다. 수업이 끝나는 매시간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져서 아이들의 언어로 수업에서 느끼고 배운 점을 이야기한다. 아이들과 일상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과 학부모들의 의견도 놓치지 않는다. ‘아이가 안 쓰던 어려운 말을 쓰기 시작했는데 재밌네요.’라던가 ‘아이가 이상한 주장을 계속해요.’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좋은 평가, 나쁜 평가는 없다. 좋은 교육을 함께 모색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대화를 유도한다. 학교 교사, 학부모, 지역아동센터 교사, 교육학 연구자, 예술가, 향유자, 다양한 관심을 가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21세기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논의하고, 교육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다.  

Color Piano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콘텐츠 연구개발, 지도안 개발, 교구재 표준화, 상세한 수업계획서 및 보고서 작성, 온라인커뮤니티와 아카이빙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업의 모든 과정은 동영상으로도 기록한다. 각 사업군 별로 강사들의 온라인커뮤니티가 있고, 전회기 수업의 계획서와 보고서, 동영상 촬영본을 공유한다. 예술과 시민사회는 각 과정을 꼼꼼히 모니터링하고 댓글을 통해 피드백을 주고 받는다. 강사들끼리도 서로 조언하고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다. 한 사람이 올린 보고서가 다른 강사들의 성장을 가속화 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강사들의 자발적인 네트워크와 연구모임이 형성되기도 한다.    

 


        e. 가르치는 교사에서 배우는 교사로

 

이러한 과정에서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항상 새로운 호기심으로 아이가 가진 가능성을 살핀다. 활동 과정에 개입하여 ‘이게 정답이야’가 아니라 ‘그런 생각으로 이렇게 만들었구나’ 반응하고 다음 과정을 유도할 뿐이다. 관리와 돌봄의 역할에서 벗어나 성취하고 있는 내용을 대신 확인하고 전달하는 스피커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아이의 시대에 요구되는 것, 아이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한다. 미래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도록 교육과정의 내용을 기록하고 공유한다. 정밀하게 설계된 교육콘텐츠와 체계적인 기록 관리와 공유는 교사 간 역량 편차를 줄이고 교사 스스로 연구하게끔 한다.

물론 매시간 수업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부처 간 협력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교사 교육 및 연구모임이 15차례나 진행되었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몰입의 과정과 체계적인 연구기록훈련을 거치면서 교사의 성장궤도도 만들어진다. 공론화된 장에서 활동에 대한 기록이 남겨지고 전문성이 평가된다면 문화예술강사, 현장교육연구자로서 진로가 충분히 담보될 수 있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가 아닌 교육현장에서의 생생한 성과들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장치와 제도가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강사가 전문가로서 성장해나가는데 가장 어려운 장애는 바로 부처 간 협력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포함하여 많은 공공 교육사업들이 연중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 12월부터 3~4월까지의 긴 공백기간 동안 그동안 잘 ‘배운’ 강사들은 안정적인 소득이 없어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수업이 진행되지 않아도 그동안의 결과들을 바탕으로 숨 고르고 새롭게 연구하고 실험하는 ‘스토브리그’가 필요한데 이를 지원해 줄 장치가 전혀 없어 안타까운 실정이다.

교사 교육연구 워크숍

       f. 예술과 시민사회의 진화

 

21세기형 교육콘텐츠 개발과 더불어 예술과 시민사회의 또 하나의 미션은 '지역 간 교육수혜 편차 극복'이다. 예술의 사회적 효용에 대한 동의,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의 건강한 생태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예술과 시민사회는 처음부터 사회적기업의 형태로 출발하여 철저하게 공교육 현장이나 정부 지원의 형태를 통해서만 활동하고 있다.

부처간 협력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에 참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공적 자금을 통해 공공의 영역에서 연구활동을 수행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역아동센터마다 교육환경이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해의 편차가 크고, 지역에서의 직접적인 역할을 하기가 어려웠다. 지역아동센터 교육의 확장성이 낮기 때문에 단체의 방향성을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조직이 아닌 기능이 커져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올해는 지역아동센터연합회 아동복지교사 연수과정에서 예술과 시민사회의 교육콘텐츠를 소개하고 교육하는 기회가 있었다. 군포지역아동센터연합회와 춘천지역아동센터연합회와 협의로 여름방학캠프도 함께 진행했다. 아동복지교사들은 미술이나 예술전공자들이 아닌데 과연 문화예술교육이 가능할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오히려 이후 피드백을 통해 아동복지교사들이 수업을 진행하면서 더 다양하고 흥미로운 지점들이 발견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운 물꼬가 터진 셈이다.

다양한 단위, 단체와 협력하여 콘텐츠 교육지원을 하거나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등 폭넓게 융합예술교육 콘텐츠를 공유하고 확산시켜 갈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한다. 사람을 길러내는 것만큼 확실한 운동은 없다. 예술이 가진 잠재력을 사회적으로 소용있게 만들기 위해서 예술과 시민사회는 지속해서 교육콘텐츠를 연구, 개발하고 그를 교육, 보급하는 역할을 더욱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간 협력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통해 만나는 공공 주체들, 지역아동센터 현장들, 그리고 함께 사업에 참여하는 다른 단체들, 활동 강사들과의 파트너십이 바로 그 시작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2. 사례 분석

 

 

       a. 사회적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

 

예술과 시민사회는 ‘아름다움(예술)은 오로지 그것을 발견하고 느끼는 사람의 몫이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사회는 사람들이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적 취향과 향유의 역량을 키워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술과 시민사회는 예술가 중심이 아니라 향유자 중심의 예술을 말한다. 예술교육의 목표 또한 개인의 차원이 아닌 사회적 기여에 중심을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대중의 예술적 향유역량 강화를 통한 사회적 기여’의 철학은 예술과 시민사회가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강사교육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5년 전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의 아동복지교사 연수과정에서 예술과 시민사회는 자체 교육콘텐츠를 소개하고 교육한다. ‘아동복지교사들은 미술이나 예술전공자들이 아닌데 과연 문화예술교육이 가능할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오히려 이후 피드백을 통해 아동복지교사들이 수업을 진행하면서 더 다양하고 흥미로운 지점들이 발견’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예술과 시민사회의 융합예술교육 예술강사는 예술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예술강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가가 아닌 아동복지교사가 예술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콘텐츠와 매뉴얼 그리고 전문적 피드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것을 지속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예술과 시민사회는 예술가가 아닌 사회적 예술교육에 대한 가능성을 확대해 가고 있다.  

 

 

       b. 강사와 참여자가 만나는 지점 – 창작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들

 

예술과 시민사회는 ‘가르치는 일'의 구조적 문제들이 아동의 성장에 주는 광범위한 영향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르치기 위해 준비된 교과는 보편적인 정보와 지식에 기초한 안정적인 학습체계이지만, 동시에 지식의 응용과 창의적 활용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요구 앞에서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또한 교사에 의한 '지시와 통제'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학습과 정서, 태도를 내면화함으로써 주체적 판단과 자율적 실천에 각각 심각한 문제를 만들게 된다. 또한 학년별 교과라는 일률적이고 기계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함으로써, 성장의 개별차나 개체적 특성이 발현될 기회를 차단해 놓는 부작용을 안고 있다. 따라서 교사는 자신의 '가르치는 행위'가 학습자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에 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만 한다. 

또한 현행 분절적 교육이 어떤 발생적 배경에서 고안되었고, 그 목표가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고찰을 통해 21세기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아이들에게 적합한 교육인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술과 시민사회의 융합예술교육이 지엽적 성과보다 이 시대의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 아이들이 이 시간을 통해서 무엇을 구하고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하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아이들의 사회적 삶의 성찰을 더 중요하게 인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c. 예술적 내용이 구조를 흐르면서 변하는 과정

 

예술과 시민사회는 향유자 중심의 예술교육이라는 단체의 철학을 교육방법론으로 옮기고, 이것을 교육콘텐츠와 강사의 교수방법으로 체계화한다. 그리고 기록과 축적의 과정에 이르러 연구결과물들에 대한 연구와 재해석을 통해 교사교육의 방법론으로 환류하는 시스템을 갖춘다.

예술과 시민사회는 융합예술교육 콘텐츠에 대한 연구 개발과 이것의 사회적 확산 및 보급에 의미있는 성과를 확인해 가고 있다. 예술과 시민사회에서 예술은 개인적 기능보다 사회적 역할에 더 방점이 찍힌다. 단체의 교육철학에서 시작하여 교육콘텐츠로 구현되고 사회적 확산의 방법까지 이어지는 체계적인 과정을 갖춘 예술교육단체는 많지 않다.

 

 

       d. 고민해야 할 지점

 

완벽한 프로세스는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에서 폐쇄적이다. 아이들이 집을 만들기 위한 교구재는 충실히 준비되어 있지만, 수많은 응용과정이 열려 있다. 매뉴얼대로 짜 맞추면 결과물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지만, 그것이 이 교육의 목표는 아니다. 아이들은 준비된 프로세스로 진행되는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잘 짜여진 콘텐츠와 매뉴얼을 통해 아이들이 각자의 수준과 조건에 적합한 방식으로 소화해 감으로써(프로세스를 향유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질문과 의식적 창조활동이 일어난다는 역발상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과정이다.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어’라고 전면적으로 열린 지점에서 아이들은 막연한 방황을 경험하게 되지만,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거치며 열린 사고를 경험하게 될 때는 비교적 편안한 상태에서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새로운 시도에 관심을 갖곤 한다.

창조의 과정에서는 아이들 간의 역량 차이를 확인하게 되지만 주어진 매뉴얼에서 반복되는, 어쩌면 단순한 제작 과정은 개인 간 역량 차이를 줄여주며, 오히려 예술 활동에 대한 자신감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고민은 놀랍기도 하고 좋은 시도라 볼 수도 있다. 적어도 대부분 예술교육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수련 과정이라는 진입 장벽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 가지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강사의 역할이다. 콘텐츠와 매뉴얼이 중심이 되는 수업현장에서 강사들은 아이들이 반응을 살피는 기록자와 연구자의 역할이 중시되고 있다. 강사가 아이들에게 개입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아이들과 만나는 교육현장에서 많은 일이 벌어지고 그 사건에 강사가 개입하는 것이 중요한 교육과정이다. 강사들의 창의적 교육활동에는 여백과 여유가 필요하다. 이것은 강사의 자기 계발에 대한 동기로도 작용한다. 매뉴얼을 익히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자기 계발이 아니라 아이들과 호흡하면서 생기는 역동에 대한 자기 계발의 가능성이 확보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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